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김윤석은 왜 센 캐릭터에 매료됐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8.27 09:15 조회 1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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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해무'에서 김윤석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전진호의 선장 철주는 폐선 직전의 배를 이끌고 바닷가로 향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고기잡이가 아닌 조선족의 밀항을 돕는 일. 어려운 시기, 돈에 목마른 선원을 위한 극단의 선택이었다.

삶이 어디 그리 순탄하던가.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해무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딪히고, 철주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 선택에 관객들은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배우 김윤석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다. 선과 악 양 극단을 오갈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다. 그는 '완득이'의 따뜻한 동주 샘을 연기하기도, '황해'의 냉혈한 면가도 실제의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했다.

지난해 김윤석은 '화이:괴물이 된 소년'을 찍었고, 올해 '해무'를 내놓았다. 어떤 이들은 두 작품 속 캐릭터가 엇비슷하다고 말할 것이다. 때문에 어떤 이는 극단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김윤석을 연이어 보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김윤석은 왜 이렇듯 센 캐릭터를 연이어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윤석

Q. 올여름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빅4 배급사의 대표작들이 모두 공개가 됐다. '해무'의 상업성이 가장 낮게 평가됐지만 작품성은 최고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A. 우리 업계 사람들은 "'해무'가 가장 영화다운 영화"라고 하시더라. 그 정도 반응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의도했던 바를 보는 이들이 제대로 봐주셨다는 의미니까.  일반 대중들의 경우 영화가 어렵다기보다는 어둡다는 반응이 꽤 있더라. 그런데 과연 이 영화가 어둡고 무겁기만 할까. 만약 그렇게 느꼈다는 우리 삶 자체가 무겁게 와닿는건 아닐까. 

Q. '해무'는 극단 연우무대 창립 30주년 기념작을 영화로 옮겼다.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연극을 해왔고, '연우'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연극의 영화화를 지켜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가?

A. 연극을 영상화한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이 있었다. 흥미로웠다. 일례로 연극 '해무'는 밀항하는 장면이 다 상상으로 표현됐다. 그런데 영화는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보니 밀항 신들이 다 실제로 그려졌다. 이런 영화의 연극의 차이가 재밌었다.

Q. 신인 감독(심성보)이 메가폰을 잡았다. 베테랑 배우로서 우려도 있었을 텐데?

A. 원작을 잘 알고 있는 작품이라 시나리오를 더 꼼꼼히 봤다. 탄탄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하기로 한거다. 또 심성보 감독이 신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췄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여린듯하면서도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도 있고, 그래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Q. 영화의 제목이 이야기를 다 압축하는 것 같았다. 해무와 우리 인생의 예측 불가성, 멋진 은유다.

A. 그렇다. 살면서 예기치 않는 순간, 원치 않는 순간이 닥칠때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영화에선 그걸 해무로 묘사한다. 장소와 시간과 선택을 압축해놓은 게 우리 삶이 아닌가. '해무'는 배라는 한정된 공간을 바탕으로 해무가 오고 난 후 즉 어떤 선택을 한 이후부터의 파국을 그린다.

해무

Q. 어쩜 그렇게 다들 뱃사람 같을 수 있나?

A. 뱃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수없이 봤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수에 가서 뱃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런 리얼리티가 빠지는 순간 관객을 믿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외형적인 리얼리티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뱃일도 배웠다.

Q. 당신은 아마도 충무로에서 가장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 배우 중 한 명일 것이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서울 게다가 연변말에 중국어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번엔 여수 사투리다. 사투리를 잘하는 비결 좀 알려달라.

A. 사투리는 연습밖에 없다. 사투리 선생님이 녹음한 걸 듣고 듣고 또 듣고, 그리고 연습 또 연습해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Q. 그렇다면 가장 흥미로웠던 사투리는?

