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김현석 감독은 왜 중년의 오근태를 포기할 수 없었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3.01 16:53 조회 6,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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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시라노:연애조작단'이 끝나고 당분간 멜로 영화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는 멜로가 질렸다고 말했었는데 실은 감성이 메말라버린 제 자신을 발견한거죠. 그런데 2013년 1월 1일이었어요. 전날 송년회에서 과음하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에게 문자가 한통 왔어요. "밖에 눈 와요"라고. 그걸 보는 순간 미뤄뒀던 '쎄시봉'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김현석 감독은 '충무로의 사랑꾼'이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을 통해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의 기틀을 마련하며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장르적으로 멜로만 고집한 건 아니었다. 그는 'YMCA 야구단'같은 코미디 영화도 만들었고, '열한시' 같은 SF 영화도 찍었다. 그러나 그가 멜로 장르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해온 건 영화 관계자도, 또 관객도 알고 있다.

그는 최고 흥행작 '시라노' 이후 당분간 멜로 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말로는 로코와 멜로에 질렸다고 말했지만 감성이 말라버린 자신을 발견했다고. 자신은 늘 광식이라고 생각으나 광태로 변한 발견하는 순간이 잦아졌다고도 했다.

그러나 천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열한시'로 장르 외도를 한 후 1년 만에 '쎄시봉'으로 돌아왔다. 음악 영화의 외피를 띈 멜로 영화이자 청춘 영화로 말이다.

김현석감독

◆ "내가 주목했던 건 '쎄시봉'의 과거가 아닌 현재"

'쎄시봉'은 1970년대 포크 열풍을 일으킨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등을 배출한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 작품.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쎄시봉의 탄생 비화 보다 가상 인물을 내세운 픽션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것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쎄시봉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분들의 노래가 주인공이면서 과연 이 노래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상상에서부터 출발한 영화에요. 20대 시절의 쎄시봉은 물론이고 중년이 된 쎄시봉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오근태, 민자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주인공이 되거고요. 초고를 써서 쎄시봉 선배님들을 찾아뵙는데 그분들조차 "어? 내가 주인공이 아니네?"라고 반응하시더라고요"

김현석 감독은 오근태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첫사랑의 신화를 투영했다. 어리바리한 20대 대학생 오근태(정우 분)가 민자영(한효주 분)이라는 쎄시봉의 뮤즈를 만나 사랑에 눈뜨고, 음악을 배우고, 실연을 통해 삶의 아픔을 겪는 일련의 과정이 영화 '쎄시봉'의 주요 이야기다.

영화는 음악을 통해 추억 여행을 안내하고, 서투른 사랑으로 대변되는 그 때 그 시절의 청춘을 보여준다. 특히 '쎄시봉'의 주옥같은 포크넘버와 사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화의 전반부는 요 근래의 어떤 음악 영화보다 완성도가 높다.

쎄시봉

그러나 영화는 쎄시봉 인물들의 과거를 넘어 미래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노출한다. 이야기와 인물이 바뀌면서 전,후반부가 마치 다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중년의 오근태와 민자영이 재회한 후반부에 대한 관객들의 아쉬움이 컸다. 김윤석과 김희애의 연기는 그 자체로는 훌륭했으나,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그들의 존재는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김현석 감독은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이유있는 항변을 내놓았다. 그는 "이 이야기를 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이국의 공항에서 오열하는 40대 남자의 뒷모습이었다"면서 "쎄시봉 실존인물들의 사랑과 음악을 다루는 것보다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와 해석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정우와 한효주가 김윤석, 김희애로 바뀐 배우 기용에 대해서는 "근태의 경우 20대와 중년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길 의도했다. 그 20년의 세월을 통해 달라진 근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김윤석 선배님을 캐스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쎄시봉

◆ "왜 매번 찌질남이냐고요? 순애보라고 생각해요"

김현석 감독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외사랑에 속앓이 하는 안쓰러운 남자들이 등장한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식이(김주혁)가, '시라노 연애 조작단'에서는 상용(최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혹자들은 연애 환자인 이들을 두고 '찌질이'라고 하기도 했다.

"불완전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사람 자체가 불완전한 게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만 불완전한 남자들이지. 근태를 연기한 정우에게도 "얜 바보가 아니라 자영이 앞에서만 바보가 되는 인물이다.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약자가 되고 루저가 되지 않나. 난 그게 순애보라고 생각한다"

'쎄시봉'은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건 어쩌면 감독의 신념일 것이다. 김현석 감독은 "쎄시봉 어르신들이 몇해전 TV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 나이에도 저렇게 젊을까?'싶더라. 생각해보니 그분들이 늘 사랑을 하고 살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 내레이션 문구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관도 나이에 따른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김현석 감독은 사랑에 있어 순수함을 추구하던 사람이었고, 비록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라도 그 아련함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김현석감독

"연애라는 게 늘 아릅답지 않더라. 현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기도 하고. '시라노'때까지만 해도 이뤄지지 못해도 아련한 감정을 즐겼는데 어느 순간 '걔가 어떻게 살든 말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변할 때가 있더라"

말은 이렇게 해도 김현석 감독의 사랑에 대한 신념과 멜로 영화에 대한 애착은 변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명문대 경영학도였던 그가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것은 배창호 감독의 멜로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보고 나서였기 때문이다.

영화계에 입문한 계기도 대학 재학 시절 쓴 시나리오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공모에 합격하면서부터였다. 이러한 역사가 모여 김현석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멜로 영화 감독이 됐다.

SF로 외도를 했다 멜로로 돌아온 감독에게 "반갑고 고맙다"며 "앞으로도 좋은 멜로 영화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잘하는 걸 잘하는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잘하려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현석 감독의 차기작은 코믹액션스릴러의 탈을 쓴 멜로 영화 '경찰대 미술반'이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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