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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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기증' 이돈구 감독, 센 영화만 찍는 남다른 영화 철학

김지혜 기자 작성 2014.11.13 17:20 조회 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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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질식 스릴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무리일까. 영화 '현기증'(감독 이돈구)을 보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고, 끝에 이르러서는 먹먹했다. 보는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 어떤 식으로든 불편한 영화임이 틀림없다.

'현기증'은 한 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다룬 영화. 현기증처럼 예상치 못한 현상이 인간을 지배하고, 이성이 마비된 순간에 찾아온 비극이 한 가족의 평화를 어떻게 깨뜨리는가에 대해 냉철한 기록이다.

이돈구, 괴물 같은 신인감독의 등장이다. 2012년 영화 '가시꽃'으로 데뷔해 평단의 주목을 받은 이 감독은 두 번째 영화 '현기증'을 통해 데뷔작의 호평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불편하지만, 강렬한 영화로 자기만의 연출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준 이돈구 감독을 만났다. 그는 '현기증'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한 영화"라며 "인간 내면의 공포가 빚어낸 비극을 보여주기 위해 일말의 타협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부쳤다"고 말했다. 

더불어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지만, 너무 힘든 영화라 섣불리 권하기 힘든 감도 있다"며 "그러나 이 작품이 관객으로 하여금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현기증

◆ "왜 센 영화만 찍냐고요?"

첫 번째 영화 '가시꽃'이 종교와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면, 두 번째 영화 '현기증'은 인간의 광기가 불러일으킨 한 가족의 비극을 다뤘다. 주제의 범위는 전작에 비해 축소됐지만, 묘사의 밀도는 한층 높였다. 

이돈구 감독은 어린 시절 유달리 겁이 많아 '공포'라는 감정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공포는 무엇일까. 또 그러한 공포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다가 가족에게 느끼는 공포가 떠올랐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야기를 가족 내부에서부터 출발시켰다"고 전했다.

영화의 발단이 되는 사건부터가 충격적이다. 이를 두고 실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감독은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비슷한 사건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출발시켰지만, 100% 실화라고 할 순 없다. 사회면의 뉴스와 비슷한 질환을 안고 있는 환자의 인터뷰, 관련 서적 등을 참고해 창작한 이야기다"

순임(김영애 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치매 환자들을 보호하는 공주보호감호소를 찾아 취재하기도 했다. 이돈구 감독은 "편집증, 망상장애는 감기처럼 온다더라. 너무 극심한 쇼크를 받게 되면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는 조사를 바탕으로 순임이라는 인물과 사건들을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건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관객의 호불호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돈구 감독은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 "세상에는 아름다운 영화가 많이 있으니 그렇지 않은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흔히 색깔로 표현하지 않나. 난 대중들이 많이 찾는 색깔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색깔 가운데 필요없는 색깔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왜 어두운 영화만 찍느냐고 하는 데 반대로 난 왜 밝은 영화만 찍으려 하는지 묻고 싶다. 내가 만든 영화를 보면서 '우린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도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필요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도 궁금했다. 두 작품에 드러난 세계관과 달리 "휴머니즘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전제는 "인간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의 인간에 대한 시각은 '성악설'에 가까웠다.

◆ 괴물과 괴물의 만남…이돈구VS김영애의 시너지

이돈구 감독은 데뷔작 '가시꽃'을 300만 원으로 찍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번째 영화에선 100배가 넘는 3억원의 제작비가 허락됐다.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찍던 감독에게는 큰 돈이지만, '현기증' 역시 상업적인 결과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은 아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유명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예상치 않게 캐스팅이 수월했다. 송일국의 경우 '가시꽃'을 보고 이돈구 감독의 팬이 됐다며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출연을 자청했다. 김영애와 도지원은 이돈구 감독은 패기와 가능성을 높게 봤다.

'현기증'이 이돈구 감독의 확고한 연출세계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순임 역의 김영애의 열연이 절대적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순임을 동정할 수 없다. 순임은 자신이 처지른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면하고 도망쳐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에 대해 '현기증'이나 '치매' 때문이라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감독은 순임에게 동정의 시선을 건네지 않았다. 이돈구 감독은 "현기증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다. 2~3초간의 어지러움으로 인간이 무너진다. 그 불가항력의 상황을 맞이하는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침묵하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주변 사람이 얼마나 고통받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이는 무척이나 어렵다. 인물이 이해되지 않는 가운데 극한의 감정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영애는 '현기증'을 찍고 한 달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김영애 선배님은 촬영이 끝난 후 매번 우셨다. 당시 서울에서의 드라마 촬영과 강원도에서의 영화 촬영을 병행했는데, 강원도로 오는 그 길이 그렇게 슬펐다고 하시더라. 현장이 너무 고통스러워서...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 역시 힘들었다. 영화 후반부 극단적 사건이 일어난 후 순임이 보여주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 김영애 선배님은 본인이 느낀 고통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끌고 나갔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 다듬어지지 않은 옥석…어떻게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현기증'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적지 않은 작품이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연출 방식은 데뷔작 '가시꽃'에서부터 일관되게 지적되어온 아쉬움이다. 이돈구 감독만의 색깔을 잃지 않되 세공이나 연마가 필요한 부분이다.

"영화 관련 수업을 받았다거나 연출부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기술적으로 다듬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매 작품 때마다 나도 그 부분에 아쉬움을 느껴 지금도 꾸준히 연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던  이돈구 감독은 연출을 독학한 케이스다. 연기에서 연출로 전향한 뒤 그는 장편 영화를 찍기 위해 아이돌 소속사의 문을 두드렸다. '포미닛'과 '비스트'가 소속된 큐브 엔터테인먼트의 영상팀에 들어가 제작 기술을 배우며 영화 제작비를 마련했다.

"그 당시 '개의 삶'이라는 단편 영화를 찍고 아는 형의 소개로 경력을 부풀려 영상 팀장으로 입사했다. 실질적으로 영상 관련 전문 지식이 없었다. 1년간 일하며 편집 기술을 배웠다.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공부한 것인 지금 영화를 찍는 밑거름이 됐다"

이돈구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꼽았다. 각기 다른 장르, 다른 정서를 품은 세 영화를 미뤄볼 때 이돈구 감독은 다양한 영화를 찍고 싶은 욕구가 강해보였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단, 코미디 영화는 못 만들 것 같다. 비극보다 더 어려운 게 희극이 아닌가. 사실 내가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다.  내 색깔을 살리면서 상업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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