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 가이드…줄임표, 물음표, 느낌표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4.30 17:52 조회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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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증명해봐. 네가 쓸모 있다는 증명"

영화 '차이나타운'의 엄마(김혜수)는 일영(김고은)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한다. 생존만이 목적인 냉혹한 세상에선 쓸모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라고 말한다.

신인 감독도 마찬가지다. 충무로에서 데뷔의 기회는 제한돼있고, 기회가 왔을 때 기량을 제대로 보여줘야 다음이 보장된다. 그 증명은 역량에 대한 평가와 수치적 결과에 대한 평가 두 가지를 수반한다.

한준희 감독, 패기 넘치고 뚝심 있는 신인의 등장에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찬욱, 이창동 등 거장들은 재능있는 젊은 감독을 환영했고, 배우 송강호는 "이런 한국 영화는 처음, 칸의 선택을 받을만하다"며 찬사를 보냈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중퇴한 한준희 감독은 연출부 생활을 거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해왔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가이드'와 '담배를 물다'로 연출 경력을 쌓던 그에게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2년 전부터 준비한 시나리오 '코인로커 걸'이 서울여성국제영화제 피칭작으로 선정돼 입봉의 기회가 열렸다. 게다가 상업영화 투자, 배급을 선언한 CGV아트하우스가 이 영화를 선택해 생각보다 큰 규모로 제작됐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게다가 두 여배우가 주인공인 느와르 장르. 흥행에서 난관이 예상되는 조건들이었다. 무엇보다 과연 이 영화가 재미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 부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준희 감독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뚝심이 있었다. 

장르 영화로서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영화지만, 예측가능한 전개와 클리셰들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준희 감독이 2015년 충무로에 등장한 중요한 신인 중 한 명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차이나타운

◆ "두 여자의 생존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

'차이나타운'은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여자의 생존법칙을 그린 영화. 지하철 코인로커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아이(김고은)와 그녀를 거둔 차이나타운의 대모(김혜수)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한준희 감독은 '차이나타운'을 "생존 그리고 성장하는 두 여자 이야기"라고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영화의 시작에 대해서는 "코인로커에 버려진 아이와 과거를 알 수 없는 차이나타운 대모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은 문장부호로 치면 줄임표, 물음표, 느낌표가 많은 영화다. 캐릭터의 전사는 생략됐고, 행동 변화는 급격하다. 설명보단 묘사로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같은 감독의 개성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드러난다. 극한에 상황에 놓인 일영의 얼굴을 카메라는 불명확하게 잡고, 피 묻은 얼굴의 엄마는 차분하게 "곧 괜찮아 질거야"라고 말한다. 이 강렬한 장면은 영화 후반부 다시 이어지며 매조지한다.

"'우리 이제 이런 이야기할 거야. 불끈다?'라는 걸 보여주는 인트로다. 장르 영화의 특성상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장면부터 강렬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은 인물의 전사를 최소화한 선택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플래시백(과거 회상)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 상업영화 틀 안에서 전사나 사족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우리 영화 속 인물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국적은 알 수 없지만, 웬지 중국인일 것 같아'. '우곤과 엄마 사이는 진짜 모자 관계일까?', '쏭의 이름은 왜 쏭일까' 관객들이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곱씹어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단순히 촬영지에만 머물지 않는 차이나타운의 묘사도 흥미롭다.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미술과 미장센에 공을 들인 것은 "기본적으로 의식주에 대한 영화기이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영화에 유독 먹는 신이 많은데 주인공의 먹는 것이 바뀌고 입는 옷이 바뀔 때 생기는 일이 많다. 그 점을 눈여겨보면 좀더 흥미롭게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혜수-김고은이어야 했던 이유

한준희 감독은 데뷔작을 통해 김혜수, 김고은이라는 두 여배우의 품격을 격상시켰다. 감독에게는 "당대와 후미를 대표할 여배우여야 한다"는 캐스팅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

"엄마 역에는 어떤 대사나 연기를 하지 않고 있어도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김혜수라는 배우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일영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김고은을 염두에 두고 썼다. 김혜수와 한 화면에 섰을 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에너지와 강단이 있는 배우로 적격이었다"

여배우의 지적 욕망을 자극할 시나리오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충무로에서 '차이나타운'은 두 여배우의 눈을 번뜩이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롱 테이크와 클로즈업이 유독 많았던 영화에서 김혜수와 김고은은 표정만으로도 인물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한준희 감독은 '가장 좋은 연기는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위해 촬영 전 배우들과 긴 소통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김고은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다.

차이나타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인물의 말과 행동에 있어 '왜'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했다. 배우가 납득할 수 없는데 연기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런 치열한 과정을 거쳐 촬영 때는 대본을 보지 않고 동물적 본능으로 연기 하더라"

대선배 김혜수 역시 놀라웠다고 말했다. 감독이 의도한 엄마는 '과거가 없는 여자',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여자' 였다. 이 물음표투성이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 어떤 여배우보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성실하게 탐구했다고. 

"연출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경청하고, 연기한 것뿐만 아니라 감독이 놓칠 수 있는 세밀한 부분까지도 배우 본인이 스스로 채워 나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화제가 된 김혜수의 외형 변신은 스스로 많은 아이디어를 내 감독과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 한준희 감독은 "엄마의 의상과 분장을 결정할 때 담당자에게 하루 100장씩 사진을 보내주시며 끊임없은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한준희감독

◆ "마지막 영화라 생각하고 찍은 데뷔작"

한준희 감독에게 '차이나타운'은 마지막 영화라 생각하고 찍은 데뷔작이다. 최선을 다한 결과는 성공적인 신고식으로 이어졌다.

"제작비 25억 원, 촬영 40회차에 완성했다. 거의 콘티대로 찍었다. 변수가 안 생기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인데 중간중간 변수가 생길때는 차선을 빨리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나는 나에게 의심이 많아서 '과연 이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편이다. 영화 속 엄마와 비슷한 면이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판단하고 결정하면 곱씹지 않는 편이다"

김혜수는 한준희 감독에 대해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준비를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현장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김고은은 "우리 감독님은...최고예요"라고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차이나타운

감독이기 전에 영화광이기도 한 한준희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1,2편과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느와르 장르로 데뷔전을 치른 것은 우연일까 취향이 반영된 것일까.

"느와르 장르를 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고, 이야기를 썼는데 느와르 장르로 푸는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단 데뷔작이 밝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 같은 것 있었다"

첫 장편 영화를 발표한 한준희 감독의 상황은 자신의 쓸모를 인정 받아야 하는 일영의 상황과 닮아있다. '차이나타운'은 제68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세계 영화관계자들에게 자신의 데뷔작을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더 떨리는 건 국내 관객의 평가다. 

"관객 스코어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것 같다. 아들을 장가보냈는데 잘 살지 말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관객의 평가가 떨리긴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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