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김지혜의 논픽션] '암살' 하정우는 왜 세 번째를 자처했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8.04 15:24 조회 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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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하정우가 인터뷰 때마다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작품 선택의 기준'이다. 활동 기간 대비 넘치도록 꽉 찬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캐릭터 전시장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때로는 꿈에 나올까 무서웠고('추격자'), 때로는 한심하게 찌질했으며('러브픽션'), 때로는 몸서리치게 야비했고('더 테러 라이브'), 때로는 가슴 벅차게 멋졌('베를린')다.

그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해왔다.

"관객의 눈으로 영화를 고른다"고.

정상급 배우에겐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아도 작품이 배우를 기다리고 있다. 하정우는 특히나 그렇다. 충무로 감독들이 가장 일해보고 싶은 배우 중 한 명이다.

영화 크랭크인 전 작품 준비를 모두 마치는 그는 현장에서 놀면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촬영 직전까지 스태프나 배우들과 장난치며 어울리다가도 컷 사인이 들어가면 눈빛이 바뀐다. 많은 배우가 하정우의 그런 모습을 신기하게 여긴다.

최동훈 감독은 하정우에 대해 "언제나 플러스 알파가 있다. 힘을 빼고 연기할 줄 안다. 특히 그의 눈을 참 좋아한다. 그의 시선이 멈춰지는 곳은 함께 응시하게 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최동훈 감독이 말한 것처럼 하정우의 눈은 연민과 살기를 동시에 내뿜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두 사람은 영화 '암살'을 통해 첫 인연을 맺었다. 엄밀히 말하면 하정우가 맡은 하와이 피스톨은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니다. 물론 인물들과 얽히며 영화 말미 중추적 활약을 펼치지만, 그는 '작전'에 있어서는 외부인에 가깝다.

하와이 피스톨의 등장은 영화 시작 후 20여 분이 지나서다. 하지만 강한 존재감으로 순식간에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대중들이 열광한 것은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가면을 쓴 배우 하정우였다.

암살

하정우는 관객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다크한 최동훈의 작품에서 온기와 생기 그리고 웃음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잔상을 남겼다. 

전지현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극에서 유례없는 여전사 캐릭터를 자기화하는데 성공했고, 이정재는 영화를 여닫으며 가장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하정우는 전지현과 이정재의 비중과 존재감을 알고도 '암살'을 선택했다. 자신의 역할이 이들의 뒤 혹은 바깥에 선다는 것 또한 예상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면 '암살'을 선택한 하정우의 기준은 이번에도 '관객'이었다. 따지고 보면 '허삼관'과 '군도:민란의 시대'의 하정우는 대중들에게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허삼관'은 감독 하정우의 평가를 차치하고 배우 하정우로서도 한타임 이른 아버지 변신이었다. '군도'의 경우 캐릭터와 활약도 면에서 관객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영화는 1인 예술이 아니기에 이러한 결과는 늘 일어날 수 있다.

하정우가 '군도'에 이어 또 한 번 멀티캐스팅 라인업의 영화에서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주인공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대중들이 지금 하정우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암살'은 개봉 14일 만에 전국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015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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