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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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의 자기반성 "내 아버지에게…"

김지혜 기자 작성 2014.11.21 11:54 조회 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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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준 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린 시절, 독재자처럼 느껴졌던 아버지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저도 이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고, 그의 삶은 어땠을까',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버지를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나의 독재자'라는 제목에는 개인적 기억과 바람이 담겨있어요"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 제작 반짝반짝 영화사)는 만든 이의 자기 반성적 태도가 엿보인다. '천하장사 마돈나'부터 '김씨 표류기'까지 독특한 소재 아래에서도 특유의 따스한 감성을 놓치지 않았던 이해준 감독은 세 번째 영화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회고적 성격이 짙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물론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정서를 제외한 모든 설정과 캐릭터는 허구의 힘을 빌렸다. 김일성으로 분장한 설경구의 강렬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 영화 포스터는 자칫 '수령 동지'와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나의 독재자'는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 드라마다.

나의 독재자

대한민국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둔 1970년대. 국가에서는 회담 리허설을 위해 독재자 김일성을 연기할 대역을 찾는다. 만년 무명 배우인 성근에게 이 엄청난 역할이 주어진다. 홀어머니와 외아들을 부양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온 성근은 일생 일대의 배역을 맡아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회담 당시 쏟아진 기사 중에 리허설에 관한 내용이 있었어요. 잘됐을 경우와 못됐을 경우에 대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연습을 했다고. 또 실제로 대역을 맡았던 사람도 있었다더군요. 그 기사가 현실 같기도 하고 비현실 같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김일성의 대역을 맡았던 배우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까를 떠올려봤는데 이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풀면 재밌겠다 싶더라고요"

줄거리는 쉽게 떠올렸지만, 시나리오로 완성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감독은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신문기사를 바탕으로 배우와 연기,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녹여내야 했는데 100% 창작물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이야기 얼개는 잡았지만, 어떤 질감으로 풀어낼지가 고민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끊임없이 자기 의심을 했어요. '아, 이거 너무 후진 거 같은데...?'라고 걱정하다가 어느 날엔 '좋아. 이거 끝내줘!'와 같은 자기 위안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이야기가 완성됐어요"

이해준 감독

이해준 감독은 영화 속 배경이 된 1970년~1990년대가 한국 현대사에서 의미있는 시대인 동시에 개인에게도 남다른 시기였다고 말했다.

"1970년대는 제가 미취학 어린이였던 시대이고, 90년대는 청년 시절을 보낸 시기에요. 우리 부모 세대들은 70년대라는 한국 산업화 시대에서 가족이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독한 시절에 희생하며 살았잖아요. 그 노고를 우리가 거름 삼아 잘살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 이야기를 성근과 태식의 부자 이야기 속에 녹여내고 싶었어요"

이해준 감독은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영화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막상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자 반대했다고 했다.

"자신의 기호와 아들에 대한 기대는 별개였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는데 제 길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감독이 됐어요.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별말씀을 안 하세요. 제 영화 시사회에 오신적은 한번도 없지만, 아마도 몰래 제 영화를 다 찾아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해준 감독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배우의 숙명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해준 감독은 "배우는 어찌 보면 영화 작업을 할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한번도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 정도 알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라고 말했다.

'나의 독재자'는 설경구와 박해일의 눈부신 열연이 영화를 꽉 채운다. 김일성 대역으로 발탁돼 한평생 단 한 번의 무대를 기다리는 성근의 모습을 설경구는 광기에 가까운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대단한 배우예요. 현장에서 보면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까진 배우, 스태프들과 즐겁게 농담하고, 사진도 찍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요. 그러다가 "촬영 들어갑니다"하면 "어. 그래. 근데 오늘은 뭐 찍지? 콘티 한번 보자"하시고 촬영에 들어가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면 '이 배우가 좀전까지 웃고 농담하던 그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얼굴이 쏵 바뀌고 몰입해요. 천상배우죠"

감정적으론 감독의 분신과 같은 태식을 연기한 박해일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해준 감독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놓지 않아요.우아하게 자스민차를 마시면서도 콘티를 집중해서 보는 배우예요. 그래서 늘 연출자를 긴장하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설경구 선배의 연기에 대해 호평을 많이 하시지만, 박해일의 뛰어난 리액션이 있었기에 설경구의 액션이 있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배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충무로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한 것은 감독에게도 엄청난 행운일 터. 이해준 감독은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있다는 걸 목도하는 게 그리고 그 영화가 내가 만드는 영화라니....현장에서 모니터를 확인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할 정도로 영광이었어요. 제가 느낀 그 충만한 감정을 관객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해준 감독

이해준 감독은 영화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 '남극일기' 등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 입성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야기꾼 답게 연출만큼이나 글쓰는 작업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연출도 하게 된거지 처음부터 감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니었어요"라며 "글쓰는 건 늘 힘든 일이지만 동시에 편안함을 느껴요. 영화일을 하면서 유일하게 혼자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작업이거든요"라고 말했다. 

'나의 독재자'는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있어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의 연기력이나 감독의 연출력이 평가 절하될 부분은 아니다.

특히 스토리텔러로서 이해준 감독의 역량은 이번 영화에서도 십분 발휘했다.  차기작에선 또 어떤 휴먼 드라마로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할지 궁금해진다.  

ebada@sbs.co.kr

<사진=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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