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배우 김희애가 영원한 꽃누나인 이유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3.19 14:21 조회 12,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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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전 제 연기가 부끄러워 자료조차 없앴으면 싶은 드라마가 있어요. 반대로 시청률은 안 좋았지만, 참여만으로 뿌듯한 작품이 있어요. 그 드라마를 기억해주시는 팬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죠. '우아한 거짓말'의 흥행이 어떻게 되든 이 작품은 참여만으로도 너무나 영광스러운 영화로 남을 거예요"

배우 김희애가 스크린으로 귀환하기까지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김희애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후남이'(아들과 딸)였고, 남의 남편을 뺏어 아줌마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나쁜년'(내 남자의 여자)일 때도 있었다. 또 자식들의 사교육에 관심을 쏟는 '열혈 엄마'(아내의 자격)일때도 있었다. 브라운관 밖에서는 세월을 거스른 미모와 패션으로 '패셔니스타'란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김희애는 결혼과 동시에 은퇴하려 했다고 고백했다. 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20대는 아픔과 배신, 상처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여배우는 시련의 시간을 이겨냈고, 30여 년째 연기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에겐 다행이다.

무려 21년의 스크린 공백을 깬 작품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 '완득이'로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이한 감독의 신작이다.

김희애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극본이다. 이야기 없이 캐릭터만 돋보이는 작품은 별로다. '우아한 거짓말'의 시나리오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 입장에선 소재와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건 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세대나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도 이런 일로 인해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우아한 거짓말'은 아무 말 없이 세상을 떠난 14살 소녀 '천지'(김향기)가 숨겨놓은 비밀을 찾아가는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 그리고 친구 '화연'(김유정)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줄거리만 본다면 관객들은 비밀의 실체에 집중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다. 이 영화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상처와 아픔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희애는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낸 뒤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 '현숙' 역을 맡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후줄근한 행색으로 마트에서 구슬땀 흘리는 우리네 엄마의 모습이었다. 

딸을 잃고도 허기가 져 국수를 게걸스럽게 먹는 자신을 한탄하는 신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자 "슬픔에도 여러 가지 표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장하지 않고 눌러서 연기하려고 했다"면서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감정을 더 쏟아내면서 연기를 해야 제대로 한 것 같다는 강박감이 생길 수 있는데 감독님이 원한 것은 절제였다. 나 역시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실에선 두 아들의 둔 엄마이기에 극 중 '현숙'의 감정에 더 깊이 몰입하며 연기할 수 있었다.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힘들다. 하지만 또 다른 아이가 남아있고, 그 아이를 위해 살아나 가야 한다. 그 상황 속에서도 아이와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야 하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 상처를 딛고 성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 영화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김희애

김희애는 영화가 처음 공개된 언론시사회에 현장에서 눈물을 쏟았다. 연기 경력 30년이 넘은 배우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 작품의 모니터를 잘 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위해서 한번 억지로 한번 보는 정도다. 오랜만에 찍은 영화라 걱정이 많이 됐다. 나도 나지만, 어린 세 후배들의 연기도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따로 촬영한 장면들이 꽤 있어서 김향기, 고아성, 김유정 양이 어떻게 연기했을까 궁금했다. 완성된 영화를 그날 처음 봤는데 그 아이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는거다. 그러면서 '누가 누굴 걱정한거지? 내 연기가 제일 별로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몰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우아한 거짓말'은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지만, 이틀 만에 1위로 올라섰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와 배우들의 열연에 관객들이 반응한 것이다. 또 이 영화로 20여 년 만에 돌아온 배우 김희애에 대한 성원의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영화를 했느냐고 많이들 물으시는데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드라마에서 좋은 선택을 받아서 편안하게 하고 있는데 새로 영화계에 뛰어들면 신인 같은 느낌도 들 테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또 그동안 인연이 잘 안 닿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잘하고 싶다. 영화라는 장르는 너무 매력적이다"

김희애

최근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 점도 배우 김희애에겐 남다른 변화다. 우아한 이미지 너머의 털털하고 소박한 모습 또 나이에 맞는 배려와 사려 깊은 모습으로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힌 건 이 프로그램을 하며 얻은 값진 혜택이다.

"나는 한 번도 예능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평소 존경해온 선생님들과 여행을 보내준다고 해서 고맙고 신나는 마음으로 임했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나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촬영을 했는데, 그 모습을 팬들은 더 좋아해주신 게 아닌가 싶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꽃누나'가 내 인생의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런 것을 보면 인생은 놀람의 연속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비주의를 내려놓은 듯한 인상이 든다고 말하자 "신비주의를 고집한 적이 없다. 우아한 이미지나 화려한 셀러브리티의 이미지는 나의 아주 작은 부분 중 하나일 뿐"이라며 "'꽃누나' 속 모습도 나이긴 하지만 완전한 나는 아니다. 카메라는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누군가의 아내고, 엄마고, 며느리인 내 모습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금 어떤 아이들의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는데 금방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가정주부로만 살았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이고, 배우로만 살았어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균형 감각을 갖추고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

김희애는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는 여배우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것에 대해 일종의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드라마 '밀회'를 함께 하고 있는 안판석 감독님이 "나 오래 일할 거야. 그래야 내 스태프도 같이 오래 일하지"라고 하시더라. 왜 감독이 어려지면 함께 하는 스태프도 젊어지지 않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도 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 다양한 연기활동을 하고 싶다.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내 뒤를 잇는 후배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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