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오피스' 홍원찬 감독 "칸에서 '땅콩 회항' 언급, 놀랐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9.08 10:12 조회 2,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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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찬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칸에서 이 영화를 본 외국 기자가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은유가 아니냐고 질문 하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어요"

홍원찬 감독은 데뷔작 '오피스'는 지난 5월 폐막한 제 68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됐다. 국내보다 해외 관객의 반응을 먼저 접한 셈이다. 감독은 의도하지 않는 해석을 쏟아내는 서구의 시선에서 한국과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후반부, 한 여성이 죽임을 당하는 화장실 장면에선 지난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 회항'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회사 내 선,후배 사이가 수직적으로 그려지고 그로 인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개인의 복수 너머 사회적 함의까지 담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의 회사 생활은 다 저래?"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창피하지만 많은 부분이 사실이라고 했어요. 외국에선 영화 속 사회적 배경을 흥미롭게 보더라고요. 한국 노동문화나 서열문화에 대한 특수성을 호러·스릴러 장르로 풀어낸 것에 호평해주신 것 같아요"

오피스

'오피스'는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 회사원이 다시 회사로 출근한 모습이 CCTV 화면에서 발견되고 그 후, 회사 동료들에게 의문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영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긴장감 공포감을 발생시키고, 인물의 비밀이 밝혀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릴러나 공포 장르에서 관객이 쉽게 느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리얼리티다. 극단적 설정과 과장된 묘사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관객을 떨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건 시각적, 청각적 요소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요소가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무서운 건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남 직한 일들을 공포의 재료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로 대변되는 고용 불안, 학벌 사회 등의 요소가 현실적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나리오는 다년간 회사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영화사 꽃의 최윤진 대표가 집필했다. 홍원찬 감독은 "경험만큼 시나리오에 좋은 밑바탕이 되는 것 없는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머리로 쓸 수 있는 게 아닌 이야기구나 싶더라. 내 역할은 재밌는 이야기를 기술적으로 다듬으면 됐다"고 말했다.

홍원찬 감독은 대학(상명대학교 영화학과)과 대학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서 영화를 졸업한 뒤 '추격자','황해'의 각색가로 활약하며 충무로에 이름을 알렸다.

이야기를 다듬는 데 남다른 재능을 가졌던 홍원찬 감독은 데뷔작에서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시나리오가 조직 생활을 경험한 내부인의 시선이 돋보였다면, 각색고는 사회 생활을 경험한 적 없는 홍원찬 감독의 객관적 시선이 더해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개봉 버전은 칸 출품 버전에서 편집을 더해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로 재탄생 했다. 

홍원찬감독

"사실적인 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릴러라는 게 복잡하고 예민한 장르라 만든 이의 의도가 뜻대로 전달되기가 쉽진 않아요. 그렇지만 미례의 감정만큼은 보는 관객이 놓지 않도록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관객들이 미례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본다면 저는 그 자체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오피스'는 김병국(배성우)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한 뒤 회사로 돌아와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출발하는 영화다. 형사가 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회사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영화는 1/3까지는 김병국 과장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이후부터 미례(고아성)가 이야기와 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그의 바람대로 영화 속에서 보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건 '미례'라는 인물이다. '인턴'이라는 그럴 듯한 직함으로 부르는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애환을 영화는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관객이 보는 사건의 범인과 극중 인물이 알고 있는 범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죽임을 당하면서도 실제 범인의 얼굴이 아닌 다른 이의 환영을 본다. 그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죄책감'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반대로 실제 범인을 그만큼 하찮은 존재로 여겼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죄책감 때문에 환영을 보는 것이 맞다. 더불어 진짜 범인은 그들에겐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것이고. 우선은 김과장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를 공포로 풀어내는게 우선이었다. 후자에 대해서까지 관객들이 읽어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여타 호러에 비해 피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홍원찬 감독은 스릴러에서 강점을 보여온 작가 출신 감독이지만 공포영화와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드고어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 영화에서는 이야기의 밀도나 긴장감으로 서스펜스를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특정 장면에서는 임팩트를 주려고 했죠. 후반부 화장실 신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오피스

'오피스'의 순제작비는 23억선. 대부분의 촬영은 부산에 마련된 세트장에서 이뤄졌다. 사무실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사건의 배경이 아닌 사건의 출발이며 주 무대가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파티션 호러'라고 명명할 수 있을만큼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사무실이라는 공간의 요소요소가 공포로 다가온다. 

"부산의 한 빌딩을 빌려 세트를 지었어요. 파티션이나 모서리 등을 다 만들었고, 창문의 경우 CG로 만들었죠. 예산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의도적으로 장소도 한정시킨 건 있어요.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그것이 결과적으론 긴장감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네요"

홍원찬 감독은 데뷔작에서 자신의 개성과 탄탄한 연출력을 발휘한 것에 대해 배우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우리 영화는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까지도 결정적 신이 하나씩 있어요. 그건 배우들이 잘 표현해줬기 때문이에요. 고아성에게 이 작품이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해요. 배성우 선배도 가지고 있는 역량을 십분 발휘했죠. 코믹한 신스틸러로 활약하고 계시지만 정극이나 느와르 영화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해도 잘하실 거로 생각해요. 김의성, 이채은, 오대환, 박정민, 손수현 씨도 모두 자신들의 개성을 캐릭터에 잘 녹여줬어요. 고맙죠"

데뷔작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홍원찬 감독은 스포트라이트에 연연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각오다. 스릴러 장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여전하다. 차기작 역시 스릴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추격자'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작품을 하면서 스릴러쪽에 대한 성향이 굳어진 것 같아요. "두 번째 작품은 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보려고요. 우선은 '오피스'의 개봉을 잘 마치는게 중요하겠죠. "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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