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중화대반점' 유방녕 셰프 "가문의 비법 수첩, 아들도 안 보여줬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0.31 14:18 조회 7,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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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할머니에게서 배운 춘장부터 프라자 호텔에서 연마한 요리 비법까지 적어둔 수첩이에요. 요즘도 가끔 기록하고, 때때로 꺼내보기도 해요"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식당 'XIN(신) 차이니'에서 만난 유방녕 셰프는 금고에서 오래된 수첩 서너 권을 꺼내 보여줬다. 자필, 게다가 한자로 빼곡히 쓰여 있었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 기록엔 유방녕 셰프의 요리 인생 44년이 집약돼 있었다.

유방녕 셰프의 중식은 무려 3대째 내려온 가문의 비법으로 완성됐다. 그는 청나라 말기, 할아버지 대(代)부터 인천 차이나타운에 넘어와 조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식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지난 17일 첫방송된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연출 옥근태, CP 전병래)을 통해 유방녕 셰프는 시청자들도 인정한 중식 대가로 거듭났다.

작은 키,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인 그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보이다가도 요리 타이머가 돌아가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주방을 장악해 나갔다.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묵직한 손맛으로 음식의 맛을 내는 진정한 고수였다.

1회엔 집안의 비법 춘장을 사용한 발효콩 짜장면으로 시청자의 군침을 흘리게 하더니, 2회엔 돼지 알등심을 이용한 팔보완자로 첫 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중화대반점

◆ 정통식 팔보완자로 첫 승 "할 거면 제대로 한다"  

유방녕 셰프에게 첫 승의 기쁨을 안긴 요리는 팔보완자다. 돼지고기 알등심 부위로 완자를 만들어 튀긴 뒤 고깃속은 모두 파내고 그 안에 각종 해산물을 채워 넣은 기상천외한 요리였다.

"동대문 인근의 어느 가게에서도 이 팔보완자를 판다. 그것이 빨리 많은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간소화해 만든 요리라면 내가 만든 것은 정통 중국식 레시피에 충실한 요리다. 물론 손이 많이 가고 시간과 땀도 많이 든다. 한 시간 내에 만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만들 거면 제대로 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1회 방송에선 수타면 60인분을 뽑아내 '수타요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무려 25년 만에 수타면을 뽑은 것이었다. 유방녕 셰프는 "그 방송 이후 이틀을 앓았다. 오랜만에 안 쓰던 근육을 써 무리가 갔던 것 같다. 그래도 맛있는 짜장면을 맛보여 드려 보람 있었다"고 했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이때 짜장면은 가문의 비법 춘장으로 완성했다. 유방녕 셰프가 운영하는 신차이니 레스토랑에서는 '달인 짜장면'으로 불리는 메뉴다. 과거 동생 유방원 셰프가 '생활의 달인' 짜장면편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는 진미다. 유방녕 셰프는 이날 옥상에 있던 모셔둔 장독을 열어보였다. 

"그날 녹화에 가져간 춘장은 만든 지 3년 된 것이다. 보통 1년에 한 번 담그고 장시간 숙성시킨다.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에 틈틈이 잘 저어줘야 한다. 장독이 햇빛을 받으면 향이 생긴다. 그러면서 춘장 맛이 더 좋아진다. 한국 음식에서 된장과 고추장이 기본이듯 중식은 춘장이 기본이다. 잘 만든 춘장은 짜장면이 아니라 채소를 볶아먹어도 감칠맛이 나고 맛있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 오기와 집념의 성공신화…중식 명인 40년사

유방녕 셰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4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가방끈은 짧아도 요리줄은 길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요리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먹고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시작은 배달이었다. 십대 초반의 나이부터 배달통을 들고 사방팔방을 다녔고 청소, 설거지, 빨래, 다림질, 연탄불을 피우는 등 갖은 잡일을 하며 주방 입성을 기다렸다. 작은 키와 체구 탓에 차별도 많이 당한 그였다. 하지만 차근차근 기본기를 다지며 실력을 연마해 나갔다.

