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②] 하정우 "슬럼프 이겨낸 힘은 현장 그리고 연기"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7.23 09:13 조회 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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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하정우는 인터뷰 시작 전까지 뜀박질을 했다. 손목에는 핏빗(Fitbit)을 차고 있었다.

"왜 뛰는거에요?"
"아, 운동량 체크도 하고 친목도 다질 겸 동료들하고 내기를 했어요. 매일 목표를 정해서 걷고, 뛰어요"

이 배우는 자투리 시간에도 이렇게 뭔가를 한다. 그것이 일이든, 게임이든. 하정우는 개인의 욕심과 역량이 비례하는 보기 드문 배우다.

충무로엔 많은 배우가 있지만 모두 다 두가지 요건을 가진 건 아니다. 욕심은 많지만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배우도 있고, 역량은 뛰어나지만 욕심이 적어 활동이 더딘 배우도 있다.

하정우는 2008년 '추격자'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15편의 영화를 찍었다. 조연 및 특별출연까지 합치면 20편에 이른다. 1년에 평균 2편 이상의 영화를 촬영하고, 3개월 이상은 쉰 적 없다. 그의 스케줄표는 1년 단위가 아닌 2~3년 단위다.

그 결과 충무로의 내노라 하는 감독과 작품을 하며 돈 주고도 못살 근사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김기덕부터 시작해 홍상수, 윤종빈, 김용화, 류승완, 나홍진, 이윤기, 전계수 감독과 영화를 찍었고, '암살'의 최동훈 감독을 거쳐 지금은 박찬욱 감독과 신작 '아가씨'를 촬영하고 있다. 이미 이름값을 획득한 감독뿐만 아니라 손영성(의뢰인), 이병우(더 테러 라이브)와 같은 신인감독의 데뷔작도 성공으로 이끌었다.

언젠가부터 하정우와의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화두는 줄어들었다. 더이상 그의 연기에 물음표를 달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인터뷰에선 하정우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최근 그를 일깨운 변화들, 이를테면 연기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감독 데뷔 후 다른 감독을 보며 느낀 감정이 남달랐다. 이 모든 것은 영화 현장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일어난 것이었다.

하정우

하정우는 지난해 9월 28일 영화 '허삼관' 촬영을 마치고 하루 만에 상해로 넘어갔다. 10월 1일부터 시작된 '암살' 촬영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빨리 적응해야한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어요. 3주간 촬영을 하고, 한국으로 넘어와 또 촬영을 했죠. '암살'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감흥도 감흥이었지만, 제가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 때의 현장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거에요. '저 날은 참 피곤했구나', '그래 저 촬영 끝나고 '허삼관' 편집실 갔었지' 같은 생각도 들고요"

'암살'을 통해 첫 호흡을 맞춘 최동훈 감독은 '영화 동아리 형'에 비유했다.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현장에서 보여주는 열정적인 자세, 그리고 배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작업하기 전까지는 '머리가 굉장히 비상한 사람일 것이다', '작업스타일도 굉장히 체계적일 거야'라고 예상했거든요. 근데 최동훈 감독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이더라고요. 물론 대작이니 엄청나게 준비를 했겠죠. 이 대작의 연출을 맡아 현장에서 추진력있게 밀어부치면서도 배우가 가진 날 것의 매력을 그때그때 캐치해내 즉흥적으로 활용하기도 했어요. 그건 머리로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가 만났다. 시너지가 폭발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조합이다. 하정우는 최동훈 감독이 연기에 대한 혜안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전했다.

"연기 디렉팅이 분명한 편이에요. 그걸 모호하게 하는 감독이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해달라", "편하게 해달라"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럴때 배우는 '난 지금 편한데,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더 편하게 하지?'라고 생각하게 되요. 그런 지점에서 최동훈 감독은 원하는 바를 확실히 이야기하고 정확하게 요구하는 편이에요. 물론 배우에게 맡길 때도 있고 연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요"

하정우

하정우는 최동훈표 연기 디렉팅의 특징으로 '같은 테이크, 다른 연기'를 꼽았다. 대수로워 보이는 않는 장면이라도 여러 번의 테이크를 가며 배우에게 매번 다른 연기를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전 테이크를 많이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반복해서 연기를 하다보면 처음의 그 신선함은 사라지기 마련이거든요. 영화 초반 테이크를 여러차례 가길래 '내 연기에 필링이 없나'라고 오해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감독님의 스타일이라는 걸 알았죠. 그 이후부턴 테이크마다 변주해가면서 연기를 펼쳤는데 감독님이 그걸 너무 좋아하시는 거에요. 저까지 덩달아 신나더라고요"

