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미생’ 손종학 “아버지 유언에도 연기 포기 못한 난, 장그래였다”

강경윤 기자 작성 2014.12.10 10:38 조회 2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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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학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tvN '미생'에서 마부장은 원 인터내셔널 에이스 부서를 이끄는 부서장이다. 차기 임원이 유력한 마부장은, 리더십과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갖췄으며 경영진 기대를 성과로 완성하는 성실한 조직원이다. 동시에 그는 신입 안영이를 '계집'이란 이유로 기를 죽이고, 승진을 앞둔 과장의 '조인트'를 차는 무지막지한 마초적 인물이다.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조직 내에서 흔히 존재하는, 전형적인 '괴물'의 모습을 닮았다.

뼛속부터 그 인물인 듯 마부장을 연기하는 배우 손종학은 어떤 모습일까. “안영이, 너 이리와!”란 호통을 칠 것 같았지만, 그는 현실에서 꽤 부드러운 어투가 인상적이고 장난기가 여전히 엿보이는 눈웃음을 가졌다. “마부장은 어떤 사람일까요?”란 말에 그는 “아픈 사람, 그리고 직장 밖을 나서면 외로울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손사래 치는 마부장에 대한 손종학의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배우로 불린 지 28년이다. 손종학은 극단 민예로 시작해 대부분의 시간을 '연극쟁이'로 살았다. '날보러와요', '늙은 부부이야기', '필로우맨' 등 연극 수십편을 위해 무대에 섰고, 2003년 서울연극제 연기대상을 차지한 잔뼈 굵은 연극인이다. 28년 전 손종학은 어떤 '장그래'였을까.

손종학


◆ 아버지 마지막 말씀 “할만큼 했다, 이제 그만해라”

“건축학과에 입학해 다니다가 2학년 때인 1987년 우연히 극단 민예에 들어가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씐 것 같아, 그런 시기에도 정치나 사회 이런 게 뭔지도 몰랐거든요. 철부지였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면서 연극을 했던 거 같아요.”

그 때를 '배고픈 시절'로 기억하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바둑만 보다가 직장에 뛰어든 장그래와 다를 바 없었지만, 손종학은 그 시절이 가장 재밌었다고 말했다. “배고픈 시절이라도 하루에 세끼는 먹었어요, 그래도(웃음). 그럼 됐죠. 몸은 고달파 쓰러질 것 같아도 연기를 할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손종학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은 2002년이다. 장손이었던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2002년에 돌아가셨거든요? 들어가기 힘든 건축학과에 진학해서 갑자기 연극한다고 아버지가 많이 걱정하셨어요. 또 제가 장손이었어요. 병원에서 6개월 계시다가 나흘만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유언이 '연기 이제 그만해라. 할만큼 했다'였어요.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이듬해 연기대상을 받아 그 상패를 제사상에 올려드렸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손종학

◆ 28년 전 장그래가 마부장으로…그는 정말 악역일까?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희열'과 뜨거운 심장으로 버텨낸 시간을 거쳐 손종학도 이제는 중견 배우가 됐다. 장그래 역은 아니지만, 중년의 마부장으로 일상의 치열함을 연기할 기회가 주어졌다. 시청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고 있지만 손종학은 마부장을 미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부장을 연기하는 저 조차 그를 미워하면 마부장이 너무 불쌍해지잖아요. 그를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악역이라면 사회가 만들어낸 악이겠죠. 그렇다고 섣불리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진 않아요. 대본에 충실해요. 마부장이 직원들에게 거칠게 대한 행동들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아요.”

실제로 손종학 배우와 마부장은 얼마나 닮았을까? “당연히 제 안에 있는 모습 중 하나가 나오니까 연기하는 게 아니겠어요. 성격이 직선적이고 시간 약속 늦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거나, 후배들을 막대하진 않아요. 그럼 이 연극판에서 지금까지 살아남겠어요?(웃음)”

손종학


◆ 수많은 안영이·장그래들아 “취하지 말고 있어라”

마부장을 떠올리면 와닿지 않지만, 손종학은 20대 배우들이 '형, 오빠'라고 부르기도 하는 편한 선배다.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걸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기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현재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맨 프럼 어스' 역시 이원종 프로듀서의 술자리 제안에 단숨에 OK를 했을 정도로, 인간냄새를 빼고 손종학을 얘기할 순 없다.

'미생'을 통해서 만난 후배들을 볼 때면 손종학은 뿌듯한 마음이 크다. 임시완, 강하늘, 강소라, 변요한 등 신예들이 제 역할, 그 이상을 해내는 걸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손종학


“각자 자기 색깔 잘 내고 있지 않나요? 그 나이에 엄청난 중압감이 있을텐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범하고 좋은 배우로 성장하는 거겠지요.”

20대의 장그래 시기를 지나온 손종학에게 이 시대 장그래들과 안영이들을 위한 격려를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직의 괴물로 자란 마부장을 연기하는 손종학이 건네는 위로는 새로운 위로가 될 듯 해서였다.

“'미생'을 보면 오과장이 '취하지 말고 버텨라'는 말을 해요. 저도 그 얘길 꼭 하고 싶어요. '취해있지 말라'고요. 너무 찌들어있지 말고 너무 오버하지도 많고. 지금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건강한 기운을 주눅 들지 말고 지키라고요. 꼭 버텨서 살아남아 달라고요. 국가와 사회, 어른들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는 '미생'이니까 가슴 아프지만 일단은 꼭 버텨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손종학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장소제공=종합문화시설 가예헌(문의전화:02-764-3330)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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