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이재용 감독이 말하는 신파 ""이래도 안 울래?"하는 건 싫어"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9.13 15:25 조회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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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재용 감독과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의외의 만남처럼 여겨졌다. 최근 몇 년간 '다세포 소녀', '여배우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와 같은 다소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그였기에 스테레오 타입의 이야기와 예상 가능한 감동을 선사하는 가족극을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나도 의외이긴 한데 주제나 감성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의 팬이기도 하고 소설이 전달하는 주제 즉 젊음과 늙음 무엇보다 인생을 다룬 이야기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 내 영화 선택의 기준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그 감독의 색깔이 안 들어갈 수 없고, 감독도 영화를 닮아가기도 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열 일곱의 나이에 자식을 낳은 어린 부모와 열 일곱을 앞두고 여든 살의 신체 나이가 된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두근두근

이재용 감독은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로부터 이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고 몇 가지 여부를 따져봤다. 조로증에 걸린 아이를 분장으로 표현한다는 것, 그동안 작품에서 해오지 않았던 '가족애'를 그리는 것에 대한 낯섦 같은 것들이 고민하게끔 했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이야기의 특수성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세련됨이었다. 여든 살의 신체를 가진 열 일곱 살 아이의 특수한 상황을 유쾌하고 의연하게 또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그려나간 소설은 슬픈 걸 그저 슬프게만, 기쁜 걸 마냥 기쁘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역설의 미학을 깊게 투영했다. 그 점에 그는 매료됐다. 

"아이와 부모 또 부모의 부모까지 3세대가 다 나오는 영화이기에 여러 세대와 계층에게 각각 다른 지점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시사회를 하면서 많은 분이 그 점을 좋게 보시더라"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통속적인 감동을 예상하기 마련이지만 이재용 감독은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를 지양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가족의 보편적인 삶을 담았다. 웃음과 눈물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 전개 아래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를 원했다.

"한국적 신파는 가끔 "이래도 안 울래?"라며 눈물을 강요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울고 나서도 뒷맛이 게운치 않을 때가 많았다.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아름이네 가족을 통해 우리 부모를 생각하고, 또 우리 아이를 생각해보고 나아가 인생이란 뭘까에 대해 한번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두근

이재용 감독은 김애란 작가의 원작이 가진 특징과 장점들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겼다. 젊음과 죽음, 탄생과 죽음, 웃음과 슬픔의 대비를 통해서 감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 매체가 활자에서 영상으로 옮겨오면서 불가피하게 변화를 준 부분도 있었다.

"소설이 지향하는 강요하지 않는 감동은 살리되 문학은 문학이고 영화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읽으면서 상상으로 채워가는 여지가 있지만, 영화는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건을 축약하고 캐릭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가야 했는데 보편타당하면서도 대중적인 방향으로 만들어가는데 가장 큰 중점을 뒀다"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독에게는 보이지 않은 시어머니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원작의 팬들이다. 그러나 이재용 감독은 "원작 팬을 의식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기량으로 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데만 집중했다"

이재용 감독은 캐스팅에서부터 파격에 가까운 선택을 했다. 판타지에 가까운 뛰어난 외모를 지닌 톱스타 강동원과 송혜교에게 대수와 미라의 옷을 입힌 것. 이를 두고 제작 초기엔 캐스팅 논란이 일기도 했다.

"캐스팅이라는 게 전형적인 선택도 있고 의외의 선택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의 캐스팅을 후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난(송)혜교 씨에게서 미라스러움을 봤고, 대중이 보는 느낌과 다른 송혜교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아는 송혜교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동원 씨도 마찬가지로 대중이 보는 신비로운 남자, 아름다운 남자가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함,우직함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이 영화를 시작하면 기뻤던 순간은 두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 대수 같은 사람이야"라고 하거나, "미라의 감정을 알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였다. 내 직관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그 순간 말이다"

이재용감독

영화의 중심인 아름 역의 조성목 군을 캐스팅한 것은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연기 경력이 거의 없는 아역 배우를 발굴한 실험은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이어졌다.

"우리 영화에서 아름이는 너무나 중요했다. 낯설 질병을 안고 있는 아이의 심리에 관객이 공감하게끔 해야 했다. 그것에 이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었다. 성목 군은 아이같이 않은 의연함이 있었다. 또 연기 경력이 많이 없어 백지 같은 상태였기에 틀에 박히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분장에 가려질 수 밖에 없는 얼굴의 감정을 눈으로 멋지게 표현해줬다.  무엇보다 매일 5시간씩 특수분장을 35회나 하면서도 잘 버텨주었다"

이재용 감독은 최근 몇 년간 실험적인 연출을 보여왔다. 컬트 영화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은 괴작 '다세포 소녀'(2006)부터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간 '여배우들'(2009), 그리고 해외에서 원격으로 영화를 연출한다는 설정의 실험영화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2)까지 멜로 영화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은 전반기 작품 활동과는 확연히 다른 연출 세계를 펼쳐왔다. 그래서 '두근두근 내 인생'과 같은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가족극으로의 회귀가 다소 파격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나는 전략을 짜지 않는 감독이다. 그때그때 만난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번에 이걸 했으니까 다음에 이걸 하자고 계획하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운명처럼 만나 영화로 만드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우연과 운명을 동반하지 않나. 내가 영화를 만나는 것도 예측할 수 없다. 굳이 어떤 패턴을 찾고자 한다면 대중적인 것과 실험적인 영화를 동시에 작동하는 감독이다. 생각해보면 이제껏 홀수 번째의 영화들이 대중적으로는 성공했던 것 같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내 7번째 연출작이라 내심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웃음)" 

인터뷰 말미 이재용 감독에게 영감의 원천에 관해 물었다. 그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우연히 뉴스 속 사람들 이야기 혹은 내가 만났던 사람이나 배우로부터 받는 영감 등에서 영화의 소스를 얻는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이 영감들은 자신의 취향과 만나 발전된다고 했다. 이재용 감독은 '역설과 아이러니'를 좋아한다고 했다. 뻔하지 않은 것, 우리 눈앞에 바로 보이지 않는 이면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러니 그의 영화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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