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라이프 문화사회

[인터뷰] ‘셜록 홈즈’ 김도현, 강박과 도발이 만들어낸 사나이

강경윤 기자 작성 2014.12.22 11:01 조회 6,031
기사 인쇄하기
김도현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배우 김도현은 작품을 보고나면 유독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처럼 파닥파닥 거린다. 그 비결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결 중 하나는 김도현의 강박과 도발이었다.

뮤지컬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에서 셜록은 권총을 들고 “지루해”를 연발한다. 복잡한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사건을 만났을 때 셜록의 눈은 빛난다. 이 모습은 아이러니 하게도 김도현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다. 김도현 역시 스스로를 괴롭힐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 그 때야 눈빛이 반짝인다.

김도현이 '셜록 홈즈' 초연부터 함께 했다는 사실은, 셜록을 향한 김도현의 애정을 짐작케 한다. 같은 작품을 수년간 하면 익숙해질만도 한데 김도현은 “여전히 난이도가 높고 도전의식을 꿈들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도현

-연말인데 '셜록 홈즈'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고 있다.

“아무리 연말이라도 이렇게 겹치기를 하는 건 나 역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아침에 일어날 땐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란 생각을 하면서 그날 공연이 있을 작품의 OST를 크게 틀어놓는다. 운전할 때도 꼭 OST를 듣는다.”

-그럼에도 '셜록 홈즈'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면?

“셜록은 연기하기에 굉장히 '재밌다'. 일부 관객들이 '너무 오래한다' 이런 지적도 하시지만 영국이나 러시아를 보면 배우가 한 작품을 10~20년 씩 하기도 한다. 오히려 굉장한 배우라고 칭찬하지 않나. 우리나라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이런 반응도 나오는 것 같다.”

-이번 시즌에선 어떤 셜록을 표현해보고 싶었나?

“지난 시즌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부분, 시간 때문에 시도를 못했던 걸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셜록은 진화할 수 있는 캐릭터다. 셜록의 극중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나는 아직 그 나이가 안 됐지 않나. 표현해보고 싶은 여지가 굉장히 많다.”


-어떤 부분이 매력적인가.

“일상적이거나 상식선에서 이해되는 행동이 아닌데도 셜록의 연기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기점이 성공했을 때 엄청난 희열을 경험한다. 또 넘버들이 굉장히 어렵고 대사들도 많아서 쉽지 않다. 대사의 운율도 난해하다. 수준 있는 화술을 편안하게 해야 하니까 배우로서는 늘 부담을 갖게 하는 캐릭터다.”

-김도현 배우의 연기를 보면 늘 2%씩 느껴지는 여백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웃음도 터지고 무릎도 치게 된다. 치밀한 계산과 연구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어떤가.

“정확하게 얘기했다. 하나의 애드립을 하기 위해서 보통 10~20개 정도 변수를 생각하고 연습을 한다. 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연출에게 보여주기도 하면서 가장 좋은 서너개를 추린다. 그리고 그날 극장과 공연 컨디션에 따라서 서너개 중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걸 선택해 연기한다.

-애드립 연기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이라는 건데, 실제로 굉장히 재밌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렇게 웃기진 못한다. 회식할 때도 웃기기 보다는 조용히 회비 걷고 진행하는 스타일이다. 사석에서도 작품 얘기만 하는 진지한 스타일이라서 후배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데뷔작이 '오셀로'다. 다소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돈을 받고 연기한 게 '오셀로'가 처음이었다. 부모님과 서른까지만 연기해보고 안되면 포기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한예종을 졸업하고 서른살 12월에 오디션에서 '천사의 발톱'이란 작품으로 주연으로 처음 발탁됐다. 얼마나 기뻤는지 2시간 동안 펑펑 울었다.”

-대학 때는 어떤 캐릭터였나.

“건방져서 선배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했기 때문에 선후배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말을 좀 거침없이 했다. 버릇 없이 했다는 게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선배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배우로 데뷔한 이후에도 연출님, 음악감독님, 안무 감독님도 존중하지만 '선생님'이란 개념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배우와 연출은 모두 공동 창작니까 '선생님'으로 부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김도현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배역에 있어서 공통점이 없다. 배우들이 어려워할 역할만 골라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맞다. 역할을 선택할 때는 늘 도전적이다. 캐릭터가 연이어 겹치거나 연기할 때 비슷한 부분이 거듭되면 괴롭다. 작품이 대형 작품이냐, 혹은 이 걸 통해서 내가 주목받느냐는 나의 선택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연기를 할 때는 배우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배우의 이미지나 혹은 전작의 역할을 보고 캐스팅 해야만 입장에서는 굉장히 난해한 조건이다.

“지금은 10년 이상 됐으니까 감독님이나 제작자가 김도현이라는 배우에게 검증된 몇 가지를 알고 있을 거다. 졸업하고 시작했을 땐 이미지가 전무했는데 그 땐 그걸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절 모르는 분들에겐 그게 매력적인 부분이 아니고 제작자들은 매번 시험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 어렵긴 할 거다.”

-매번 다른 역할을 맞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을텐데?

“힘들다. 솔직히 힘들어 죽겠다. 그만두자란 생각은 2년 전에도 했고 최근에도 했고 매번하고 있다. '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곈데?'라고 생각할 때 배우로서 가장 괴롭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분명히 성취하는 뭔가는 반드시 생기는 게 신기하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뭔가.

“계속 다른 연기를 하다 보면 연기술이라는 주 무기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배우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등 어떤 배역을 맡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면, 반대로 숀펜이나 최민식 선배님처럼 어떤 배역을 맞든 간에 그냥 그건 그 인물이 되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뭔가 진득하게 캐릭터에 눌러 붙은 것 같은 분위기. 어려울수록 그 길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있었나보다.”

-마치 난이도 낮은 수능문제에 유독 약한 사람 같다.

“맞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보다 난이도가 낮은 문제를 더 어렵게 푸는 스타일이다. 여러 가지 탈을 써보고 싶다. 찌질해 보이고 싶고 악해보고 싶고 또 나약해보고 싶다. 50살 쯤 됐을 때 김도현이 맡으면 어떤 역할이든 기대가 된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배우 최민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선배님의 그 묵은지 같은 내공이 존경스럽다. 사실 맹목적으로 좋아한다.(웃음) 영화를 보다보면 '에이, 저런 냄새를 어떻게 이겨' 이런 생각이 든다. 변신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그 사람으로 보이니까. 류승용, 송강호 등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부럽고 또 부럽다.”

김도현


-계속 셜록에 도전하는 건 그만큼 더 해보고 싶은 게 많다는 걸로 보인다.

“회사원이 회사 출근하듯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 셜록을 연기하고 싶지 않다. 배우들이 매일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는 것처럼 나 역시 매일 새로운 셜록을 만나지 않나.”

-2014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 목표가 있다면?

“태어난 지 한달 된 아이가 보통의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연기만은 안했으면 좋겠다. 굳이 한다고 하면 '쉽지 않은 길'이라고 설명을 해줄 거다. 그리고 배우로선 그만두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무대에서 15년 했으니까 이제 장르를 좀 더 확장시키고 있다. 물론 무대는 끝까지 놓지 않을 거다. 개인적으로는 사랑밖에 없는 조금은 무능한 아버지 역할을 해보고 싶다.”

사진제공=클립서비스

kykang@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