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무뢰한' 김남길, 세상 모든 나쁜 남자를 위한 항변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6.01 11:17 조회 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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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촬영장에서 모니터로 제가 연기한 정재곤을 보면서 스태프들이 '나쁜 놈', '개새끼' 하더라고요. 맞아요. 대다수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있는 인물은 아니죠. 하지만 남자라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면이 분명히 있다고 봐요. 저도 과거에 그랬던 적 있거든요"

배우 김남길은 아직 '재곤'에게 빠져 있었다. 알듯 모를 듯한 물음표투성이의 나쁜 남자지만,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 재곤은 닮은 구석이 있다고 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도, 제작한 제작사 대표도 '내 이야기'라며 동조했다고 덧붙였다.

섣불리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서 여자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남자, '같이 살래?'라는 말을 던졌다가도 그냥 해본 말이라며 쉽게 말을 거두는 남자, 세상 대부분의 여자는 이런 남자에게 분노한다. 

재곤은 빈말을 무겁게 말하고 진심을 가볍게 말하는 남자다. 닳고 닳은 혜경조차 이런 남자에게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상처 위의 상처'라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사랑의 상처에는 내상이 없다. 모든 사랑이 새롭듯 모든 상처는 그저 아플 뿐이다.

김남길은 '나쁜 남자' 전문 배우다.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치명적 매력의 나쁜 남자를 여러 차례 연기했었다. 하지만 재곤은 종전에 그가 맡았던 나쁜 놈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다. 덜 드러내면서도 훨씬 입체적이다. '나쁜 남자'의 매력은 헤어나와도 그 잔상이 깊게 남는 것 아닐까. 배우 김남길이, 그의 연기가 그렇다.

'무뢰한'(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 픽처스)의 김남길을 만났다. 그리고 정재곤을 보았다. 

김남길

Q. 칸 영화제 갔다 와서 시차 적응이 안됐을 것 같다. 괜찮나?

A. 누가 들으면 한 달은 다녀온 줄 알겠다. 오히려 짧게 다녀와서 더 시차 적응이 안되는 것 같다. 어제 밤에도 자다가 깨서 고생 좀 했다.

Q.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화제다. 첫 경험은 어땠나?

A. 솔직히 별거 없더라. 부산영화제가 칸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제라 그런지 부산영화제를 외국에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이라면 조금 더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모이는 거? 또 예의와 격식을 좀 더 차리는거? 근데 또 그 안에서도 상술은 보이더라. 어디를 가나 어떤 행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Q. '무뢰한'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재곤'역에는 이정재가 캐스팅됐었는데?

A. 어느 날 집에 있다가 이정재 선배가 어깨 수술로 영화에서 하차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무뢰한'? 이게 무슨 영화지? 싶으면서 제목에 강한 끌림이 있었다. 일단 남자 주인공이 공석일 테니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싶더라. 읽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6년 전에 이런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 있다. '폭풍전야'라는 영화다. 그간 경력도 쌓이고 내공도 좀 더 쌓였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Q. 결국, 대타 캐스팅이었네?

A.'폭풍전야'도 최민식 선배의 대타로 캐스팅 된 거다. 난 선배들이 준 열매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하하하.

무뢰한

Q.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런 영화'란 어떤 영화인가?

A. 우리 영화가 하드보일드 멜로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남자 영화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인간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뢰한'이 내게 그런 영화였다. 

Q. 재곤은 나쁜 남자다. 나쁜 놈일 뿐만 아니라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여백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A. 편집된 신이 꽤 있다. 영화에 재곤 캐릭터가 너무 표현이 안 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감독님과 뭔가를 억지로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좀 어색했다. 너무 아무것도 표현 안 한 건 아닌가 싶어서.

