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권율 "개명 후 찾아온 '명량', 운명 같았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8.19 16:59 조회 1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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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촬영할 때마다 울컥울컥 할 때가 많았어요. 배우들의 이런 진심이 관객에게도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쁩니다" 

진중한 얼굴과 차분한 목소리는 흡사 스크린 밖으로 나온 이회를 본 듯했다. 무모한 전쟁을 시작하려는 아버지에게 비책을 묻는 아들의 얼굴엔 근심과 우려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버지이기 전에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장군이기에 아들은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이순신의 아들 이회는 그렇게 멀리서 아버지의 승리에 일조했다.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의 스포트라이트는 대체로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에 쏠려있었다. 그러나 개봉 후 놀라운 속도로 신기록을 제조해내면서 영화 속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주연배우 최민식이 영화를 이끌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조연 배우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풍성한 감동을 선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권율

그 중 한 명이 이순신의 아들 이회를 연기한 권율이다. '명량'의 이회는 장군 이순신뿐만 아니라 인간 이순신 그리고 아버지 이순신의 얼굴을 보여주게끔 했다.

이회는 대중들에게 이순신의 아들이고 무인이었다는 것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만큼 여백이 많은 캐릭터였다. 권율은 알려지지 않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잊고,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오디션을 봤다.

"'이순신 장군의 아들' 이회라는 수식어를 평생 달고 배우 생활을 하고 싶을 만큼 탐나는 캐릭터였다. 게다가 파트너가 최민식 선배님이었으니 더할 것 없는 영광 아닌가. 오디션 당시 많은 배우가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차례의 오디션을 거친 끝에 권율은 이회를 연기할 수 있었다. 역사 속에 흐릿한 기록으로 남겨진 인물을 풍성하게 채워넣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권율은 김한민 감독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실제로는 이회가 명량해전에 참가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감독님은 역사의 기록대로 이회를 풀지 않았다. 이회를 통해 이순신 장군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권율

어쩌면 이회가 이순신을 향해 던진 "왜 싸우신 것입니까?" 혹은 "아버지의 천행은 회오리가 아닌 백성이었단겁니까?" 등의 질문은 관객이 묻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순신의 의중을 묻고 답을 얻는 역할에 집중한 이회의 캐릭터가 다소 딱딱하고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권율 역시 이회를 보다 입체적으로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터다.

"인물에 빠져들어 생생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보다 능동적으로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회라는 인물을 통해 아들이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고뇌 등을 전달해줘야 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연기하려 했다"

이순식 역의 최민식과의 호흡은 권율에겐 더없이 영광스러운 기회였을 것이다. 권율은 "주변의 많은 연기자들이 '최민식은 살아있는 연기 교본이다', '그저 옆에 있어도 뭔가를 배운다'고 하셨다. 실제로 연기해보니 최민식 선배는 연기적인 기술도 훌륭하지만, 인품이 너무나 뛰어나신 분이다. 연기할 때는 열정이 넘치고, 촬영장 밖에서는 아이처럼 순수하시다"고 말했다.

권율은 "'명량'에 "두려움이 독버섯처럼 퍼진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연기에 대한 최민식 선배의 순수한 열정이 촬영장 곳곳에 퍼졌다. 그래서 모든 배우가 작품에 빠지고 몰입해 진중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촬영장에 퍼졌던 최민식의 영향력에 대해 전했다. 

영화의 명장면으로는 구선이 불타 없어지는 신을 꼽았다. 권율은 "아비규환의 그 장면을 찍으며 정말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장군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그 자리를 지켰을 수군의 마음을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그 감정의 뜨거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권율

'명량'의 권율을 보면서 많은 관객이 익숙한 얼굴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하게 떠오르는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권율이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그의 본명은 권세인. 2007년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한 이래 5년간 본명을 써오다 2012년 현 소속사(사람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권율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30대가 되고 소속사를 옮겼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이지만,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이 남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표출할 기회도 적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는 생각에서 가명을 쓰게 됐다"

이름을 바꾼 후부터 그는 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연기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작품이 사이즈와 비중을 따지지 않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면 출연을 자청한 것은 연기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피에타'(2012)와 '잉투기'(2013) 등에 출연한 것이 이 무렵이다.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높은 작품성으로 주목받은 영화들이다.

권율

"2007년 데뷔해 7년 동안 연기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해본 역할보다 안 해본 역할이 많다. 예산이나 규모를 떠나 캐릭터가 끌리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피에타'와 '잉투기'는 그런 판단으로 선택한 작품들이다. 두 영화 모두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확실했다"

이 같은 꾸준한 행보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은 '명량'을 통해서일 것이다. 권율은 "이름을 바꾸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명량'을 만나게 됐다. 나에겐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가명과 같은 이름의 위인인 권율 장군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율은 자신의 이름과 동명의 역할이 아닌 이순신의 아들 이회로 관객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권율은 이번 작품을 계기로 연기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 배우의 진심을 드러내기 위해 연기라는 기술을 잘 연마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메리칸 허슬'의 크리스찬 베일이나 '장고:분노의 추적자'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스터'의 호아퀸 피닉스의 날것에 가까운 연기를 좋아한다. 배우가 가지는 지적 호기심이 내 안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호기심이 허영이 되지 않도록 계속 연구하고 공부할 것이다"

차기작에선 강하고 센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 권율, 순수한 얼굴 너머의 섬뜩한 광기도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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