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화)

영화 스크린 현장

[리뷰] '필름시대사랑', 필름과 사랑에 관한 장률의 헌사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0.20 13:09 조회 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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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시대사랑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필름(Film)이라는 단어는 영미권에서 영화라는 의미로 쓰인다. 촬영한 영상을 담은 가늘고 긴 띠는 곧 영화 자체로 통용돼왔다. 

필름의 기능을 디지털이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 단어는 사어(死語)가 될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필름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 변화는 현장의 영화인들이 누구보다 깊이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장률 감독의 신작 '필름시대사랑'(감독 장률, 제작 률필름)은 필름 시대에 고하는 애정시다. 감독을 꿈꾸는 조명부 퍼스트가 촬영 현장에서 반기를 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작품은 영화와 사랑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멸하는 어떤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필름시대사랑'은 1장 사랑, 2장 필름, 3장 그들, 4장 또 사랑까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필름과 디지털, 컬러와 흑백, 유성과 무성,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 등 상반된 형식으로 분절된 듯 이어진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손녀(한예리)는 정신 병동에 입원 중인 할아버지(안성기)에게 면회를 간다. 할아버지는 손녀와 담소를 나누다가 깎고 있던 사과를 평소 흠모하던 청소부 아주머니(문소리)에게 건넨다. 이를 거절하자 화가 난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과도로 위협하게 되고 일순간 추격극이 벌어진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컷(cut) 소리가 들린다. 

필름

이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스태프 대부분은 극적 긴장감이 카메라에 잘 담겼다고 생각하지만, 조명부 퍼스트(박해일)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급기야 감독에게 찾아가 "사랑을 믿으세요?"라고 뜬금없이 묻고, "영화를 이렇게 찍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훈계까지 한다. 제작팀은 다시 촬영 준비로 분주해지고 조명부 퍼스트는 촬영된 필름통을 들고 현장에서 도망친다.

1장 '사랑'은 액자식 구성을 통해 촬영 현장을 담았다. 영화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인 수십 명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갖가지 생각과 의견이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 챕터는 조명부 퍼스트의 돌발행동을 통해 다수 대 1의 동상이몽이 벌어지는 촬영현장을 흥미롭게 묘사했다.

2장은 '필름'은 보는 이들에게 가장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미지의 연속이다. 1장과 같은 공간이지만 인물이 존재하지 않고 영상과 음향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촬영이 끝난 후 남겨진 공간은 마치 유령이 머무는 곳과 같은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4장 중 이 챕터만 16mm 필름으로 촬영됐다. 

3장 '그들'은 영화의 주요 배우인 박해일, 안성기, 문소리, 한예리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 '화려한 휴가', '박하사탕', '귀향'의 클립을 가져와 가상의 대화로 채웠다. 필름 영화인 이 작품을 무성 영화로 스크린에 펼치면서 현재의 영화에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부여했다.

4장 '또 사랑'은 1장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현장을 박차고 나온 조명부 퍼스트의 뒤를 따라간다. 그가 꿈꾸고 그렸던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그 아리송한 이야기를 나지막이 전한다. 

필름 시대

'필름시대사랑'은 영화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작품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연출한 장률 감독은 영화와 사랑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 것을 아닐까. 그러므로 자신이 믿고 있는 영화 혹은 사랑에 대한 신념이 충돌할 때 느끼는 환멸이나 자기반성 등을 조명부 퍼스트에게 이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수도 있다. 

영화의 무대는 왜 정신병원일까.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은 "한국에 정착한 3년 반 동안 정신병이 든 것처럼 영화를 만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 했다. 어쩌면 영화 속 할아버지는 감독의 분신일 수도 있다.  

'필름시대사랑'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영화이다. 불분명한 내러티브가 4장에 걸쳐 이어지고, 관념적 이미지와 아리송한 대사들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필름

이 작품은 애초 서울노인영화제 개막작으로 시작했다. 총 3회차의 촬영으로 10분 내외의 이야기를 완성한 감독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1장으로 마무리된 이야기는 4장까지 이어져 장편으로 완성됐다.

'노인'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영화가 '필름'과 '사랑'으로 이어진 건 아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속성, 반대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본질 모두를 가졌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70분, 개봉 10월 22일.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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