A. '황해'에서 썼던 연변 사투리. 제일 힘들었는데 또 가장 흥미롭고 재밌었다. 연변은 잃어버린 우리 옛말을 많이 사용하더라. 

Q. 영화 초반 시대상을 보여주는 시퀀스들이 좋더라. 구구절절한 전사없이도 인물의 캐릭터가 보이는 느낌이더라. 가장으로서의 철주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무기력한 남편 그래서 아내의 불륜에도 크게 분노하지 않는 나약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A. (아내의 부정을 원망하거나 꾸짓을)그럴 힘도 없다. 철주는 가정을 버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지키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디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어"라고 소리치며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어떡해서든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Q. 철주가 냉철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냉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더라. 밀항이 잘못된 후의 선택들이 충격적이긴 해도 그 선택 근저의 판단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공동체의 리더로서 대의를 선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A. 그래서 상황이 안쓰러운 거다. 여기서 누가 죄인일까. 시대 아니면 인간? 철주는 6명의 선원 중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다. (밀항)일이 잘 되면 뱃사람들과 돈도 나눠 갖고 숨통을 틔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 거다. 그가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 영화에서 가장 미친놈은 동식이다. 반나절같이 있었던 여자에게 미쳐 동료고 뭐고 버리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김윤석

Q.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보여주는 철주의 광기는 대단하더라. 어느 순간 김윤석 하면 '광기의 대명사'가 된 느낌도 있다.

A. 내가 과연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을 능가할 수 있을까요? 하하.

Q. 최민식의 악역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A.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작품은 소위 말하는 '19금 영화'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이 들어 내 필모를 볼 때 내가 참 아끼는 작품들일 것 같다. 물론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겐 의미있는 영화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함께 했던 감독님과 배우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무던히 애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 지난 선택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밝은 역할은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19금 영화를 세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내 캐릭터가 세더라도 매력 있으면 하는거다. 그게 내 소신이다. 

Q. '화이'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쉬운 역할을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것도 센 작품, 센 캐릭터에 대한 선호에 영향을 끼쳤나?

A. 그렇다. 매운 거 먹고 땀을 쫙 빼는 느낌이다. 그러나 스토리와 캐릭터가 탄탄하게 어우러지는 영화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 한번씩 그런 작품을 만날 때는 어떤 이유로든 놓치고 싶지 않다. '화이', '해무' 이 두 작품은 특히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Q. 전작 '화이'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배우 간 앙상블이 좋다. 경탄을 부르는 수준이더라. 

A. 지금까지 내가 해온 영화 중에서 최고의 앙상블이라 자부한다. 처지는 배우 한 사람도 없이 다 자기 역할을 너무나 잘해줬다. '해무'는 철주와 동식의 영화가 아니라 모든 캐릭터의 영화다.

김윤석

Q. 영화에서 동식(박유천)을 감싸는 완호(문성근)에게 철주는 "그 새끼, 어리다고 자꾸 봐주면 안 돼"라는 말을 한다. 어떤 선배인가?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는 편인가?

A. 사적으로는 잘해준다. 연기에 대해 뭘 가르쳐주고나 하진 않는다. 그건 자기가 보고 배우는 거다. 현장에선 예외 없고 똑같이 대한다. 우리가 집중해주면 그 친구들도 기를 얻어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막내 박유천은 현장에서 어땠나?

A. 맨살을 드러내고 연기를 했다. 전혀 치장이 없지 않나. 그런 용기는 칭찬해줄 만하다. 영화 데뷔작인데 자기 자신을 오롯이 드러냈다. 연기에 대한 재능이 있다.

Q. 연기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신인을 봤을 것이다. 신인배우에 있어 제1의 덕목은 재능인가 아니면 성실함일까?

A. 열린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다 내려놓고 작품 안에 쑥 들어와야 한다. 작품의 일원으로서 녹아들어야 한다. 본인이 작품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본인의 느낌일 뿐. 결국엔 작품에 쑥 들어옴으로 인해 본인이 다 가져가게 돼 있다.

Q. 박유천의 바로 위인 이희준은 어떤까. 괴물 같은 연기력을 뽐냈다. 게다가 당신처럼 연극판 출신 아닌가?

A. 가장 아끼는 후배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웃기지만 차기 대권을 물려줄 만한 굉장한 배우다.

Q. 여름 시장 4파전에서 유일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적잖을 듯하다.

A. 일단 한번 두고 봅시다. 소위 말하는 오락성 위주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실제로 관객들에게 먹힐지, 아니면 블록버스터이긴 하지만 관객의 심연을 건드리는 영화가 소통할지...한번 붙어보자 싶다. 19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올 여름 단 한 편의 영화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해무'를 추천하고 싶다. 극장에서 굉장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게 맞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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