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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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남 1970' 유하 감독은 왜 강남 비화에 10년을 쏟았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1.27 10:37 조회 3,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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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유하 감독은 이창동 감독과 함께 충무로의 대표적인 문인 출신 연출자다. 그는 1988년 '무림일기'로 등단해 1991년 발표한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연작시를 통해 강남구 압구정동을 정치적, 물질적, 성적 욕망이 뒤엉켜 타락한 곳으로 풍자해 화제를 모았다. 

이 시집은 당시 10만 부가 넘는 판매량를 올리며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무렵 한 영화제작자가 그를 찾아와 시집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거액의 판권 계약을 제안했다.

유하 감독은 "그만큼 주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영화 연출은 제가 해도 될까요?"라고 답했다. 2년 뒤 그는 동명의 영화로 충무로에 데뷔했다. 이 시집은 유하 감독의 인생을 이렇게 단숨에 바꿔놓았다.

비단 데뷔작뿐만이 아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모두 이 시집을 모태로 한다. '폭력 시리즈' 3부작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강남 1970'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밑그림과 정서적 뿌리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말죽거리 잔혹사'가 제도교육의 폭력성에 유린당하는 청춘을, 두 번째 이야기인 '비열한 거리'가 돈이 폭력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라면 세 번째 이야기인 '강남 1970'은 강남의 개발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두 청춘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과 배신의 드라마를 펼쳤다. 이를 통해 강남 신화 나아가 한국 산업화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풍자했다.

10년에 걸친 강남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은 유하 감독을 만났다.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을 강남 비화를 그리는 데 쏟았을까. 그 이야기의 탄생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그의 답변을 전한다.

강남

◆ 유하 감독의 추억과 강남 개발 비화의 만남

전북 고창 출신인 유하 감독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1학년때 서울로 올라왔다. 또 한 번의 전근으로 동대문 답십리에서 지금의 삼성동으로 온 것이 강남 이주의 시작이었다.

방배동에 위치한 상문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낸 3년은 훗날 '말죽거리 잔혹사'의 토대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 이후 자신의 추억을 좀 더 확장, 가공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열한 거리'로 깊이를 뒀다면, '강남 1970'은 이야기의 범위와 깊이 두 가지를 동시에 확장한 작품이다.

"손정목 씨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남 1970'의 이야기에 착안했다. 그 책의 '강남'편에 보면 정부가 땅 투기를 하고 시장이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했으니 이게 희극이냐 비극이냐"는 구절이 있다. 강남이 그렇게 태동한 도시였다는 게 충격적이면서 흥미로웠다"

미국의 대표적인 감독 우디 알렌은 영화 대부분을 뉴욕에서 촬영했다. 감독에게 뉴욕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도시 이상이다. 유하 감독에게 강남이 지닌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반된 이미지가 혼재하는 그곳은 그 자체로 시적이며, 영화적인 공간이었다.

유하 감독은 "황금빛 벌판이 펼쳐진 드넓은 평야였다"고 강남에 대한 첫인상을 떠올렸다. 이어 "1974년 이사를 와 처음으로 맞닥뜨린 강남은 농경문화와 도시문화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기이한 공간이었다"고 기억했다.

"난 강남 개발 초기에 이주해와 내부자로 살았지만, 심리적으로는 경계인이었다. 강남에서 만난 친구 중에는 오렌지족 친구도 있었지만, 넝마주이 친구도 있었다. 강남 내부의 양극화는 예나 지금이나 심화하고 있다. 내가 봐왔던 그런 상반된 이미지를 이번에는 느와르와 블랙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녹여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유하감독

◆ '강남 1970', 동어 반복과 영역 확장 사이

'강남 1970'은 폭력 3부작의 완결편이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섞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장르적, 정서적으로 일견 닮았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를 두고 동어 반복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쓰면서 '비열한 거리'의 확장판 같은 느낌 때문에 한 번 덮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쓰게 된 건 더 큰 이야기가 있다고 여겨서였다.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현실을 탈출하는 게 아니라 영화 속에서 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뚜렷했다. 그래서 밀어붙였다"

투자 받기도 쉬운 건 아니었다. 그는 "느와르 장르의 컨벤션(관습)이 두드러지면 관객이 익숙하게 볼 수도 있겠다는 지적에 투자가 한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영화에는 이민호가 있었다. 캐스팅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인기는 아니었는데 드라마 '상속자들'이 잘되고 나서 (투자가)쉽게 해결됐다"고 전했다. 

연출 스타일이 다소 올드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70년대 이야기를 70년대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 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셨던 '명동블루스'라는 작품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그 시절 강남 분위기를 재연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미술, 당시 자료를 많이 찾았고 그대로 반영하려고 했다. 말죽거리의 복덕방 촌, 벌판 뒤에 서 있는 현대아파트 같은 내가 어린 시절 본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70년대 히트팝인 프레디 아길라의 '아낙'(Anak)을 메인 OST곡으로 사용하고,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삽입해 시대적 분위기를 한층 살렸다.

배우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을 찾았다. 그 결과 이민호, 김래원의 조합이 탄생했다. 각기 다른 개성의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이 영화가 수컷 향기 물씬 풍기는 느와르 영화로 완성되는 데 일조했다.

강남

◆ "뒤틀린 자본주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 묘사된 정경유착과 모럴 해저드가 비단 그 시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규모와 형태가 다를 뿐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유하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든 의의를 그곳에서 찾았다.

"천민자본주의는 지갑이 형님이다. 돈을 위해선 안 되는 일도 기꺼이 한다. 목적을 위해선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도 말살되는 세상 아닌가"

유하 감독은 돈과 땅과 폭력이 공존하는 산업화 사회에서 두 남자가 어떻게 성장하고 또 희생되는지를 보여주며 뒤틀린 자본주의를 향한 풍자와 조소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폭력성 역시 감독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의 일환이다. 그는 "어차피 성인들을 위한 영화고, 이유 없이 폭력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부와 권력의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나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자기 땅도 아닌데 열심히 싸우다 희생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욕망의 도시 강남이 탄생했다는 걸 원초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보기에 따라서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극대화 시켜주는 장면이 있어야 폭력의 허무함과 부질없음을 보는 이도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주제 의식은 마지막 한 신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검은 권력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준 그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화려한 강남의 풍경과 권력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한 인물을 통해 천민 자본주의 단면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결국 그 장면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드러낸게 아닌가 싶다"

장장 10년의 여정의 마침표를 찍은 유하 감독은 차기작에선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만 연출해왔지만, 다음 작품은 남이 쓴 시나리오를 받아서 영화로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내가 쓰고, 직접 연출을 하다보니 객관적인 시선이 안 생기더라. 초심으로 돌아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멜로도 해보고 싶고, 코미디에도 관심이 있다. 이젠 어두운 이야기에서 벗어나 밝은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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