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류승완 감독이 밝힌 '베테랑' 비화…숨은 공신 있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9.01 16:56 조회 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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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부당거래'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베테랑'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 분이 있어 살아있는 형사 캐릭터, 흥미로운 범죄 오락 영화를 만들 수 있었죠" 

류승완 감독의 역작 '부당거래'와 최고 흥행작 '베테랑'은 모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러나 두 작품에 등장하는 경찰은 사뭇 다르다. '부당거래'의 최철기(황정민)는 광역수사대 에이스지만, 출신에 대한 자격지심과 승진에 대한 열망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만다. 반면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은 "돈 없이 살아도 가오 빠지게 살진 말자"고 외치는 정의로운 형사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류승완이 만든 경찰 캐릭터라는 점과 황정민이 연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두 캐릭터의 탄생과정에 실제 경찰의 생생한 조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베테랑'이 개봉 25일 만에 대망의 천만 고지에 올랐다. 류승완 감독이 '액션 키드'에서 '블록버스터 흥행 감독'으로 한 단계 영역을 확장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류승완 감독은 액션 장르에서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며 한 길을 걸어왔다. '베테랑'은 자기 개성을 고수하면서도 오락성과 작품성이 평행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객들은 부상으로 '천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영화의 제목처럼 진짜 베테랑의 자리에 오른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영화의 생생한 제작기와 흥미로운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베테랑

◆ '베테랑', 전작의 반작용으로 출발한 영화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의 전작 '베를린'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주제나 이야기의 연장 선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을 만들면서 받은 규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차기작은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 편한 마음으로 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전작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화를 찍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당거래'와 '베를린'하면서 주인공이 우울하고 아프고 죽는 상황들이 속상했다. 더불어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는 스트레스, 분노, 우울, 무기력증 등이 내 영화 안에서 일순간만이라도 해소됐으면 싶더라. 그러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서민 영웅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돈보다 가치가 중요한 이야기 말이다"

'베테랑'의 구상은 '베를린'의 후반 작업 중 이뤄졌다. 류 감독에 따르면 인물의 원형은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이었다. 서민 친화적 형사에 황정민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더욱 구체화 됐다.

류승완감독

◆ 발로 쓴 시나리오…생생한 내부 시선

영화의 모티브는 '부당거래'를 취재하면서 수집했던 러시아 마피아의 중고차 절도 사건이었다. 애초 류승완 감독은 이 사건을 확장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식스티 세컨즈'나 '이탈리안 잡'같은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60~70년대 카체이싱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러나 카체이싱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시간과 돈, 노력이 많이 드는지라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시나리오 집필 초반 단계라 방향을 선회하기 쉬웠다"

이때 류승완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자신안의 분노였다. 류 감독은 "당시 재벌, 권력자들의 악행을 다룬 기사를 접하면서 굉장히 분노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하고 경찰을 붙여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건과 이야기가 자연스레 맞물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베테랑'의 시나리오는 발로 뛰며 완성된 것이다. 형사, 검사, 기자 등을 대상으로 한 꼼꼼한 취재와 취재원들이 이야기가 원천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경찰이 사건을 접수하고 범인을 검거하기까지의 과정이 현미경을 들이된 것처럼 상세하게 그려진다. 특히 광역수사대 내부의 묘사가 흥미롭다. 류승완 감독이 잠입에 가까운 취재를 할 수 있었던 건 믿을만한 취재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승완감독

"아트박스 사장으로 나온 마동석 선배 때문에 알게 된 형사들이 꽤 있다. 그중 한 분이 실제 광수대 출신이다. '부당거래'때 인연을 맺어 지금도 형-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분은 조폭 담당 형사로 이름을 떨쳤고, 거대 기업이 관련된 수사도 오랫동안 진행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도 사는 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아이의 교육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비싼 전셋값 때문에 발 동동 굴리고 그러면서도 누구한테 신세 지는 건 창피해 한다. 그 분을 보며 서도철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갔다"

실제 현장에 있는 형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기재하지 않았다. 시사회 때 가장 좋은 자리에 초대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경찰들이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부당거래'라고 하더라.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강력 3반'이라고 하더라. 이젠 '베테랑'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류승완감독

◆ 믿고 쓴 황정민과 복덩이 유아인

류승완은 '부당거래'에 이어 다시 한 번 황정민과 호흡을 맞췄다. 황정민은 류승완의 영화에서 가장 자유롭게 연기하고, 류승완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황정민이 입었을 때 가장 신이나 보인다. 그것은 두 작품에서 입증됐다.

