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오늘영화' 못말리는 개성의 네 감독을 만나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8.28 13:00 조회 3,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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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영화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구교환 감독과 이옥섭 감독은 '연애다큐' 속 교환-하나 커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강경태 감독은 말없이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 '뇌물'의 분위기와 닮아있었다. '백역사'의 윤성호 감독은 캐쥬얼한 차림으로 가장 마지막에 인터뷰 장소에 합류했다. 네 감독의 첫인상은 개성 강한 세 편의 에피소드처럼 범상치 않았다.

연애와 영화, 공생의 관계다. 대부분의 남녀가 연애할 때 영화를 보고, 영화는 연애하는 남녀를 가장 단골 소재로 사용한다. '오늘영화'는 영화와 연애라는 공통된 소재를 아우르는 세 편의 단편 영화를 한데 모았다.

이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매년 진행하는 '인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됐다. 올해는 서울독립영화제의 40주년. 매년 이미 완성된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엮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나의 영화'와 '나의 영화제'라는 주제 아래 시나리오를 공모했다. 서독제와 인연이 있었던 윤성호, 강경태, 구교환, 이옥섭 네 감독은 공모전에 응시해 영화제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은 영화제가 지원한 600만 원의 예산으로 '백역사', '뇌물', '연애다큐'라는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완성했다. 윤성호 감독은 "적은 제작비로 말도 안 되게 잘 만든 영화"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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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예산이 해마다 줄고 있다. 편당 600만 원에 영화를 제작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예산이 적은 데 잘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 자랑할 만 한 것은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감독이 서독제에 대한 애정과 불혹의 생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임한 작업이었다"

윤 감독의 말대로 세 영화의 개성과 완성도가 하나같이 빛난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백역사'는 오포(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집 포기)세대 남녀의 연애담을 그렸다. 공장 노동자와 중국집 여종업원의 설렘 가득한 데이트를 그린 영화는 소득수준이나 주거환경과 상관없이 행복해 지려는 사람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과 재기발랄한 유머로 담아냈다.

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데뷔한 윤성호 감독은 그간 수많은 단편 영화를 만들어 '10분의 선수'로 불린다. 최근 모바일·웹드라마로 활용 저변을 넓히며 바쁜 나날을 보낸 그에게 '백역사'는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에 말을 빌리면 이 작품은 액세서리 다 떼고 오로지 배우랑 이야기로만 만든 담백한 영화다. 

"나머지 두 편의 영화가 필름 메이커에 대한 아이러니를 다루기 때문에 나는 영화가 인생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영화는 그저 시간을 보내는, 데이트할 때 관습적으로 선택하는 용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게 영화가 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말대로 '백역사' 속 남자(박종환)은 전날 밤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정연주)와 영화를 보기 위해 잔업을 남겨두고 조퇴한다. 영화 티켓을 사려고 가불을 받고, 여자의 뜬금없는 요구에 부단한 노력을 하며 마음을 얻고자 한다.

어렵게 입장한 극장은 이들에게 영화를 보기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옥신각신하다 첫 키스를 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영화를 다 보지도 못한 채 빠져나간다. '백역사'는 영화와 극장으로 시작해 사랑의 불꽃을 튀긴 한 남녀의 멋진 하루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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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백역사'는 흑역사의 반대개념으로 지은 건 아니었다. 윤 감독은 "연애 이야기를 할 때 흑역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왜 백역사라고는 안 하지?'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러나 '백역사'의 의미가 찬란했던 과거라는 의미에 한정되기보단 너무 눈이 부셔서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영화 '뇌물'은 풍자적 시선이 돋보이는 블랙 코미디다. 영화감독 지망생 대일(백수장)의 영화 제작기를 통해 영화와 영화인, 제작환경을 끊임없이 비꼰다. 액자식 구성의 중첩을 통해 까도 까도 영화가 나오는 양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연출을 맡은 강경태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핫한 세 감독과 달리 난 수많은 영화제에서 퇴짜를 맞았다. 서독제가 올해가 40주년이라 공모를 하면서 탈락의 설움을 간직한 감독을 대변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학술대회 대표 자리를 둘러싼 두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뇌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자전적인 사연이 가미된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 그는 "나 자신을 조롱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영화에 '진짜냐 가짜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나 스스로가 영화를 만들며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다. 내 이야기가 독창적인가 아닌가 혹은 이 제작방식이 맞는가 아닌가에 대한 내적 갈등을 자주 겪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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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품인 '연애다큐'는 구교환, 이옥섭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을 오롯이 읽을 수 있는 독특한 멜로다. 두 사람은 이옥섭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4학년 보경이'에 구교환 감독이 출연 및 편집을 도우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옥섭 감독이 쓰고 연출하며, 구교환 감독이 연기하고 편집하는 분업 시스템으로 시너지를 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구교환 감독은 "이옥섭 감독과 그간 세 편의 작업을 같이 했지만, 공동 연출을 한 것은 '연애다큐'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촬영 내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썸타는 시간을 반복했다. 워낙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더 의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 감독은 '연애다큐'에 자신들의 연애 기억을 집약했다고 했다. 심지어 구교환 감독은 어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을 영화에 총동원했으며, 이옥섭 감독은 자신의 집과 애견을 등장시켰다.