Q. 편집된 건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인가?

A. 재곤이 이혼한 남자고, 전처와 헤어진 후에도 종종 만난다는 건 동료 형사 문기범(곽도원)에 의해 언급이 된다. 실제로 와이프하고의 신이 있었다. 이혼한 아내는 재곤의 변화를 느끼며 여자가 생겼느냐고 묻고 "그 여자한테는 나처럼 하지마"라고 말한다. 재곤은 자신이 혜경에게도 전처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아내에게 화풀이한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우리 다시 합칠까"라고 말한다. 

또 취조실에서 이영준이 아닌 정재곤 형사로서 혜경을 마주 하는 신이 있다. 그 신 전에 문기범(곽도원)이 "너 도대체 왜 이래? 박준길(박성웅)을 잡으려는 거 맞느냐"고 의심하며 다그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도 편집됐다.

Q. 재곤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신으로 보이는데 왜 편집된 것 같나? 감독님은 의도는 수긍이 됐나?

A. 전처와의 신은 재곤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가 너무 사이코처럼 보일 것 같아서 편집하신 것 같다. 두번째 신의 경우 너무 설명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걷어내신 게 아닐까.

'무뢰한'은 정재곤과 김혜경이 중심인 영화다. 특히 여성 관객들은 정재곤을 통해 김혜경이라는 인물에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정재곤의 심리를 자세하게 그리면 너무 설명하게 되는 것 같아서 여백을 많이 두려고 했다. 

김남길

Q. 전도연의 영화라고는 하지만 김남길의 진가를 보여준 핵심 장면도 여럿 있다. 마지막 롱테이크 신은 특히 인상적이더라 .

A. 다른 신들은 도연 누나랑 호흡을 맞추며 만들어가면 돼서 편안하게 연기했는데 그 장면의 경우 혼자 오롯이 지고 가야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XXX아"라는 대사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대사다. 그런데 이걸 어떤 식으로 쳐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 덤덤하게 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면서 해보기도 하고, 울먹이면서 해보기도 했다. 여러 버전으로 촬영을 했지만 재곤의 그간 행동이나 성격으로 봤을 때 덤덤하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Q. 시간이 흘러 재회한 혜경에게 재곤이 하는 말 "난 널 배신한 게 아냐.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라는 대사는 절규에 가까운 자기 변명처럼 들렸다.

A. 그게 정재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변이라고 생각했다. 혜경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쁜 새끼"라고 하니 감정이 북받쳐 나오는 말이다. 그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고, 정말 내 할 일을 한 거고, 우린 인연이 아닐 뿐이야'라는 심정을 담은 말인거지. 그 신에서 도연 누나가 연기를 너무 잘 받아줬다.

혜경이 재곤에게 하는 다음 행동을 좀 갑작스럽게 여길 관객도 있을텐데 그건 아마도 "너만의 일방통행을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재곤 역시 그런 혜경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건 애증 관계를 끊고 그녀를 놔주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Q. 15년 만에 복귀한 감독과 작업해보니 어떻던가?

A. 영화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불안요소는 나다.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었는데 촬영 현장에서는 우리끼리 "감독님이 불안요소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오래 쉬셨고, 그간 현장 시스템도 옛날과 많이 바뀌어서 초반에 적응하시는데 좀 걸리시더라. 다행인 건 15년 만에 컴백해도 베테랑 같은 느낌이 있달까. 디렉션을 잘 안 주시지만 배우의 연기가 본인 생각과 다르다 싶으면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확실하게 얘기하셨다. 도연 누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컷이 가장 좋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컷이 가장 좋다. 그걸 알고 밸런스 조절을 잘 해주셨다.

김남길

Q. 오승욱 감독은 연기 디렉팅을 자세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A. 그렇다. 감독님은 촬영 전에는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 교환을 하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배우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스타일이다. 나는 집이 용인이고 감독님은 김포에 산다. 영화에 대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감독님 집에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가기 전 내 생각이 감독님과 대화하는 중에 다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는 "으으으 내가 이러려고 두 시간 반이나 운전하고 온 줄 알아요?"하고 감독님의 멱살을 (장난스레) 잡곤 했었다.

