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신 스틸러' 배성우가 관객을 사로잡는 법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9.15 09:14 조회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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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베테랑'과 '오피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한 명의 배우가 두 영화의 오프닝을 관통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영화 초반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남다른 존재감으로 극을 장악한 뒤 굵게 치고 빠지는 날렵한 잽의 소유자는 바로 배성우다. 한편은 천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다른 한편는 칸국제영화제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바야흐로 '신 스틸러(scene stealer)의 전성시대'다. 오달수, 이경영 등이 전천 후 활약을 펼치는 가운데 이들의 뒤를 잇는 배성우의 전성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장면을 훔친다는 뜻의 '신 스틸러'는 말은 배우에게는 칭찬이다. 하지만 역할과 비중을 한정 짓는 표현이라 일부 배우들은 이 표현을 싫어하기도 한다. 배성우는 어떨까.

"장면을 따먹는다. 혹은 잡아먹는다 이런 의미로 하는 말 같은데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 안에서 자기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경계하는 편이다. 연기는 결국 앙상블이기 때문이다"

오피스

◆ '오피스', 김병국 과장의 미스터리

'오피스'에서 배성우가 연기한 김병국 과장은 강렬한 오프닝으로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 공포에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서려 있다. 두 어깨엔 영업과장의 스트레스, 세 식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암울함이 내려앉아 있다. 그는 왜 일가족을 죽여야만 했을까.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병국이라는 인물은 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서도 명확하게 설명을 안 해주는데 그것을 배우가 마음대로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논리적 분석보다는 그의 심리 상태에 집중하며 연기를 했다."

이야기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가 일가족을 살해한 김 과장이 회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배성우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난 복수심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피스

"회사에서 그의 시체가 발견된다면 회사 차원에서는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 다른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에겐 회사가 가장 끔찍한 공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 아닌가. 갈 곳이 그곳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집이 안락을 주는 장소라지만 과연 그 곳이 그에게 편안함만을 주는 곳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어디에서나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을 것 같았다. 그 근원인 회사 역시 무슨 잘못인가. 시스템의 문제인 것을…."

김 과장은 일가족 살해 후 종적을 감추지만, 중반까지 영화를 장악한다. 오피스 내 동료들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같이 김과장의 얼굴을 본다. 이 훼이크의 의미는 뭘까.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동료들은 못돼먹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들 역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나. 마음속 불안이나 죄책감이 김병국 과장의 환영을 통해 들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 배성우, 배우가 되기까지 

"어릴 때 공부에 딱히 취미가 없었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쓰는데 대부분 의사, 변호사 이런 걸 쓰더라.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직업은 너무 싫더라. 그래서 장난처럼 영화배우라고 적었는데 말처럼 정말 관심이 생겼다."

배성우가 연기를 한 건 성극부터였다. 교회에서 연극을 하며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연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여느 연기파 배우들이 그러하듯 대학로 연극판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1999년 뮤지컬 '마녀사냥'으로 데뷔한 배성우는 '명성황후', '루나틱', '지하철 1호선', '토토' 등을 거쳐 연기와 노래, 춤 모두가 수준급인 전천후 배우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08년 출연했던 연극 '클로저'였다.

"'클로저'는 지금까지 총 5번 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연기한 래리를 관객들이 많이 사랑해줬다. 나에겐 특별한 연극이다. 영화계에 입문한 것도 어쩌면 이 연극 덕분이다"

영화 데뷔작인 '미스 홍당무'도 이경미 감독이 '클로저'를 봤기 때문에 출연할 수 잇었다. 배성우가 연극에서 보여준 연기가 찌질한 의사 역할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

배성우

◆ "앞으로도 다작할 것…그러나 소모는 경계"

배성우는 지난해 무려 11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이 정도면 선배 이경영을 위협하는 다작 행보다. 개봉 시기가 겹쳤을 뿐 의도한 바는 아니다. 배성우는 작품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경계는 없었다. 단 소모와 소진은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가는 다작 배우가 되고 싶다. 다작한다는 건 연기를 오래 많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물론 이미지 소모에 대한 부담과 위험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하되 매력이 소진되는 것은 경계할 것이다. 지난해처럼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내놓은 건 좀 이례적인 경우다. 의도한 바도 아녔고"

충무로의 '신 스틸러'로 주가가 높아진 것에 대해 그는 "아우, 감사할 뿐이죠"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더불어 "소위 말하는 감초캐릭터라도 결이 섬세한 연기를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연극을 '플레이'라고도 하지 않나. 신나게 놀되 어떻게든 인물을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연기라는 건 어떻게 보면 멋지게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하는 건데 그것을 신나게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연기 지론을 밝혔다.

"극 안에서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이 잘 맞아서다. 배우들 간에 잘 주고받는 플레이가 됐기 때문이다. 액션과 리액션의 조화 속에서 그 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연기를 펼쳤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배성우의 연기는 올 하반기에도 만나볼 수 있다. 다음 작품은 '특종:량첸살인기'와 '더 폰'이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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