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암살' 최동훈 감독 "제 사전엔 오락밖에 없다고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8.03 09:36 조회 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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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축구 경기를 하다가 볼이 담벼락을 넘어갔는데 유리창을 깰 것이냐 잔디밭으로 갈 것이냐를 고속으로 바라보는 느낌. 딱 그거에요. 지금 제 기분이"

개봉일 만난 최동훈 감독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우던 그는 사소한 질문에도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 개봉을 앞둔 심정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한 최동훈 감독은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 적이 없는 흥행의 귀재다.

1,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전작 '도둑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경쟁했고, 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전우치'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경쟁했다.

그간 치열했던 경쟁의 역사를 통해 단단한 맷집을 구축했을 법한 그가 유독 이번 영화에서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암살'이라는 영화가 자신에게도 도전에 가까운 여정이었음을 인정한 결과이기 때문일까. 그와의 대화를 통해 긴장의 실체에 접근해보았다.

최동훈감독

◆ 경성 그리고 독립투사, 풀리지 않았던 이야기

'암살'은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매국노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항상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온 최동훈이 '암살'에서는 다소 무거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굳이 경계를 나누자면 전작들이 메시지보단 오락에 집중했다면 '암살'은 오락보단 메시지에 방점을 찍은 영화처럼 보인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최동훈의 영화라면 시대의 공기에 짓눌리지 않는 인물들이 나와 어떤 작전을 꾸미고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케이퍼 무비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암살'은 예상을 빗나갔다. 최동훈은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숭고하게 시대와 인물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너무 아픈 시절이에요. 정말 힘든 시대였잖아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가야 했고 또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었을 거에요. 악전고투하면서 살았겠죠. 저에겐 낭만적인 시대로만은 해석이 안 돼요"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한 2006년경이다. 지금처럼 경성과 상해를 오가는 액션물의 형태는 아니었다고 했다. 경성을 배경으로 한 추리극에서 시작했으나 잘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사이 '전우치'를 찍었다.

최동훈감독

"'전우치' 속 암살 장면은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떠오른 시퀀스에요. 계속 잔상이 남았던 거죠. '도둑들'을 찍고 나서는 더 늦기 전에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둑들2'라는 안전한 길 대신 '암살'이라는 길을 걷게 된 거죠"

최동훈 감독은 '암살'의 시나리오를 쓰는데 2년을 쏟았다. 처음 쓴 시나리오를 엎어버리고 새로 시작한 시간을 포함해서다. 암살을 지시하는 염석진(이정재)과 작전을 수행하는 안옥윤(전지현), 속사포(조진웅), 황덕삼(최덕문) 트리오를 만들었고, 암살을 수행하려는 인물들을 쫓다 뜻하지 않게 작전에 휘말리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포마드(오달수) 듀오까지 곁들인 캐릭터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잘 써지지 않았다는 말로 '암살'이 그 어떤 작품보다 어려웠던 작업이었음을 인정했다. 이번 영화에도 최동훈의 스타일대로 '작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태양의 눈물'(도둑들)과 같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부끄러운 방법으로 떵떵거리고 살았던 매국노에 대한 응징이다.

그는 오락 지향적인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빽빽한 서사와 묵직한 메시지로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의 비극을 그리고자 했다. 

암살

◆ 右지현-左정우, 최동훈이 장전한 탄환

'암살'의 중심에는 안옥윤이라는 여성 캐릭터가 있다. 최동훈 감독 "안 어울리니까 오히려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이라는 거 특히 무장투쟁은 보통 남성적 냄새가 나죠. 여자는 스파이거나 조력자 정도를 떠올리는데 정 가운데 박아놓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남자가 액션을 하는 건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이는데 여성이 하게 되면 힘들어 보이고 그러면 또 절실하게 그 일을 하려고 하는 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면 서스펜스도 살아날 것 같았고요"

전지현은 대체불가의 캐릭터를 구현해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신나강(러시아군의 주력 소총)을 쏘는 모습은 그 어떤 한국 영화도 구현해내지 못한 여성 판타지였다.

최동훈 감독은 "스크린에서 확인한 안옥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아름다운 터미네이터더군요"이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전지현의 연기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암살

"다들 전지현 씨가 코미디를 잘한다고 생각하죠. 그건 연기를 잘한다는 뜻이에요. 코미디는 쉽지 않거든요. '도둑들'때부터 느낀 건데 지현 씨는 안에 뭔가가 있어요. '도둑들'을 마치고나서 '예니콜은 전지현의 단면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정반대의 역할을 주면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극과 극은 통하니까"

왼쪽에 전지현이 있었다면 오른쪽엔 하정우가 있었다. 시대의 분위기를 역행하는 듯한 낭만자객 '하와이 피스톨'로 말이다. '다크 최동훈'이라 불릴 정도로 영화 전반에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한 가운데 등장한 하와이 피스톨은 관객의 가슴을 뛰게 하기 충분했다.

