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해무' 한예리, 영화의 시작과 끝이 된 여배우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8.26 15:35 조회 18,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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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맑고 투명해 실핏줄이 비칠 것 같은 피부다. 살이 두툼하게 내려앉은 눈망울은 크진 않지만, 충분히 신비롭다. 사십 킬로가 간신히 넘을 것 같은 가녀린 체구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 얼굴과 몸 모든 것이 그녀에겐 연기의 탁월한 재료다.

한예리가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를 통해 잠재돼있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해무'는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여섯 명의 선원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해무 속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인생에 있어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순간을 '바다 안개'에 비유한 '해무'에서 한예리는 조선족 여성 '홍매'로 분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 같은 존재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 영화에는 배에 미친놈, 섹스에 미친놈 등 여러 미친 놈이 등장하지만, 그중 가장 이성을 잃은 인물은 처음 본 여자에게 미친 '동식'(박유천)일 것이다.

오빠를 찾아 밀항선에 몸을 실은 조선족 여인 '홍매'는 동식의 마음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그 이후 찾아온 파국은 외마디 비명에 그칠만한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잔혹해, 비명도 외침도 쉬이 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이다. 

홍매는 그 비극을 샅샅이 목도한다. 한예리의 깊은 눈빛을 통해 말이다.

한예리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홍매는 아사 모사한 느낌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머릿 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께 "이 여자 도대체 뭐에요. 누구예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모호함은 촬영을 하면서 보다 분명해졌다"

홍매는 조선족 여성이었기에 사투리 습득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했다. 과거 영화 '코리아'에서 북한 사투리를 경험한 것은 큰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조금은 익숙한 말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말이라 처음부터 다시 익혔다. 그쪽 말이 '드세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홍매의 여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나긋나긋한 톤으로 대사를 쳤다. 음절마다 억양의 악센트도 완화해서 하려고 했다"

한예리는 홍매를 어두운 여성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빠를 만날 설레는 마음으로 배를 탄 홍매는 순수하고 밝은 여성이었다. 그런 순수와 밝음이 동식이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해무

한예리는 "처음 동식을 만났을 때는 경계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긴장을 풀고 동식에게 다가간다. 감독님도 "여자들이 남자와 있을 때와 여자끼리 있을 때가 다르지 않냐"고 하시더라. 은근하게 끼 부리는 모습도 과하지 않게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한예리는 연기할 때 눈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배우다. 홍매는 하룻밤 사이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을 체험하는데 그 순간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을 길고 깊은 눈매를 통해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감정에 충실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빛에 묻어나온 게 아닐까 싶다. 배우는 몸 전체를 사용하지만, 눈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많은 분이 제 눈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무척 감사하다"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을 박유천과의 정사신이었다. 동식과 홍매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인간의 몸짓을 보여준 이 신은 '해무'에서 가장 명장면으로 꼽힌다. 좁은 공간에서 극한의 감정을 실어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한예리는 자신의 첫 베드신이 '해무'여서 영광이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에 "뒤엉킨다"라고 문학적인 표현으로만 써 있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싶더라. 그래서 감독님과 (박)유천 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또 과연 긴박한 상황에서 그런 행동이 가능할지 실제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촬영을 하면서 감정이 올라왔다.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라는 감정이 깔려있지만, 동지애라던가 생존에 대한 처절한 본능도 함께 섞인 정사신이 아닌가 싶다. 찍으면서 마음이 매우 아팠다"

한예리

파트너였던 박유천과의 앙상블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예리는 박유천에 대해 "호흡이 잘 맞았다. 로맨스는 우리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신 바이 신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서 "촬영을 하면서 동식으로 빨리 집중해줘서 나도 홍매를 충실히 연기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약 5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신 대부분을 배 위에서 촬영했다. 멀미는 최대의 적이었다. 바다가 적응될 즈음엔 육지로 내려와 한동안은 육지 멀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가 한예리에게 남긴 유산은 너무나 크다. 영화 개봉 후 스포트라이트는 부수적이었다. 한예리는 선배들과의 작업 경험을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김윤석, 유승목, 김상호, 이희준 선배뿐만 아니라 문성근 선배님까지 너무나 존경하는 선배들과 한데 어우러져 작업할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었다. 여배우라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촬영 후 밥 자리, 술자리 모두 어우러져 식구처럼 지냈다. 내가 마치 제7의 선원이 된 느낌이었다"

한예리

홍매는 사건의 시작이자 끝과 같은 존재였다. 영화의 후반부 홍매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여러가지 물음표를 남겼다. 그러나 한예리는 홍매의 선택에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다"며 깊이 공감했다.

관객들의 다양한 의견에 대해 한예리는 "우리 영화는 보고 난 다음 할 얘기가 많은 작품이다. 어떤 인물에게 초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느낌도 다르다. 그 점을 만끽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예리는 충무로의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떠올랐다. 신비로운 이미지와 탄탄한 연기력까지 겸비한 한예리의 활약에 기대가 모아진다.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에 감사해한 한예리는 "앞으로 감독님들이 날 어떻게 써먹으실지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밝게 웃어 보였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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