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김고은이 신데렐라가 아닌 이유…"치열하고 또 치열하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5.26 14:16 조회 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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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김고은은 동물적 연기감각을 지닌 배우다. 놀라운 건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 전체와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꼼꼼하게 정밀 분석을 하는 영민함까지 갖췄다.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연기하는 김고은은 타고난 배우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데뷔했던 김고은은 신인답지 않은 대담함과 매력으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행보는 어땠는가. 동일 이미지를 소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과감한 연기 변신으로 시도했다. '몬스터'라는 스릴러와 코미디가 결합한 장르 영화에서 '미친 여자' 복순으로 분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세 번째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제작 폴룩스 픽처스)이다. '여자 대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에서 김고은은 차이나타운의 거물이자 엄마인 김혜수에 맞서는 인물 '일영'으로 분해 또 한 번의 연기 성장을 이뤄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조용한 카리스마로 김혜수를 잡아먹는 김고은의 존재감을 느꼈을 것이다.

매 작품마다 큰 보폭으로 나아가고 있는 김고은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반짝이는 원석이다. 

김고은

◆ "'차이나타운'은 내게 감사한 영화"

김고은은 영화 속 연기를 칭찬하는 말에 "고맙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죠. 퇴보할 순 없잖아요"라고 머쓱해 했다. 그리고는 '차이나타운'은 자신에게 '감사한 영화'라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되게 먹먹했어요. 잔상과 여운이 너무 오래 남는 작품이라 하고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일영'은 지하철역 코인로커에 버려져 차이나타운 대모에게 키워진 아이다.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엄마에게 기꺼이 길들여졌고, 복종과 순응만 하며 살았다. 

"한준희 감독님이랑 했던 말 중에서 '일영은 살기 위해서 사는 애'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실제로 일영은 생존에 대한 목표의식이 뚜렷해서 그걸 건드리면 안 되는 아이예요. 살아남기 위해 맹목적으로 엄마가 시키는 일은 완벽하게 해낼 수밖에 없었고 개인의 감정 따위는 배제하는 게 어려서부터 익숙한 아이기도 했어요"

차이나타운

'은교', '몬스터'에 이어 또 다시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안되 관객이 인물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고은은 클로즈업이 많았던 이번 촬영에서 얼굴의 분위기와 미세한 표정으로 인물의 심리를 보여줬다.

"일영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겉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미세한 표정변화만으로도 감정이 어느 정도를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것마저 없으면 관객들에게 인물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클로즈업 샷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전 오히려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들어왔을 때 좀 더 집중이 잘되는 것 같아요. 풀샷일 때는 몸의 연기도 함께 해야 하는데 클로즈업은 카메라가 한 곳에 집중되니 연기하기가 편해요"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은 건 배우에게 큰 장점이 된다. 생각해보면 김고은은 데뷔작 '은교'에서부터 카메라 앞에서 잘 놀던 신인이었다. 이 배우에게 있어 존재감이라는 건 카메라에 대한 긴장을 이겨내는 데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차이나타운

◆ 김고은-김혜수가 만들어간 엄마와 일영 

김고은은 예전부터 가장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배우로 김혜수를 꼽았다. 그러나 연기 경력 20년이 넘는, 이름만으로 고유명사가 된 대선배와의 호흡은 긴장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촬영 초반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저만 그랬던 것 같아요. 선배님은 제가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주셨어요. 처음 만났을 땐 긴장한 나머지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만했어요. 집에 생각해보니 선배님은 그런 저의 수준을 맞춰주셨어요. 선배님은 자신의 촬영분이 없을 때도 현장을 찾아주셨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늘 힘이 되는 말을 해주셨어요"

이번 영화에서 가장 부담이 됐던 장면은 엄마와 일영의 마지막 조우 신이었다. 단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그 신은 언젠가 다가올 숙제처럼 촬영 내내 김고은을 짓눌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그 장면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 영화 그런 신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영화에선 그 신이 그랬어요. 엄마를 죽이러 온 일영과 그런 일영 앞에서 태연한 엄마, 그 상황의 공기와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죠. 머리를 쥐어짜네 보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촬영 당일에는 지쳐서 더는 할게 없을 때까지 했던 것 같아요"

김고은

◆ 치열하고 또 치열하게

김고은은 영화의 이야기나 분위기와 달라 현장은 웃음이 넘쳤다고 했다. 선배 김혜수가 중심을 지켜주고, 젊은 감독과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뭔가를 만들어나갔던 여정은 여느 영화와는 다른 쾌감이 있었다고도 했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난 한준희 감독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이 영화를 많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게 한준희 감독님 때문이기도 해요. 그분이 널리 인정받기를 원해요. 현장에서 배우에게 최고의 감독님이었어요. 연출이 처음이라 정신없을만 한데 아주 차분하셨죠. 심지어 배우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조차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셨어요"

한준희 감독과 김고은은 대본의 마지막 한 줄까지 꼼꼼하게 분석했다. 김고은은 어떤 신과 대사도 이해가 없으면 연기할 수 없다는 소신이 있었고, 감독 역시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 대본을 함께 분석해나갔다.

김고은

김고은은 그런 '치열함'이 좋았다고 했다. 김고은은 "전 치열한 사람이 좋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서로 의견이 어긋난다고 틀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게 좋아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는 건 싫어요. 그런데 우리 감독님은 그럴 수 있는 상대라 더 좋았어요"라고 덧붙였다.

김고은이 치열함에 대해 힘주어 말한 건 어쩌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맞아요. '은교'를 촬영할 때 정지우 감독님하고도 굉장히 치열했어요. 그런 환경은 감독님이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그때 알게 됐죠.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걸 알아되고 배워나가는 거란 걸요. 한준희 감독님도 촬영 내내 저의 치열함을 끌어내 주셨어요"

'은교'로 시작해 '몬스터', '협녀', '차이나타운'까지 김고은은 쉬지 않고 내리 네 작품을 촬영했다. 이런 강행군에 한때 슬럼프를 겪기도 했단다.

"'차이나타운'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 순간 축 처지더라고요. 저는 단순한 성격이라 작품이나 캐릭터가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근데 처음으로 무기력해진달까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있지?'라면서 날 괴롭혔어요. 근데 어느 순간 이게 당연한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집밖을 나가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재충전의 시간이었죠"

한 차례 남모를 홍역을 치른 김고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방전의 시간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싱그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김고은은 다시 달린다. '성난 변호사','계춘할망'으로 또 다시 허물을 벗을 예정이다. 스물다섯, 만개하는 여배우를 지켜보는 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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