"하정우란 배우에겐 언제나 플러스알파가 있어요. 힘을 빼고 연기할 줄 알아요. 제가 생각한 하와이 피스톨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줬어요. 특히 전 그의 눈을 참 좋아해요. 그의 시선이 멈춰지는 곳을 응시하게 되는 힘이 있거든요"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이라는 콤비가 영화의 즐거움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소 겉돌아 보인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 그런 게 좋아요. 바깥에 있던 인물이 어떤 사건과 인물에 휘말리면서 점점 중심에 들어오는거요. 그런 구성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이라는 언밸런스한 조합을 생각했어요. 아마 이 둘만 따로 놓고 영화를 만들어도 재밌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최동훈감독

◆ 최동훈의 선택들, 그 물음표에 답하다

영화 공개 후 나오고 있는 "최동훈 답지 않다"라는 평가에 관해 물었다. 그는 "한 번 더 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감독은 한번 만들어진 카테고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나 전 이 영화는 '도둑들'의 톤과 달라야겠다고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타짜'와 비슷한 정서로 쓸쓸한 맛과 여운이 있는 서스펜스 액션물로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아쉬움 중 하나는 암살 작전의 타겟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암살 작전에 소집된 세 명이 작전에 임하는 자세는 조금 다르다. 안옥윤과 황덕삼의 동력이 애국심이라면 속사포는 나라 사정보단 돈이 더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이 작전에 투입되면서 그 동력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듯한 인상도 준다. 

이를테면 안옥윤이 타겟을 향한 집중도를 보이는 것은 애국심인가 사적 복수인가 어느 순간 헷갈리게 되며, 돈만 밝히던 속사포가 갑작스레 불타는 애국심을 보이는 것도 다소 갑작스럽다. 

또 소리 없이 사라져 간 독립운동가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 암살 타겟을 누구나 아는 희대의 나쁜 놈으로 설정했다면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더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실존인물을 죽일 순 없었어요. 그건 실화가 아니니. 이완용을 하려고도 생각을 해봤죠. 근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결론은 누굴 타겟으로 정해도 사람들은 이 시기를 잘 모르고 또 그 인물이 당시 얼마나 위세를 떨쳤을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간도 참변을 일으킨 조선 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목표를 위해서 뭐든지 하는 매국노 강인국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웠던거에요."

최동훈 감독은 타겟을 설정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그게 크게 중요치 않다고 여긴 이유는 '암살'의 마지막 타겟은 따로 있기 때문이라는 걸 강조했다.

주인공을 둘러싼 비극적 설정이 다소 막장스럽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물었다. 오랜 기간 시나리오를 고쳐 쓰고 힘들게 영화를 완성한 감독에게 다소 과격하고 가혹하게 여겨질 수 있는 비판임에도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문학적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안옥윤의 인생은 집을 나와서 본인이 집을 나온 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에요. 더불어 결핍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저는 신화나 전설을 좋아해요. 그러니 '전우치' 같은 영화를 만들었겠죠. 그 설정은 운명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거지. 막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친다면 제 모든 영화가 막장인 건데...하긴 따지고 보면 인간사의 90프로가 막장 아닐까요?"

최동훈감독

◆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또 한 번의 모험

'암살'의 순제작비는 180억이다. P&A(광고·홍보)비용까지 합한다면 200억이 훌쩍 넘는다. 손익분기점만 700만 명이다. '도둑들'을 능가하는 또 한 번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행보다. 그는 왜 또다시 이런 살얼음판 도전을 선택했을까.

"많은 사람이 영화로 돈을 벌려면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 데 전 반대로 제작비가 많이 든 만큼 기존에 볼 수 없던 장면을 구현해야지 하는 마음이에요. 하지만 제작비는 냉정한 현실이죠. 아버지가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영화는 또 꿈이란 말이에요. 결국, 냉혹한 현실 속에서 꿈을 꾸는 건데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요? 이상하게 영화를 찍다 보면 그 부담감이 사라져요. 더 잘 찍고 싶은 마음만 커지죠. 그러다 영화가 개봉할 때가 되면 부담감이 훅하고 들어와요"

이어 "만약 '도둑들2'를 했다면 투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긴장의 끈이 팽팽했어요. 절 윽박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한시도 놀면 안 돼!'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막대한 제작비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 부연했다.

그렇다면 최동훈다운 '쿨함'을 버리고서라도 관객을 좀 더 울렸으면 어땠겠냐고 물었다. 그는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굉장히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관객이 우는 건 극 중의 인물이 울어서예요. 관객이 인물에 동화되는 거죠. 하지만 난 안옥윤이 안 울었으면 했어요. 대신 어떤 안타까움과 회한을 남겼으면 했어요. 저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어렵네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동훈감독

어느 순간 최동훈의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오락성'에 대한 다소 무례한 질문도 던졌다. '최동훈 사전엔 오락밖에 없다'라는 일부 평가에 대한 그의 답은 이랬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해요. 근데 그 오락이라는 건 완벽하게 틀린 말이에요. 평생 클레오파트라 코이야기만 하면서 사는 것과 같아요. 더 넓게 보면 재밌는 구석이 많을 텐데...오락이라는 말보다는 재미가 낫다고 생각해요. 오락 영화라고 하는 건 영화를 깎아내릴 때 쓰는 말이죠. 굳이 따지자면 대중영화의 속성에 오락성이 있는거고요. '관객이 나를 그렇게만 여길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반성하게 되네요. 이런…."

최동훈 감독은 영화의 에필로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줬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그림자와 잔재를 영화로나마 속 시원하게 청산한 것이다. 

감독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달라고 했다. 마지막 시퀀스는 아니었다.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 작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안옥윤에게 물어요. "두렵지 않느냐"고. 안옥윤이 답해요. "두려워. 하지만 알려 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고요. 전 그 문답이 가장 좋아요. 당연히 두려웠겠죠.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없이 나아갔어요. 이것이 제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에요"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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