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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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군도', 윤종빈의 세계관과 대중의 기대…그 온도차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7.23 10:26 조회 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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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까지 특정 집단 내부를 파헤치는 관찰력과 사실적 묘사는 윤종빈 감독의 특출난 장기였다. 여기에 선과 악을 이분법 하지 않는 캐릭터 구축과 권선징악 스토리을 거부하는 그만의 작법은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사회 드라마를 완성하는 큰 밑거름이었다.

윤종빈 감독은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았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후 뜻밖에 조선 시대로 눈을 돌렸다. 신작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에서 그가 현미경을 들이댄 곳은 조선 후기 전국 각지에서 활약하던 의적단 추설이었다. '

조선 철종 13년, 잦은 자연재해와 기근, 관의 횡포까지 겹쳐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갔다. 이를 틈타 전라남도 나주 대부호의 서자이자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강동원 분)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소, 돼지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던 백정 돌무치(하정우 분)는 조윤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에 합류, 지리산 추설의 거성 도치로 거듭난다. 각자의 사정으로 추설에 들어온 군도 일당은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꿈꾸며 백성의 적 조윤을 응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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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사회에서 밑바닥에 있는 천민 무리 '군도'가 중심이 되고,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었기에 이 영화가 보여줄 전복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그러나 뚜껑을 연 '군도'는 예상과 달랐다. 사회의 폐부를 찌르며 통렬함을 주는 드라마 보단 웃음과 볼거리를 강조한 오락 영화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군도'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장르적 쾌감을 가미해 흥미로운 상업영화로 완성한 모양새다. 장르적으론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액션에서 주는 쾌감을 영화의 중심에 두고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놓인 주인공이 영화를 끌고 간다.

영화는 총 5장에 이르는 챕터 구성을 취하며 다채로운 인물의 사연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초반 한 시간은 쇠백정 출신 돌무치와 서자 출신 무관 조윤의 전사(前事)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두 인물이 필연적으로 다시 만날 수밖에 없고,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당위성을 보여준 것이다. 

상반된 캐릭터의 두 인물은 상당한 매력을 발휘하며 보는 즐거움을 준다. 돌무치가 추설에 들어와 도치로 변화하는 과정은 속도감 넘치고 흥미롭다. 하정우는 머리를 밀고, 사투리를 구사하고, 틱장애같은 풍성하고 다채로운 설정을 통해 생물학적 나이 10대 후반, 정신 연령 10대 초반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도치와 대척점에 선 캐릭터 조윤을 연기한 강동원 역시 우아한 장검 액션과 신비로운 눈빛 연기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영화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그 지점을 향해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도치와 조윤에 포커스가 맞췄다. 이 영화에는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이경영, 정만식, 김성균, 윤지혜 등 개성 강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너무 많은 인물을 한정된 시간 안에서 다루려다 보니 각각의 매력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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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은 "평범한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가는, 머리가 아닌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전복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을 밝혔다.

감독의 의도와 달리 '군도'의 가장 큰 아쉬움은 메시지가 이야기 안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그로 인한 카타르시스가 크진 않다는 것이다. '군도'라는 주인공과 '민란의 시대'라는 시대상을 합친 제목이 주는 가슴 설레는 기대감이 있으나 영화는 그것을 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그것은 도치와 조윤의 팽팽한 대립이 중반 이후 조윤 쪽으로 기울며 방향감각을 잃은 탓도 있다. 감독이 조윤을 '이유 있는 악역'을 그린 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많은 연민이 투영된 감이 없잖다. 몇몇 장면에서는 조윤의 캐릭터에 도취한 듯한 인상도 준다.

감독은 도치의 영웅담이라는 쉽고 명쾌한 길 대신 극단의 두 캐릭터 도치와 조윤이 공존하는 드라마를 썼다. 민란이 주는 전복의 쾌감이나 카타르시스 보다는 개별 인물에 더 애정을 둔 선택이다.

윤종빈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인과 악인의 구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인물 각각의 주제와 사연을 그리되 하이라이트에 이르러서는 선악의 대결이 아닌 자기 안의 번뇌와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세계관은 분명했으나 이야기 전개 아래서 충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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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백성이 주인공인 세상을 만들자"라는 군도의 목적의식에 맞지 않은 행동과 전사에서 보여준 캐릭터로 미뤄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조윤의 행동도 있어 "왜?"라는 물음표를 그리게 된다. 더불어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는 대사는 반복해 등장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군도가 주도하는 민란의 뜨거움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이다. 

이같은 단점들이 눈에 뛰지만 '군도'가 다양한 장르의 장점을 두루 빌린 신나는 오락 영화라는 사실은 부정하긴 힘들다. 특히 활극의 쾌감과 액션의 화려함은 이 영화만의 매력이다. 더불어 하정우와 강동원을 필두로 한 화려한 멀티 캐스팅 군단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관객을 설레게 한다. 이 요소들은 올 여름 출정을 앞둔 네 편의 대작 '군도', '명량', '해적:바다로 간 산적' ,'해무' 중에서 '군도'를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단, 여름 대전에서 첫번째 주자로 나선 '군도'는 관객들의 엄청난 기대감과 마주해야 한다. 이 영화를 향한 관객의 기대감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은 오히려 만족도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윤종빈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특화된 장점들, 하정우와 강동원이 발휘할 시너지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군도'가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줄 것인가. 그것이 이 영화가 올여름 흥행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키(Key)가 될 것으로 보인다.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37분, 7월 23일 개봉.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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