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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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의 환골탈태…'일말의 정의'를 외치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1.25 13:00 조회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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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우민호 감독에겐 수년간 '실패한(영화의)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데뷔작 '파괴된 사나이'(2010)와 두 번째 영화 '간첩'(2012)이 흥행은 물론 비평에서도 냉혹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게다가 두 번째까지 실패한 우민호 감독에게 세 번째 기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지푸라기가 황금빛 벼로 무르익었다.

우민호 감독이 세 번째 장편 영화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내부자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드라마.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등급의 한계를 극복하고 '친구', '아저씨', '타짜'와 같은 역대 19금 영화의 오프닝, 첫 주말 기록을 깼다. 전통적 비수기로 꼽히는 11월 극장가에서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바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잠재력과 실력이 비로소 표출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근사한 원작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할지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앞서 잘됐던 영화들의 기시감이 가득하다고 깎아내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내부자들'은 웹툰과는 또 다른 영화적 매력이 가득하다. 이것은 원작으로 바탕으로 1년간 시나리오를 쓴 우민호 감독의 탁월한 취사선택 덕분이다. 원작에서 두드러졌던 정치 게임을 단순화시키고, 인물 간 갈등과 복수극에 집중했다. 그리고 회의적 세계관으로 가득했던 이야기에 관객이 감정을 한껏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 우장훈을 투입시켜 숨통을 틔었다.

무엇보다 영화 재미에 팔 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김홍파, 배성우, 김대명, 조우진 등 멋진 배우의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명실공히 우민호 감독의 손끝에서 출발한 시작이었다.      

자기 안의 화(火)와 자격지심이 창작욕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영화 '내부자들'은 '권력자들은 썩었다'는 공분에서 시작,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회의감으로 치닫다가, '일말의 정의는 살아있다'는 카타르시스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우민호 감독은 "정의라는 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불면 날아가는 하찮은 것이 돼버린 시대지만, 그래도 일말의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부자들

Q. 작정하고 19금 영화다. 드러나는 폭력 수위는 높지 않지만, 분위기가 세다. 성적 묘사 역시 적나라하고 불편한 데가 있다. 

A. 원작의 이야기가 세지 않나. 이걸 원작으로 한 이상 무조건 19금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은 투자제작사랑 못 박고 시작했다.

Q.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창작 시나리오가 아니다. 게다가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화는 본인 생각이었나?

A. 영화 '간첩'의 상영을 마칠 즈음 지금의 제작사에서 콜이 왔다. 한겨레 오니피언에서 연재됐다 중단된 윤태호 작가의 웹툰 판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원작을 읽었는데 무척 세고 충격적이었다.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이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추악한 욕망을 뿜어낸다는 게 말이다. 이 작품은 꼭 영화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웹툰에서 가져온 것과 바뀐 것,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 낸 것들을 꼽아보자면?

A.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썼다. 웹툰은 현실 정치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하다. 실제 사건, 실존 정치인에 대한 언급도 이뤄진다. 그걸 영화화하기에는 불가능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웹툰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만큼은 가져와 영화적으로 풀고 싶었다. 웹툰이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영화는 시스템에 속해 있는 개인의 대결에 중점을 뒀다.

내부자들

Q. 그 과정에서 우장훈(조승우)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졌다. 원작 속 사진기자 이상업의 확장 혹은 진화된 캐릭터이다. 관객들에 가장 크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A. 우 검사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길 바랐다. 특히 젊은 사람들 말이다. 검사라는 건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직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직 안에선 누구나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그걸 뭐라 할 수 없고. 다만 방식의 문제다. 어떤 이들은 내부자들처럼 추악하게 이루고 어떤 이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룬다. 우 검사는 정의와 욕망 모두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출신 때문에 번번이 부딪힌다. 영화에 "잘하지, 아니면 잘 태어나던가"라는 대사도 나오지 않나. 요즘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가 이슈가 되고 있던데 관객들이 우 검사한테 많은 감정을 싣길 바란다.

Q.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A. 대한민국에서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만큼 정치 이야기하는 데 열올리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나도 딱 그 정도의 관심이다.

Q. 원작의 덕을 크게 봤다고도 볼 수 있다. 

A. 맞다. 윤태호 작가의 원작이 원체 매력적이지 않나. 게다가 이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대중적 색만 입히면 많은 이들이 좋아하겠다 싶더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뉴스만 틀어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한 발 더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듯한 쾌감을 주려고 했다. 내부자들의 실체를 좀 더 밀도 있게 느끼고 싶다면 웹툰도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는 뉴스와 웹툰의 중간 정도다. 무엇보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Q. 새롭게 만든 대사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강희(백윤식)가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말하는 대사 말이다. 

