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군도' 윤종빈 감독은 왜 민란을 강조하지 않았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8.01 10:23 조회 6,629
기사 인쇄하기
윤종빈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윤종빈 감독은 최근 휴대전화를 스마트폰(smartphone)에서 피처 폰 (feature phone)으로 바꿨다.

"스마트폰을 쓰다 보니 인터넷에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아내가 18개월 된 아이 교육에도 좋지 않으니 바꾸자고 해서 2G폰을 샀어요. 써보니 뜻밖에 편하던걸요"

휴대전화 기종을 아날로그급으로 바꿨다고 해도 자신의 신작 '군도:민란의 시대'를 향한 평단의 관심과 대중들의 기대감을 모를 리 없다. 관객들은 하정우와 강동원이 출연한 액션 활극이라는 이유로, 또 윤종빈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이 작품을 오랫동안 고대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단의 극찬을 받은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뼈아픈 실패를 안겨준 '비스티 보이즈', 그리고 윤종빈이란 이름에 확신을 준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까지 그는 작품마다 팬을 확보해왔다. 윤종빈 감독의 팬덤은 작품의 상업적 성공과 비례하지 않았다.

대표작은 전국 480만 관객을 동원했던 '범죄와의 전쟁'이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에 반해 그를 신뢰하는 관객도 적잖았다. 윤종빈의 작품엔 그 어떤 감독도 보여주지 못한 개성과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등에 업은 윤종빈은 차기작으로 '지리산 추설'이라는 조선 후기 현존했던 도적 떼들의 이야기를 다룬 '군도:민란의 시대'를 준비했다.

'군도'는 조선 철종 13년, 힘 없는 백성의 편이 돼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 군도와 삼남지방 최고 대부호 조윤의 대결을 그린 작품.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마동석, 조진웅, 이성민, 윤지혜 등이 출연했다. 

군도

"언젠가 '조선의 군도와 땡추'라는 조선 시대 야담집을 읽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나 보던 임꺽정, 장길산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불어 그 당시 시대상과 민초들의 삶이 흥미로웠다. '범죄와의 전쟁'이 끝나고 '제대로 된 오락 영화를 한 편 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이 이야기가 생각나더라. 이런 이야기라면 신나게 놀아볼 수 있겠다 싶었다" 

'군도'는 윤종빈 감독이 작심하고 만든 오락영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좋아하고 사랑했던 오락적인 모든 요소를 쏟아부은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은 "전작들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만 다루다 보니 스스로 지친 감도 없지 않았다"며 "예전엔 세상을 바로 보는 창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면 '군도'는 내 안에 있는 흥을 모두 꺼내보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윤종빈 감독은 어린시절 무협지와 홍콩 영화에 빠져 있었으며, 그것이 자신의 영화 세계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군도'에선 그 색채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점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영화에 담아보자'였다. 난 웨스턴 세대가 아니고 마카로니 웨스턴을 좀 본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 난 홍콩 무협 영화 세대다. 무협지, 순정만화, 장길산 같은 소설 등에서 받은 영향이 '군도'에도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군도'는 내가 아꼈던 것들을 모두 투영한 종합선물세트가 되었으면 했다"

말을 타고 질주하는 군도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향취에 무협지의 분위기도 교묘하게 묻어난다. 윤종빈 감독은 "한국 사극의 가장 큰 불만이 색이 중구난방이라는 것이었다. 색이 사방으로 튀면 사람이 안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미술, 세트 등에 많은 공을 들였다. 우리가 제작한 세트가 30개가 넘었는데 아마 사극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일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군도

신작에는 당연하게도 오랜 파트너 하정우가 함께했다. 백정에서 군도 무리의 거성으로 거듭나는 도치 역이었다. 윤종빈의 영화에서 하정우는 시작과 끝 같은 존재다.

"이젠 같이 하는 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오히려 같이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매 작품 같이 하자고 작심하고 출연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작품을 구상하면 형이 들어주고 "그거 재밌겠는데?"라고 한 이후부턴 같이 이야기를 발전시켜가는 식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감독, 정우 형은 주인공이 돼있다. 난 정우 형이랑 작업하는 게 신난다. 함께 해온 오랜 시간이 있으니 지나고 나면 계속 이야기거리가 쌓인다. 작품을 같이 하면서 서로 커간다는게 훈훈하달까. 어느 순간은 짠할 때도 있다. 

