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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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무대에선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배우 “난 김호영이니까”

강경윤 기자 작성 2014.08.19 10:17 조회 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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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영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화려한 클러치를 엣지(edge)있게 든 열 손가락에는 검은색 매니큐어가 빛났다. 소문대로 였다. 패션 감각이 대단했다. 실제 한복 두루마기라는 푸른색 오버사이즈 재킷에 해골무늬 레깅스를 매치한 패션이 멋스러워서 “바지 패턴이 예쁘다.”고 말하자 뮤지컬 배우 김호영은 “이거 엄마가 사준 건데, 예쁘죠?”라며 흰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배우 김호영은 첫 인상은, 30년 넘게 본 무수한 이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서도 그 안에는 묵직한 게 있고, 밝은 에너지를 풍기지만 그 내용은 한 없이 진지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본 캐릭터”라고 농을 건네자 김호영은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며 두 손바닥을 올리며 으쓱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또 한번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와의 대화는 1시간 반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루할 틈은 없었다. 최근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프리실라'의 이야기부터, 올 초 제대한 군대생활에 대한 에피소드, 그의 어린시절이 독특한 성격에 미친 영향, 그가 뮤지컬을 바라보는 시선과 앞으로의 비전 등. 대화 주제는 넓고 시간은 촉박했다.

김호영


'프리실라'에서 김호영은 가수 조권과 함께 드랙퀸(유희 목적으로 여성의 옷을 입는 남자) 아담 역을 나란히 맡았다. 150분의 러닝타임에서 김호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담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옷 갈아입는 시간을 제외하곤 쉴 틈 없는 '프리실라' 공연에서 김호영은 말 그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폭발적인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처음엔 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힘들었는데 프리뷰 공연을 연속으로 했던 덕분에 많이 적응했어요. 또 하다보면 탄력이 붙고 관객들 반응이 좋으면 공연 자체가 신나기 때문에 힘든 줄 몰라요.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김호영은 무대에서 잘 노는 배우'란 말을 들을 때 가장 만족스러워요.”

김호영에게 아담 역은 '잘 맞는 옷을 꺼내입은 것'과 다름 없었다. 실제로 김호영은 그간 무대에서 여성성이 강한 역할로 큰 주목을 받았다. '렌트'에서 동성애자 엔젤을, '갬블러'에서는 여자남자 쇼걸 지지를, '이(爾)'에서는 왕의남자 공길을 맡아 열연한 바 있기 때문. 그랬기에 김호영은 '프리실라'에 임하는 자세가 신중하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프리실라'로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이 나올 줄 몰랐어요. 일반적인 남자배우가 갑자기 여성성이 강한 역할을 하면 '변신' 효과를 보잖아요. 조금만 해도 큰 칭찬을 받고요. 전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까 '잘해야 본전'인 셈이잖아요. 게다가 '프리실라'는 전역 이후 복귀작이기 때문에 '정말 잘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김호영이 생각한 '아담'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겉모습이 화려하고 좌충우돌 성격 때문에 부딪치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볼 수 있지만 김호영이 “그게 다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버나뎃, 틱에 비해서 어려서 세상물정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운신의 폭이 큰 '성장형 캐릭터'이기 때문.

“아담이 생각 없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상징적인 얘기를 해요. 여행을 시작할 때 '마돈나 노래를 부르는 게 꿈'이라는 버나뎃의 대사가 있는데 극의 흐름에 따라서 아담은 마돈나 노래를 부를 때 톤을 달리해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성 정체성'을 외치는 그런 당당함이 아담에겐 있거든요.”

김호영

조권, 유승엽 등 어린배우들의 풋풋함과는 다른, 김호영만의 '농익은' 아담은 확실히 그 빛깔을 달리하고 있다. 김호영은 '프리실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조권에 대해서 애정이 남달랐다.

“굉장한 가능성과 센스가 있는 친구예요. 초반에 권이가 공연을 본 관객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매체를 통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더해져 본의 아니게 악플을 받았다는 점에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소신있게 대처한 점은 기특하게 생각하고요.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겸손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요. 이틀에 한번씩은 응원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곤 해요.”

실제로 김호영과 조권의 인연은 매우 두터웠다. 조권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선예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김호영의 공연을 다 챙겨볼 정도로 팬이었다. 선예가 조권에게 김호영을 소개해줬고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 조권과 우연히 만난 것을 인연으로 김호영과 조권은 멘토와 멘티처럼 단단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김호영이지만 군복무 2년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떤 환경이나 현실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라는 김호영이지만 늦은 나이, 외부와 단절된 채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군대 훈련소 시절 김호영은 매일 눈 뜨는 게 무서울 정도로 암울한 시기도 있었다.

“초반에 군대에 잘 적응하지 못해 관심병사가 됐어요. 힘들 줄은 알았는데 이건 너무 하드코어였던 거지(웃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 그 상황과 현실이 갑갑했어요. 열흘 연속 공연을 망치는 악몽을 꿨는데 눈을 뜨면 훈련번호가 새겨진 방탄모를 보는 순간, 슬프지도 않고 그저 답답했어요. 그 때부터 드림노트를 썼고 제대할 때까지 4~5권 쓴 것 같아요.”

김호영은 '이유 없는 시련은 없다'는 마음으로 군대에서 힘들 때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희망을 적었다. 웃음을 잃었던 김호영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왔다. 제대할 때 쯤 김호영은 오히려 주변 병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인생 멘토가 됐다. 그렇게 군대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과 좌절의 기억들은 오히려 김호영이 배우 인생에 힘이 되는 굳건한 자산이 됐다.

김호영


진지한 얘기를 하던 김호영은 희망과 비전을 얘기할 땐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주위 사람들이 진지해질 때면 그는 “내가 김호영인데”라며 재밌는 손동작으로 해보이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문득 이렇게 독특하고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된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어머니 때문인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색색 네일을 바르면 오히려 사람들이 '집에서 뭐라고 하지 않니?'라고 물어봐요. 저희 어머닌 안 그러세요. '왜 열손가락 다 바르지 않았니?'라며 예쁘다고 칭찬해주세요.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안돼'란 얘기를 단 한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너니까 그런 네일을 하지, 너니까 그런 클러치를 입는다며 제가 남들과 똑같지 않은 걸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세요.”

실제로 김호영의 모친의 휴대전화기에 그는 '아들'이 아닌 '슈퍼스타 호영'으로 저장이 돼 있다. 그의 말 대로 김호영을 만든 9할은 그의 모친의 응원이었다. 그래서일까. 김호영은 뮤지컬 뿐 아니라, 정극 연기, 예능, 패션, 진행,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녀사냥' 한번 나가면 게임 끝일 텐데”라며 너스레를 떠는 표정에는 수주븜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김호영은 열정은 타고난 듯 보인다.

김호영

'렌트'로 데뷔한 지 올해로 12년. 김호영은 첫 무대에 올랐던 그날처럼 변하지 않았다. “무대에 오를 때 떨리나.”란 질문을 하자 김호영은 “예전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무대에 오를 때 긴장 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관객들을 만난다.”고 말했다.

“숨 막히는 긴장이 밀려들면 '내가 김호영이야'라고 되뇌어요. 청바지에 흰티셔츠를 입어도 '빛날 거야.'라며 수차례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신기하게 무대 조명이 나를 비추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배우 김호영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기도 하고요.”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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