그런 촬영 방식은 초기작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의 현장을 떠올리게 했다고 했다. 하정우는 "생각해보면 윤종빈 감독과 그 영화를 찍을때 한 신에 40테이크 까지 간적도 있었어요. 그때 전 오기 비슷한게 생겨서 '또 가?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내가 까도까도 새로운 게 나오는 배우란 걸 보여주겠어'라는 마음으로 연기 했었거든요. '암살'때도 그런 비슷한 자극을 받았고 '그래, 이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기의 즐거움을 느꼈던거 같아요"라고 웃어 보였다.

연기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하정우라는 배우의 치밀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는 늘 영화 촬영 전이 가장 치열한 시간이라고 말해왔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크랭크 인 전에 모두 끝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현장에서 감독의 의도한 바를 재빠르게 캐치할 수 있고, 딱 떨어지는 연기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제 성격 자체가 미지근 한 것을 싫어해요. 아쌀한 편이죠. 예를 들면 약속을 잡을때도 "여덟 아홉시 즈음?" 이런 건 싫어요. 촬영 콜타임이 8시다. 그럼 전 5시에 일어나서 족욕하고 얼굴의 붓기를 빼고 산책도 하는 등 8시에 맞춰 저만의 프로그램을 짜요. 그래서 스태프에게도 시간 약속 만큼은 확실하게 지켜달라고 양해를 구해요. 생각해보면 예술이란 건 모호한 건데 제 성격은 그렇지가 않은 거죠. 과거엔 그런 일이 생기면 짜증도 내고 했지만 어느덧 현장에서 선배가 되다보니 유해지려고 노력해요"

하정우

하정우는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다. '롤러코스터'에 이어 '허삼관'까지 두 편의 장편 영화를 개봉시켰다. 흥행적으론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감독 하정우를 증명하기 위한 행보는 이어갈 예정이다. 

"앞서 두 작품을 연출하며 뚜렷해진 건 있어요.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거요. 올 겨울부터 준비에 들어가 빠르면 2017년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하정우는 '허삼관' 인터뷰 당시 함께 일한 감독들과의 작업이 연출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허삼관' 이후에 만난 최동훈, 박찬욱 감독은 그에게 어떤 영감과 교훈을 줬을까.

"제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내가 욕심을 부렸구나'하고요. '암살' 현장에서 최동훈 감독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아 감독님은 이런 마음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죠. 박찬욱 감독님이요? 굉장하신 분이죠. 정말 소문대로 콘티 그대로 촬영하시는 스타일인데 또 연기는 변주하길 원해요. 그분이 의외로 애드립을 굉장히 좋아하는 거 아세요? 사전에 미리 말 안하고 애드립을 치면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하하.

대단한 감독들과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바가 많아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나 또한 언젠가는 감독으로 잘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에게 '슬럼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현장에서 즐거워야 하고 그 안에서 흥미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과거에 제가 했던 선택이 뿌듯함 보다 '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난 그동안 뭐했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힘이 빠져요.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흥미를 찾지 못한 채 연기에 임한 순간도 있었어요. 유난히 두 작품이 기억에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금쪽같은 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싶어요.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 그랬던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암살

그의 가슴을 다시금 뜨겁게 하는 건 결국 '재미'였다. 현장의 즐거움, 연기의 재미 말이다.

"그게 계속 작품을 해나가게끔 하는 명분 같아요. 항상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하다보면 내가 닳고 없어지는 상황도 올 수 있는데 그것에 흥미가 있다면 문제가 안되겠죠. 이를테면 테이크를 많이 가는것에 내가 흥미가 없다면 정체되겠죠. 하지만 그 안에서 흥미를 찾는다면 다시 뜨거운 순간이 오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교만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너무 뻔한가요?

지난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올해의 슬로건을 봤거든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였어요. 그걸 보면서 '그래. 나는 연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가 무겁게 된거지'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올해는 재밌게, 즐겁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마음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지켜나가야죠"

하정우는 지금 양수리 세트장에서 더위 그리고 곱등이와 싸우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촬영에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과 재난 영화 '터널'에 합류하며, '국가대표'의 콤비였던 김용화 감독과 '신과 함께'도 작업할 예정이다.

여전히 숨가쁜 행보다. 하정우의 시간은 늘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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