유방녕 셰프는 '중화대반점'에 출연하는 4인의 대가 중 유일하게 불판장 출신이다. 큰 규모의 중화요리점 주방은 칼판, 불판, 면판 등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대부분의 셰프는 칼판 출신이다. 유방녕 셰프가 불판의 대가가 된 것은 왼손잡이라는 핸디캡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핸디캡은 오늘날 유일무이한 불판의 대가로 자리잡는 원동력이 됐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한창 요리를 배울 1970년대만 하더라도 '왼손잡이는 칼판을 못 간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칼판에 짧게 있다가 바로 불판으로 옮겨졌다. 이태원 크라운 호텔에서 여경래 셰프와 함께 일한적 있었는데 그때 그는 칼판, 난 불판을 담당했다"

유방녕 셰프는 아서원, 사보이 호텔을 거쳐 대한민국 중식의 명가인 프라자 호텔 '도원'에서 약 30년간 총주방장을 역임했다. 이 곳은 역대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재계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꼽힌 80~90년대 최고의 레스토랑이었다.

"모두 "넌 키가 작고 왜소해서 호텔 주방에서 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발끈했다. 그래서 27살(1983년)에 오기로 당시 최고인 프라자 호텔에 들어갔다. 주방장, 부주방장에 이은 일급 조리사 자리였다. 그리고 7년 뒤 주방장이 됐다. 33살에 호텔 주방장이 된 것은 가장 빠른 속도일 것이다"

◆ 유방녕의 요리 철학…"사람 위에 사람 있다"

유방녕 셰프는 지난 2013년 프라자 호텔을 비롯한 5개 업장을 정리하고 인천 차이나타운에 신차이니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이 과정에서 돈과 사람으로 인한 상처도 적잖이 받았지만, 지금은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신차이니는 개업하자마자 맛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중화대반점 방송 이후에는 매출이 30% 가까이 상승하며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아까 낮에는 캐나다에서 방송을 찾아보고 오셨다는 손님도 있었다. 사진과 사인요청을 하시길래 기쁜 마음으로 해드렸다. 이게 방송의 힘이고 맛있는 음식을 선보인 보람이 아닐까 싶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유방녕 셰프는 예순을 앞두고 있지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과 혜안의 소유자다. 일례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서울 강·남북의 중식 레스토랑의 맛과 특징을 다 꿰고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나도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고정관념이 휩싸여 내 스타일만 맞다고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동생과 아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최근 손님들의 사랑을 받는 다른 식당의 맛과 스타일도 분석하려고 한다"

유방녕 셰프의 요리 및 경영철학은 "사람 위에 사람 있다"다. 그는 "요리는 손님이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기 때문에 요리사의 스타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손님의 취향과 기호를 잘 맞춰야 한다. 요즘은 고객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반면 주방장은 책이나 TV에서 보거나 다른 가게의 음식을 맛보는 게 다다. 중국집에서 갈비탕을 찾는다면 어렵겠지만, 맛에 대한 기호는 손님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 유방녕-유방원-유상민, 가문의 대물림은 계속

유방녕 셰프의 인터뷰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중화대반점'에 함께 출연중인 동생 유방원 셰프와 아들 유상민 셰프가 합류했다. 제자전에서도 가장 먼저 1승을 챙기며 유방녕 셰프의 어깨를 든든하게 한 그들이다.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흔한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직업의 대물림이 여의치 않다. 유방원, 유상민 셰프는 형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식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다른 쪽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요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타고난 손재주에 좋은 스승까지 만났으니 이들의 요리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유방원, 유상민 셰프 모두 아직까지 가문의 비법 수첩을 제대로 본적은 없다고 전했다. 유방원 셰프는 "어떤 요리를 만들 때 레시피 한 장만 떼서 보여 주기는 하셨지만, 책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언제쯤 보여 주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요리 경력 7년차의 새내기급인 유상민 셰프 역시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유방녕 셰프는 "다 때가 되면 물려줄 것이다. 우리 가문의 요리를 누가 지키겠느냐. 내 다음 세대는 동생과 아들"이라고 공언했다.

중화대반점 유방녕 쉐프

요리사 아버지를 보며 자라 그 뒤를 잇고 있는 유상민 셰프는 "모든 면을 배우고 싶다. 특히 가장 탐나는게 열정과 체력이다. 30대 초반인 나보다 60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체력이 훨씬 좋은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사부와 제자로 출연 중인 세 사람은 최종 목표는 우승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제들 중 유일하게 혈연관계인 세 사람은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유방녕 셰프는 나머지 세 대가(이연복, 여경래, 진생용)에 대한 경쟁심에 대해 "은근히 생기더라"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우리 넷 모두 기술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서로 다른 분야에 강점이 있을 뿐이다. TV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네 사람의 경쟁과 강점이 흥미요소가 될 것 같다"고 기대와 응원을 부탁했다.

'중화대반점' 세 번째 이야기는 오늘(31일) 밤 11시 SBS plus에서 확인할 수 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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