극 중 교환(구교환)이 연인 하나(임성미)의 모든 모습을 카메라에 포착하려는 모습은 감독의 욕망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옥섭 감독은 "모든 감독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저걸 찍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소재가 주제가 되니 시각적인 것이든 이야기든 기록하려는 습관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애다큐'는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각자 스타일이 분명한 두 사람이 독특한 방식으로 데이트하고 대화를 하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연애 패턴이 마치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냉소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는 구교환과 임성미라는 배우의 신선한 매력이 더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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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 배우 겸 감독은 "영화를 찍기도 하고 찍히기도 하는 것 둘 다 좋다. 내가 만드는 영화는 내가 가장 잘 알기도 하고 스케줄 조절도 쉽고, 무엇보다 페이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엄청난 메리트를 두고 직접 연기를 안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약간의 손해, 정신이 없다는 것 정도가 있지만 내 옆에는 이옥섭 감독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함께했으면 한다"고 공동 연출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윤성호 감독을 제외한 세 감독은 '오늘영화'가 첫 극장 개봉작이다. 자신이 애지 중지 키웠던 새끼가 세상과 마주하기 전 설렘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강경태 감독은 "하나의 주제로 진행하는 공동 프로젝트다 보니 내가 못해서 다른 작품에 민폐가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뇌물'도 재미가 있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결과물에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다"고 겸손해했다.

맏형인 윤성호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합친 '오늘영화'의 내부 시사를 했을 때 다른 두 작품이 너무 뛰어나 깜짝 놀랐다. 이웃들이 너무 빵빵하니까 에티타이저같은 내 영화를 제일 먼저 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단편 영화만큼은 이골이 날만큼 많이 만들어봤고 서독제 심사위원을 한 경험도 있지만 이번에 함께 작업한 두 단편이 가장 후들후들하게 좋았다"고 후배들의 작품을 호평했다.

이 말에 구교환 감독은 "윤성호 감독님은 자꾸 자기 작품이 샐러드라고 하지만 막상 떠먹어 보면 연어가 있고 고기가 있는 영화다.(이때 윤성호 감독 曰 "이집트 콩이다. 고기를 안 넣었어!"라고 외쳤다) 난 '두근두근 배창호' 때부터 윤성호 감독의 엄청난 팬이었다.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고 부연하는 훈훈한 풍경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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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인 '오늘영화'에 대한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네이X에 검색이 안 되죠? 영화쓰고 한 칸 띄우고 붙여서 '오늘영화' 치면 됩니다. 영화 제목이 오늘 날씨가 아닌 게 그나마 어디에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네 감독 모두 내일의 행보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웹·모바일 드라마까지 저변을 넓히며 충무로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활동하고 있는 윤성호 감독은 "영상 시장의 환경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면서 6초짜리 짧은 동영상 '바인'(Vine)을 변주한 1분짜리 드라마를 시리즈로 기획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에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 시즌2를 포함한 두 개의 새 프로젝트도 동시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강경태, 이옥섭 감독은 장편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구교환 감독은 "영화 외에 것들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다소 엉뚱한 대답으로 향후 계획을 광범위하게 전했다. 

네 감독의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오늘영화'는 지금 당장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놓치면 아까운 4인 감독의 '어제영화' 리스트

독립영화계에서 영화 잘 만든다고 정평이 난 네 감독의 대표작 필람(必覽) 리스트를 공개합니다.

윤성호 감독: '은하해방전선'(강추), '우익청년 윤성호', '두근두근 영춘권', '도약선생', '썸남썸녀' (이번 기획전에서는 '은하해방전선'만 상영됨)
강경태 감독: '아무것도'(강추),'누가 만들었을까', '무덤가', '11월', '김추자-무인도'
구교환 감독: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강추),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
이옥섭 감독: '4학년 보경이'(강추), '라즈 온 에어'

어디서? 인디스페이스 8월 28일~30일까지 열리는 '어제영화' 기획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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