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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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도'에 투영된 부자 관계…그 애증에 대하여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9.17 11:29 조회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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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이 한마디는 '사도'를 함축한다. 이 영화는 해묵은 뒤주사건이 재탕이 아니다. 붕당 정치의 희생양으로 부각됐던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정치가 아닌 가족의 비극이라는 관점 아래 풀어낸 이야기다.

'사도'는 클라이맥스로 시작한다. 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다. 갈등의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이야기의 시계추를 과거로 돌린다. 그들이 행복했던 까마득한 옛날로 말이다.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총 9개의 챕터로 나눴다. 영조(송강호)와 사도(유아인) 그리고 정조(소지섭)에 걸친 56년의 가족사를 2시간 안팎으로 아우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인물 간 갈등, 각자의 내면, 그리고 주변 인물과의 관계 등에 대한 묘사도 놓치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가 병렬로 진행되는 형식은 이야기의 비극성을 강조한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의 사연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내가 니 나이때는…",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등의 대사를 통해 영조의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교육 방식을 보여준다. 채 여물지 못한 사도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대간의 불통은 2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도

단지 아버지가 왕이고, 아들이 세자이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일 수도 있다. 위치와 지위가 주는 무게감과 사명은 천륜을 져버리는 선택을 낳았다. 영화는 사료에 기록된 역사에 충실하되 보다 풍성하고 세밀한 묘사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팩션극(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재해석한 사극)의 득세 속에서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사극이라는 점이 반갑다. 그간 역사에 너무 많은 MSG를 친 사극을 봐왔던 탓에 '사도'의 정공법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정공법은 이준익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4년 '왕의 남자'로 천만 신화를 만들어낸 뒤 '평양성', '구름을 버서난 달처럼' 등 팩션 사극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번째 영화인 '사도'는 정통 사극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사극 마스터가 만든 작품답게 이야기 구성이나 연기, 촬영, 미술, 음악 등 모든 부문에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배우의 공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송강호,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영조와 사도를 연기함으로 인해 관객들은 실록 속에 있던 두 인물을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송강호의 입체적인 연기는 영조라는 조선 시대 가장 근엄하고 꼿꼿했던 왕의 흥미로운 이면을 엿보게 한다. 무수리 소생이라는 신분 컴플렉스와 노론을 등에 업고 왕이 된 당파적 굴레 등 영조는 자기안의 화와 번뇌가 많은 왕이었다. 때문에 사도를 자식인 동시에 경쟁자, 짐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왕이었을 지언정 완벽한 왕은 아니었다. 

송강호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발성과 노역 분장을 뚫고 나오는 생생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송강호의 연기를 보면서 놀랄 수 있다'는 기묘한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사도

유아인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아버지의 기대와 세자라는 자리의 부담감에 짓눈린 불안전한 청춘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렸다. 특히 뒤주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사도의 심리를 광기 어린 연기로 표현해낸 것이 인상적이다. 극한의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끝없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건 유아인이라는 배우만이 가진 매력이다.  

두 배우는 각각 한 차례씩 정적의 시간을 선사한다. 유아인은 사도의 광기가 극에 달한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송강호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뒤 벌이는 9분간의 독백을 통해 몰아의 경지에 이른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사도의 생모인 영빈으로 분한 전혜진의 모성애 연기와 어린 정조로 분한 이효제 군의 영특한 연기도 쉼없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는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를 넘어 정조로 이어지는 56년의 시간을 아울렀다. 영화의 문을 닫는 것은 정조다. 이 에필로그에 대한 평가는 나뉠 것으로 보인다. 다소 긴 분량의 에필로그를 삽입한 것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정반합(正反合) 그리고 과거와의 화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개봉 9월 16일,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25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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