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김옥빈 “이렇게 재밌는 연기, 안했으면 노숙자 되지 않았을까?”

강경윤 기자 작성 2014.11.25 09:50 조회 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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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연기 안했으면 뭐 했을 것 같아요?”란 질문에 김옥빈은 한참을 동그란 눈을 굴리더니 “노숙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 질문 뿐 아니라, 김옥빈은 늘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그녀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란 어려웠다. 선택하는 작품들도 그녀를 반영했다. 영화 '박쥐'를 비롯해 '다세포소녀', '시체가 돌아왔다' 등 실험작이 많았고 연기는 독특했다. 그에 반해 JTBC '유나의 거리'는 일상적이고 평범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작품에서 김옥빈의 진짜 매력이 돋보였다.

Q. 예전부터 '대표작품 두 개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던데. 영화 '박쥐'에 이어 드라마 '유나의 거리'까지 대표작 두 개가 생겼네요?

“맞아요. 한창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있었어요. 자기 대표작품을 그만큼 힘들 거든요.”

김옥빈


Q. 그런데 '유나의 거리'를 선택할 때 전작의 반응이 그렇게 좋지 못한 편이었죠?

“드라마 '칼과 꽃'을 마치고 곧바로 '유나의 거리'를 하기로 했어요.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닌데 '칼과 꽃'의 반응이 예상보다 저조했다고 위축되진 않았어요. '유나의 거리'를 만난 건 행운이었죠.”

Q. 일상적인 연기가 참 좋았던 거 같아요. 애청자였던 지인은 김옥빈 씨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얘길 들을 때마다 제가 고맙죠.”

Q. 많이들 김옥빈 씨가 '연기에 힘을 뺐다', '일상 연기를 했다' 하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거죠?

“감독님 영향이 커요. 감독님은 과장하는 걸 정말 싫어하시거든요. 꼭 일상처럼 보이길 바라셨어요. 찜질방 씬이 있으면 세트가 아니라 정말 진짜 찜질방에서 찍어야 했고, 옷에 브랜드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갈아입으라고 하셨어요. 창만오빠(이희준 역)이 싸울 때도 멋있게 싸우지 말고 소위 '개싸움'이라고 하죠? 그렇게 싸우라고 하셨어요.”

Q. 진짜 어딘가 살고 있는 인물들처럼?

“네. 그런 감독님 의도가 일상적인 연기로 끌지 않았나 싶어요.”

Q. 유나 대사 중에서 재밌는 대사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소매치기 유나와 간통녀 미선(서유정 역)이 착한 순위를 매길 때가 기억이 나요.

“미선이가 간통이니까 7위고 유나가 훔치는 거니까 8위다, 이런 대사였는데 허허실실하면서 찍었지만 실제로는 조금 짠했어요. 이 장면 촬영 전에 '소매치기가 더 나쁘냐 꽃뱀이 더 나쁘냐' 질문으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꽃뱀은 사람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거니까 더 나쁘다', 유정언니는 '네가 훔친 그 돈이 누군가가 평생 번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해서 한창 불 붙었던 적이 있었죠. 답은 아직도 모르겠어요.”

김옥빈

Q. '유나의 거리'에선 흠 없는 사람이 없는데 또 그렇다고 악역도 없어요. 흠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족한 걸 얼싸 안고 지내건데, 옥빈 씨도 촬영하면서 사람을 보는 시선도 좀 바뀌었겠어요?

“매일 착한 사람도 없고 매일 나쁜 사람도 없잖아요? 이분법적으로 사람의 한 면모로 좋든 싫든 평가하고 믿음을 갖는 게 얼마나 나쁜 건지 알게 됐어요.”

Q. 옥빈 씨도 워낙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연예인 데뷔 초에는 일면으로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죠?

“초기에 있었던 회사와는 마찰이 많았어요. MC도 해야 하고 잘 못하는데 예능도 해야 하고 화보도 해야 하니까요. 팬들에게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미숙했어요. 지금 매니저랑은 9년 째 일하는데 그 회사를 나온 뒤부터는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아요.”

Q. 데뷔 10년 차인데 흔히 연예인이 아닌 실생활에서 옥빈 씨는 어떤 모습인가요?

“모자 잘 안 쓰고 다니고 선글라스도 콧대 눌리는 게 싫어서 잘 안 써요. 그런데 그런 지점은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얘기하는데 그게 꼭 좋은 얘기만은 아닐 수 있잖아요. 제 직업이 가진 특수성 때문에 매번 그 순간을 버틸 수 없어서 가끔 그 자리를 피하는 건 있죠.”