의외의 선택은 유아인이었다. 류승완은 유아인은 '복덩이'라고 표현했다. 류 감독은 "안하무인에 술, 여자, 마약까지 즐기는 재벌 3세 캐릭터를 하겠다는 젊은 배우가 많지 않았다. 연령대를 바꿔보기도 하고 캐릭터 자체를 순화해보기도 했다"고 캐스팅 당시의 어려움을 밝혔다.

류승완 감독에 따르면 '조태오'는 40대가 될 뻔했다. 30대 인기배우 두 명에게 연이어 퇴짜를 맞은 상황에서 캐릭터 수정이 불가피했다. 캐릭터의 연령을 40대까지 올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중견 배우에게도 거절당하면서 캐스팅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때 유아인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유아인을 만났다. 수년 전 유아인이 출연했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의 GV를 한 적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소년에서 남자가 돼 있더라. '베테랑'의 이야기를 했는데 관심을 보여서 시나리오를 보냈다. 그때 조태오가 하도 캐스팅이 안 돼서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았는데 유아인이 "시나리오 너무 재밌게 읽었는데, 조태오가 이렇게 구구절절해야 해요? 그냥 나쁜 놈이면 안 돼요? 하더라. 그때 정말 감탄했다. 많은 배우들이 광고나 이미지 때문에 꺼렸던 요소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모습 말이다.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이 배우가 정말 영민한 배우란 걸 또 한 번 느꼈다"

류승범의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때는 인터뷰장의 분위기가 경직되기도 했다. '부당거래', '베를린'에서 연이어 좋은 호흡을 보여줬기에 이번 영화에 함께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그림을 그려보며 한 질문이었다.

"동생의 출연과 관련된 질문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우리가 형제이기 때문에 함께 작품을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시선을 느낄때가 있다. 그건 감독인 나와 배우인 동생을 무시하는 이야기다. 어떤 기자는 "동생은 노개런티로 출연하시겠어요?"와 같은 질문도 한다. 우리가 각자의 분야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왔는데...아직도 그런 선입견 어린 시선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떨어져 각자의 작품을 하는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류승완감독

◆ 뒤바뀐 라인업·예견된 흥행 "천만 보다 중요한 건…"

'베테랑'은 지난해 추석 개봉을 목표로 준비했다. 촬영은 6월에 마쳤지만, 후반 작업이 빠듯해 겨울로 개봉 시기를 맞춘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CJ엔터테인먼트의 겨울 라인업엔 '국제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개봉은 해를 넘겨 설 연휴로 잠정 확정했지만 '국제시장'의 흥행이 장기화하면서 또 한 번 개봉 시기가 미뤄졌다.

이 와중에 모니터 시사회에서 4.4점(5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으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수직 상승했다. 결국 CJ는 '베테랑'을 2015년 텐트폴 영화로 확정하고 여름 시장을 맡겼다. 그 선택은 천만 관객 돌파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게다가 국내 4대 투자배급사의 여름 대표작 중 가장 적은 제작비를 들였지만 가장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CJ가 올 상반기 겪은 최악의 부진도 한 번에 털어낼 수 있는 대박이었다.

'베테랑'은 지난 8월 5일 개봉한 이래 27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며 1,100만 관객을 모았다. 더불어 '태극기 휘날리며'를 넘어 역대 한국 영화 흥행 8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그야말로 지난 한달간 신바람 관객몰이를 했다.

류승완 감독은 흥행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관객 수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영화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생각이다.

"내 직업이 감독이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나 역시 '온니 원의 관객'이 되고 싶다. 몇 백 만명의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베테랑'이 흥행이 잘되고 이런 것 보다 단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이 작품을 보고 즐거워했으면 한다. 또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길 원한다. 그것이 나에겐 숫자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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