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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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웅’, 비극을 먹고 성장한 국민 뮤지컬

강경윤 기자 작성 2014.01.17 17:37 조회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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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2년 전 극장가는 한편의 영화로 뜨거웠다. 뮤지컬 영화는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세계 4대 뮤지컬의 영화판 '레미제라블'은 국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뮤지컬 배우 출신 휴 잭맨의 위력은 또 입증됐고, 앤 헤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재평가됐다. '레미제라블'은 억압의 상처가 있는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의 선율은 시대와 민족을 뛰어넘는 치유 그 자체였다.

2014년 1월 7번째 무대에 오른 창작 뮤지컬 '영웅'은, 훗날 '레미제라블'처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을 치유의 예술로 성장하고 있었다. 도마 안중근(1879~1910)과 동양평화사상을 주제의식으로 한 '영웅'은 안중근을 신화적 존재로 미화하지 않았다. 버거운 시대적 숙제를 마주한 안중근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적 고뇌를 조명했다.

'영웅'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단 2장면을 빼놓고는 웃을 일이 거의 없다. 왕웨이가 의병대를 위해 만두를 준비하는 장면과 거사를 도모하는 도중 의병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등을 빼면 무대 위에는 무거운 비장함이 흐른다. 하지만 안중근을 사랑한 링링과 명성황후의 마지막 시녀 설화의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사성을 더한다.

눈발을 뚫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 의병대가 숨어 있는 자작나무 숲 등 극적인 무대 구성은 한정된 공간에서 관객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몰입을 이끈다. 특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6발의 총성을 울린 하얼빈 역 등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은 시각적 표현은 꽤 오랜 잔상을 남겼다.

안중근 역을 맡은 강태을, JK김동욱, 김승대 등 연기는 탁월하다. 당당한 의병장으로서의 모습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국가가 대체 뭐길래"라는 응답하지 않는 신을 찾는 '토마스'의 울부짖음은 객석을 울린다. 달리는 기차에서 몸을 던지는 설희 역을 맡은 오진영, 이해리의 감정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의병군과 일본군이 쫓고 쫓기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서의 앙상블의 화음도 매우 좋다. 빠른 템포의 연주곡이 울리며 블라디보스톡의 한 거리를 형상화한 철제구조물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들의 액션연기는 짜임새가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우덕순의 아리랑 한자락은 뮤지컬이 마치고도 가슴 속에 짠한 여운을 남긴다.

'영웅'은 이미 초연부터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정성화 등 배우들이 톱스타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됐다. 또 2011년에는 뉴욕에도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영웅'은 “한국의 영웅이 누군가.”가 아닌, “왜 그가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나.”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유해가 훼손된 채 고향을 밟지 못하는 안중근은 우리 역사의 비극 그 자체지만, 고인의 정신을 예술로 승화한 '영웅'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미래다. 

'영웅'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다음달 16일까지 공연된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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