Q. 인터뷰 전에는 굉장히 어둡거나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솔직하고 오히려 시원시원한 모습이 더 많네요.

“희준 오빠가 인터뷰 할 때 저에 대해서 '현장에서 베테랑이어서 부럽다' 심지어 존경스럽다는 표현까지 했던데.(웃음) 저는 제 안에는 스트레스가 없는 스타일이고 담아두질 못해요. 화를 담아두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불편한 점이나 고쳐야 될 게 있으면 말해요. '저기요, 그거 아니예요' 이렇게요.”

김옥빈


Q. 이희준 씨 얘기가 나온 김에, 이희준 씨야 말로 워낙 오랜 연극무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일상 연기에는 특화된 배우 아닌가요?

“맞아요. 무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정말 연기가 자연스럽고 아이디어도 많아요. 감독님이 얼마나 희준 오빠를 사랑하는지 샘날 정도였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말했어요. '저 여배우예요. 저도 좀 사랑해주세요' 이렇게요.(웃음)”

Q. 배우들끼리 워낙 친해졌나봐요. '유나의 거리'에서 유독 술마시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주량도 좀 센 편이죠?

“그런 거 같아요. 스물세살까지 제가 약하다고 생각해 술을 안 마셨는데 영화 '박쥐'를 촬영하면서 술이 늘었어요. 선배님들이랑 술자리를 하면서 연기 얘기하고 작품 얘기하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렇다고 뭐, '마셔라'하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고주망태 되는 사람도 없고. 기분 좋게 다들 정리하고 잘 들어가는 술자리를 좋아해요.”

Q. 요즘은 드라마 끝났는데 만나면 뭐하나요?

“얼마 전엔 희준오빠 극단의 연극을 다 같이 봤어요. '뜨거운 여름'이라고요. 잔잔하게 여행하는 느낌이었는데요. 그걸 보면서 내가 뭘 좋아했구나란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Q.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진 모습이 보기가 좋아요.

“10년 정도 연기해보니까 이 일이 저에게 제일 잘 맞아요. 제일 재밌고요.”

김옥빈


Q. 그렇게 좋은 배우 안됐으면 뭐 했을까요?

“글쎄요? 노숙자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드라마 '미생'을 보니까 체계적이고 그런 시스템에 적응을 제가 잘 못해요. 반항적인 성격도 크고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직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Q. 유나에게는 결핍이 있잖아요. 엄마의 부재라는. 옥빈 씨에게도 결핍이란 게 있나요?

“있었어요. 어릴 때. 어렸을 때 뭔가 잘 했어도 부모님께 격려나 칭찬을 잘 못 받았던 거 같아요. 칭찬을 받아도 '잘했어. 하지만 너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많으니까 더 노력해' 이런 식이었던 거 같아요. 연기를 공부하면서 제 결핍이 뭘까 생각하고 분석도 해보다가 혼자 결론을 내렸어요. 칭찬이 조금 부족했구나. 그래서 나름대로 치유의 과정이 있었어요.”

Q. 어떤 치유예요?

“좀 재밌는 건데요. 이 앞자리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어린 시절 제가 못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하는 거예요. '이 아이는 이미 정말 잘 하고 있고 풀 죽이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요'라고요. 그게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번 해보세요.”

김옥빈

Q. 요즘은 어떤 생각이나 고민을 많이 해요?

“얼마 전에 영화 '루시'를 보고 제로의 법칙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광활한 우주에서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현재에 있는 걸 더 소중히 여기자는 생각을 했죠. 마침 희준 오빠가 선물해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읽고 더 확신을 얻었어요.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걸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요. 지금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Q. 배우 이희준 씨의 모습도 창만이란 캐릭터도 참 따뜻한 모습인데요. 실제로 창만을 닮은 남자가 나타난다면 결혼 생각은 있어요?

“아직은 일에 더 집중을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 두려운 것도 있어요. 결혼 혹은 육아의 기쁨이 일하는 기쁨보다 더 크다면 내가 어떻게 달라질지요. 지금은 제 일이 정말 좋아요. 그냥 지금의 저로 살고 싶어요.”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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