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스물' 이병헌 감독에게 하고픈 말…"잘했어요 병헌씨"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4.06 18:14 조회 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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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일찍이 민태원 선생은 '청춘예찬'이라는 글을 통해 청춘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통용되는 '청춘'의 정의는 옛날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언젠가부터 이 단어에 현실 문제가 개입되고, 경제적 어려움마저 가중되면서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라는 비관의 수식어가 달리기 시작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영화까지 청춘을 암울하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이병헌 감독의 첫 번째 상업영화 '스물'은 쓸데없는 무게감에 짓눌려 인생을 비관하는 청춘이 아닌 나사를 풀어버린 생각 없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다.

쓴물 빠진 청춘물은 지나치게 가볍다는 꼬투리도, 일말의 진지함이나 성찰도 없이 오로지 말장난 밖에 없는 영화라는 비판도 '스물'을 향한 관객들의 관심을 꺽지는 못했다. 이병헌 감독이 설계한 세 청춘들의 병맛 유머는 순식간에 200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병헌감독

◆ "10년 전 쓴 시나리오, 원제는 '으리으리'"

이병헌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강형철 감독과 손발을 맞춰온 그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2'를 통해 일급 각본가로 자리매김했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 이병헌 감독도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웠고, 꾸준히 기회를 엿봤다. 2012년 제작한 장편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는 감독으로서의 그의 재능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 신인감독의 입봉기를 재기발랄한 유머로 그러낸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스토리로도 주목받았다.  

상업영화 데뷔작인 '스물'은 무려 10년 전에 쓴 시나리오가 토대가 됐다. 그는 "당시 어떻게 이 시나리오를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제작사 대표님이 찾아와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했고 스무살을 관통하는 세 청춘의 이야기에 집중해 각색 작업을 해나갔다"고 말했다.

"원작은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넒은 범위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산만하고 상업적인 포인트가 약하다고 느꼈다. 3개월에 걸쳐 시나리오를 새로 쓰다시피 했다"

시나리오의 원제는 '으리으리'였다. 이병헌 감독은 "세 청춘의 우정을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지은 제목이었는데, 아우...지금 생각하니 너무 유치하더라"며 "스무살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 직관적으로 '스물'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입봉을 위해 이병헌 감독은 자기와의 타협부터 진행했다. 그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면서 몸과 머리로 체득한 감을 살려 영화의 상업적인 면을 최대한 부각했다.

"스스로 타협점을 찾았던 것 같다. 일단 15세 정서로 이야기를 맞춘 게 그 출발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난 19세 영화를 기가 차게 만들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하하. 그다음 익숙한 이야기를 재밌고 편안하게 담는 데 주력했다. '스물'을 보다 보면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 꽤 있을 텐데 그 전형성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었다"

이병헌감독

◆ "'스물'의 핵심은 캐릭터 플레이, 판을 짜는게 중요했다" 

'스물'은 웃긴 영화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보이는 캐릭터의 개성도 남다르고, 그 인물들의 행동과 말은 시종일관 배꼽을 흔든다.

미성년에서 성인의 관문을 통과하는 세 주인공은 그또래의 여느 친구들처럼 대학, 연애, 꿈과 같은 고민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아주 쿨하게 풀어나간다.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친구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친숙하게 느껴질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기둥 줄거리를 짠 다음 나머지는 캐릭터들이 이야기 안에서 잘 뛰어놀 수 있게 판을 짜는 게 중요했다"

'인기만 많은 놈' 치호, '생활력만 강한 놈' 동우, '공부만 잘하는 놈' 경재는 영화의 90%를 차지하는 핵심 캐릭터다.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은 이병헌 감독이 설계한 판 아래에서 신나게 뛰어논다. 동갑내기 세 배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절묘한 시너지를 발산했다.

세 배우의 캐스팅은 감독도 인정한 신의 한 수였다. 기획 당시만 하더라도 김우빈과 강하늘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이 진행될무렵 '상속자들'과 '미생'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두 배우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감독은 "시나리오의 힘이 아니었다면 캐스팅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이 바쁜 세 배우를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각본의 힘이었다. 이병헌 감독의 특기인 말맛은 '스물'이 선사하는 웃음의 핵심이다. 세 캐릭터의 병맛 가득한 행동과 대사는 '스물'이 웃음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잡아주는 건 코미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스물'은 캐릭터 플레이가 핵심이 되는 영화고 그 양념은 코미디로 치고 싶었다. 그러나 보니 영화가 한편의 시트콤 같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

스물

◆ "'슬로무 모션 시퀀스', 유독 긴 이유는…"

이병헌 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면은 영화 후반 등장하는 슬로우 모션 시퀀스다. '써니'의 오마주라고 밝힌 이 장면은 무려 4일에 걸쳐 촬영 했다.

"배경이 되는 소소반점은 스무살이라는 시간을 공간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그래서 외부 세력의 침범으로 인해 더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세 인물의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싶었다. 2~3분으로 줄여도 봤는데 내가 생각한 감정이 안들더라 그래서 무리수처럼 보일지 몰라도 신을 길게 뽑았다"

'써니'의 기시감과 긴 분량으로 늘어짐이 있지만 감독은 이 신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는 "어쩌면 그 장면 때문에 1시간 50분을 달려온 것과 마찬가지다. 연출에 있어서 테크닉을 발휘하는 건 최대한 자제하려 했는데 이 시퀀스 만큼은 욕심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 대한 감독의 만족도와 애정은 변함없었다. 

마지마긍로 감독에게 이 시대를 사는 아픈 청춘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방법이 없다. 시련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나도 그 시절엔 지하벙커 같은 데 들어가서 고요해지길 기다렸던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역시 힘든 시기를 겪었고, 잘 이겨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과 척박한 근무 환경으로 점철된 충무로 안에서 이제야 비로소 안착했다. 그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가 그를 단단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이병헌 감독은 데뷔작('힘내세요 병헌씨')을 통해 스스로에게 힘을 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상업영화를 완성해낸 지금, 그에게 더이상 이런 위로와 격려는 필요없게 되버렸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잘했어요. 병헌씨"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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