Q. 남자 관점의 멜로지만 남자보다는 여자의 심리와 감정이 잘 읽히는 편이다. 전도연은 오승욱 감독이 여자를 너무 모른다고 했다. 동의하나?

A. 도연 누나가 감독님에게 "여자를 이렇게 몰아서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썼냐"고 하더라. 나한테도 "너도 똑같아!"라고 하더라.(웃음) 정재곤 역을 맡아서 특별히 연기할 게 없다고 느낀 게 상황만으로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게 뭔지 남자들은 아마 알 것이다. 

Q. 남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남자기도 하다.

A. 맞다. 남자는 감정도 감정이지만 개인의 상황이나 앞뒤 주변 관계를 많이 생각한다. 자기의 감정이 사랑임을 알지만 상황적인 것들이 따라오지 못해 갈등하는 그런 마음, 남자들은 뭔지 잘 알 것이다. 재곤이 혜경에 "우리 같이 살래?"라고 묻는 장면도 여자들이 보면 "개새끼네"하겠지만, 나는 재곤이 그 말을 거둔 건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봤다. 혜경이 범죄자의 애인이 아니었으면 같이 도망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해봤다. 역시 답이 쉽게 나오지 않더라. 여자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야"라고 할 것이다. 도연 누나도 "줄타기하고, 상황 타령 하지 마"라고 하더라.

Q.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공감하기는 힘들다. 여자 입장에서는 결국 남자 의지의 문제고, 감정의 깊이 문제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A. 재곤을 연기하면서 나도 미웠다. 한편으로 나의 지나온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고. 혜경이 "네가 잡아주면 나 도망갈 수 있어"라고 할 때 나도 아팠다. 맞다. 결국, 재곤은 비겁한 남자다.

김남길

Q. 전도연, 어땠나?

A. 올해 연기경력 24년 차라고 하더라. 난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 영화를 하기로 하고 처음 사무실에 갔는데 도연 누나가 떡하니 앉아있더라. 그때 '아 맞다! 이거 전도연 나오는 영화였지' 싶더라. 난 상대 배우를 많이 탄다.

Q. 당연히 좋은 시너지를 낼 수밖에 없었겠다.

A. 전도연이다. 게다가 박성웅, 곽도원, 김민재 형 같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도 많았다.내가 세 보이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바로 꼬리 내렸다. 언론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보고 '나 먹혔어. 이래서 전도연, 전도연하는구나' 싶더라. 확실히 나의 부족함,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이더라. 사람들은 "그래도 전도연이랑 해서 이 정도 했으면 선전했어"하는데 "연기가 격투기야!"라고 발끈했다. 그런데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선전이 아니라 더 파이팅 했어야 했는데' 싶더라. 좀 더 잘하지 못해 아쉽다. 

Q. 상대 배우를 많이 탄다고 했는데 '무뢰한'의 경우 어떤 좋은 영향을 받았나?

A.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난 상대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촬영 환경에 따라 연기가 달라진다. 감독님의 영향도 많이 받고. 사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콘티를 잘 안 보는 편이었다. '어차피 촬영하면서 달라지게 돼 있는데 왜 봐' 이런 주의였다. 그런데 성웅, 도원 형 연기하는 걸 보며 '내 생각이 잘못됐구나!' 느꼈고, 도연 누나 하는 걸 보면서 '홈런 맞았다...'싶더라

Q. 자기 평가에 너무 엄격한 거 아닌가? 김남길도 최고의 연기를 했다.

A. 이렇게 고마울 수가...'무뢰한'이 내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된 건 맞다.

Q. '무뢰한'이 어렵다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A.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 근데 남자들이 공감할만한 캐릭터라고 했는데…. 만약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자식, 쓰레기네'라고 하면 어쩌지?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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