또 한 명 새로운 얼굴도 보였다. 군 제대 후 돌아온 강동원이었다. 강동원의 팬이었던 윤종빈 감독은 그를 만나고 돌아온 뒤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조윤은 강동원이 아니면 안 됐고, 강동원은 조윤을 만나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그는 "강동원과 함께 작업해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그가 보여준 장검 액션은 왜 그를 두고 '충무로 검 액션의 1인자'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 감탄스러워 했다.  

'군도:민란의 시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어떤 설렘과 흥분 같은 것은 분명 있다. 특히 윤종빈이라는 인물이 그려낼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군도를 통해 보여줄 어떤 메시지에 대한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 관객의 만족도는 엇갈리고 있다.

"윤종빈의 '군도'에 대해 각자의 머리에 그려놓은 어떤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일례로 한식을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양식이었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나는 처음부터 오락영화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에이, 설마' 하면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군도'를 둘러싼 반응을 보면서 놀랐던 게 관객들이 나를 잘 모를 줄 알았다. 영화란 철저하게 배우를 보러 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남다른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윤종빈감독

영화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지적되는 부분, 즉 민란의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윤 감독은 "내가 가져가고 싶었던 단 하나의 주제는 '한 명의 히어로가 세상을 바꿔주길 바라지 마라. 영웅은 네가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지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윤이 극 중에서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느냐. 그자의 칼만 받겠다"라는 대사를 한다. 그게 어쩌면 우리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일반적인 오락 영화의 패턴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안다. 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판단에 의한 행동, 이데올로기에 기인한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인간 밑바닥의 선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원수같은 조카지만 끝내 아기를 죽이지 못하는 조윤, 원수지만 죽였을 때 상투를 자르지 않는 도치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선에 대해 서도 언급하고 싶었다"

연장 선상에서 조윤을 이유 있는 악역으로 그린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때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고 쓰지 않는다. 주제와 사연이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화를 제공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데 단순한 선악구도가 형성될 수 있나 싶다"면서 "영화의 라스트신의 경우도 단순히 선악으로 대비되는 도치와 조윤의 대결이 아니라 대나무 숲이라는 세상으로 은유되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안의 번뇌와 싸우는 것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윤종빈 감독은 "나는 아주 스트레이트하거나 한쪽으로 몰아주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사람 같다. 그런 것을 믿지도 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건 내 세계관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이번 영화를 하면서 또 하나 느낀 건 '난 철저한 오락영화는 할 수 없는 놈이구나'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윤종빈 감독의 영화에 절대 악은 없었다. 미천한 인간, 불쌍한 인간이 있었을 뿐이었다. 감독은 그런 인물들에게도 연민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군도'가 윤종빈 감독의 세계관에서 아주 빗나간 영화는 아닐 것이다.  

군도

'군도'는 질주하는 군도 떼의 무리로 영화의 문을 여닫는다. 이 장면을 앞뒤로 배치한 것은 윤종빈 감독의 의도였다. 

"우리 시대가 지금이나 조선 시대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좌와 우의 대립으로 이어져왔다. 그런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하는 염원을 담은 신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도치가 아기를 품에 안고 뛰지 않나. 그것은 아이에 대한 모성 같은 감정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간절한 마음도 담고 있다"

'군도'는 제작부터 촬영 개봉까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제작진, 관계자, 배우들 무엇보다 영화를 기다린 관객들의 기대감은 남달랐다. 이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감독으로서 흥행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을 터. 

윤종빈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늘 안고 가야한다는 것은 단점이지만 대신 상업영화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관객의 다양한 의견을 즐기려 한다"고 말했다. 

윤종빈 감독의 세계관과 대중의 기대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자뭇 궁금하다. '군도'는 개봉 첫날 전국 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개봉 10일 만에 400만 고지를 점령했다. 이 영화에 얼마나 더 많은 관객이 열광할지, 또 어떤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