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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순수의 시대', 한국판 '색,계'의 허술한 만듦새

최종편집 : 2015-02-26 11:29:53

조회 : 4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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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 제작 화인웍스)는 '한국판 색,계'라는 타이틀로 홍보됐다. 불안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권력의 중심에 선 사내와 치명적 미모를 갖춘 여자의 멜로를 그린다는 점은 일견 닮았다. 그러나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를 섞어낸 솜씨나 감정의 밀도는 그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398년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이 반대파인 정도전 일파를 대상으로 피의 숙청을 벌인 '왕자의 난'이 벌어진 해다. 권력과 왕좌를 향한 힘의 대립이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매우 영화적이다.

'순수의 시대'는 파란만장한 역사에 가상의 인물을 투입해 흥미로운 팩션극을 만들고자 했다. 승승장구하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제거당한 배경에 그의 사위 김민재라는 인물이 있었고, 이 인물에게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었다는 가정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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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제 손에 피를 묻혀 개국을 도운 왕자 이방원(장혁)이 아닌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한다. 왕이 되고자 했던 이방원과 태조의 신임을 등에 입은 정도전은 대립하기 시작한다. 

정도전에게는 조선 최고의 무공을 자랑하는 사위 김민재(신하균)가 있다. 김민재는 북의 여진족과 남의 왜구로부터 끊임없이 위태로운 조선의 국경선을 지켜낸 공로로 군 총사령관이 된다. 여진족 소생인 김민재는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 날 어미를 닮은 기녀 가희(강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의붓아들 진(강하늘)과 더불어 이방원과도 얽히기 시작한다. 

영화는 섹스에 탐닉하는 이방원과 살육의 칼을 휘두르는 김민재를 대비시키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살(殺)과 색(色)을 아우르는 사극을 만들겠노라는 야심을 보여주는 듯 말이다. 

그러나 '순수의 시대'는 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지지 않으며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낳았다. 가상의 인물을 역사 안에 삽입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가길 기대했지만, 어느 순간 색에만 집중하며 이야기가 흔들린다. 

베드신은 예상을 능가하는 수위와 횟수를 자랑한다. 그러나 보는 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전시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게다가 색에 취한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역사의 치열함과 장중함 마저 잊어버린다. 감독은 역사를 바꾼 단 한 번의 사랑을 그리고자 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베드신만 두드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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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캐릭터 간 멜로 라인은 감정적인 축조가 빈약한 상태로 이어붙인 듯한 느낌이 들어 클라이막스에 서도 보는 사람의 감정 동화를 유발하지 못한다. 

아쉬운 만듦새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신하균은 남성적 외면 안에 가려진 순수성을 극대화한 캐릭터를, 장혁과 강하늘은 종전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권력과 욕망에 휩싸인 캐릭터를 맡았다.

하지만 신하균은 내면의 남성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근육질의 육체를 전시하는 데 그친다. 장혁과 강하늘은 뛰어난 역량을 가진 배우임에도 평면적인 캐릭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특히 장혁의 이방원은 세조를 새롭게 창조한 '관상'의 이정재과 비교하면 아쉬운 결과물이다.

발견이라면 신예 강한나일 것이다. 스크린 첫 주연작에서 과감한 노출 연기와 안정된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는 '순수의 시대'라는 근사한 제목을 채택했다. 그러나 제목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는지도 의문이다. 인간 내면의 순수가 아닌 본능적 탐욕에 대한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개봉 3월 5일, 상영시간 113분, 청소년 관람불가.

ebad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