A. 이강희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뭔가 섬뜩하고 직접적인 대사가 있었으면 했다. 대중심리에 자기는 포함하지 않는 오만함도 보여준다. 촬영 이틀 전에 만들었다. 

내부자들

Q. 연기 잘하고 기 센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감독으로서 든든한 반면 부담도 됐을 것 같다. 

A. 걱정을 많이 했다.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다들 의외로 너무 착하더라. 게다가 엄청난 프로들이다. 자기 역할에 충실할 뿐 기싸움은 없었다. 영화나 캐릭터에 대해 숨김 없이 말하고 의견을 내줬다. 그래서 잘 풀어갈 수 있었다.

Q. 이병헌을 캐스팅한 뒤, 조승우를 캐스팅했다. 삼고초려 했다던데?

A. 감독이기 전에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병헌-조승우의 투 샷을 보고 싶었다. 이병헌이 캐스팅되면 꼭 조승우를 잡겠다고 생각했다. (출연)안 해도 좋으니까 일단 만나자고 졸라 남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조승우 씨가 이병헌 씨의 오랜 팬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작품은 안 하면 승우 씨의 손해다", "왜 손해죠?", "이병헌이라는 배우랑 이번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 "다음에 또 기회가 있지 있을까요?", "승우씨. 다음이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죠."라는 대화를 하면서 꼬셨다. 내가 워낙 저돌적으로 들이대 '이 감독에게 뭐가 있나' 싶었다더라.

Q. 왜 조승우여야만 했나?

A. 우 검사를 다른 배우가 했다면 지금의 이 힘이 안 났을것이다. 조승우라는 배우가 가진 '상처받은 날짐승' 같은 느낌이 좋았다. 대중이 소구하고 있는 것을 조승우라면 임팩트 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함께 작업해보니 정말 괴물 같은 배우더라.

Q. 검사와 깡패, 전라도와 경상도의 대비가 좋긴 했지만, 굳이 배우들에게 사투리를 시켜야 했을까 싶었다.

A. 안상구는 원작에서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었고, 우장훈의 경상도 사투리는 승우 씨 아이디어였다. 지방 출신이라면 서울에 20년을 살아도 사투리가 남아있을 것 같다고. 듣고 보니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의 인물이 맞붙는 게 화개장터 같은 느낌도 들고 좋겠다 싶었다. 안상구와 우장훈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인데 어찌보면 비슷한 지점이 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병헌, 조승우도 비슷한 점이 있다. 케미도 남다르지 않았나. 게다가 그 투샷을 매번 내가 가장 먼저 본다는 쾌감이 짜릿했다. 

우민호

Q. 이병헌의 입체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더라.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들었다. 

A. 원체 영화광이기도 하고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좋다. 시나리오대로만 연기하면 단조로울 수 있는데 현장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 배우를 보면 항상 감탄과 연민이 동시에 느껴진다. 감독이 해주는 건 고민해주고 옆에 있어 주는 것뿐이고 결국 본인이 해내야 한다. 안상구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보였다면 그건 오롯이 이병헌 본인의 힘이다. 

Q. 안상구는 이강희를 왜 그렇게 바보같이 믿었나? 삭제된 분량에 그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것 같다. 3시간 40분짜리 편집본이 궁금한 이유다.

A. 1시간가량 덜어낸 편집본에 첫 만남이 이뤄진 1988년부터 1999년까지의 관계가 나온다. 시간순으로 스피디하게 편집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통으로 덜어냈다. 흥행이 잘 된다면 캐릭터 중심의 디렉터스 컷을 공개하고 싶다. 색다른 느낌의 영화가 나올 것이다. 시작도 끝도 다른 느낌으로. 

Q. '내부자들'의 미덕은 '정의'라는 것에 대해 한 번은 곱씹게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A. 보통 사람들도 '정의'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했다. 요즘엔 '정의'라는 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후 불면 날아가는 가벼운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영화가 어쩔 수 없이 거대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전개를 띄게 되는데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통해 위로받기를 바랐다.

Q. 그런 마음이 원작에 비워둔 결말을 완성한 일종의 지표가 됐을 것 같다.

A. 지금의 시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영화는 시대를 타고, 분위기를 입기도 한다. 대중들이 누구보다 시대의 분위기를 절감하겠지만, 현 시대에도 정의에 대한 소구는 있는 것 같다. 그게 판타지라 할지라도. '내부자들'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세상을 흔드는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부자들

Q. 영화를 보고 나니 '우민호'라는 감독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더라. 연출을 전공했나?

A.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했다. 영화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봤다. '주말의 명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데뷔까지 10년이 걸렸으니. 데뷔 이후에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는 보기만 할 걸 왜 만든다고 해서 이런 고통을 받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파괴된 사나이'와 '간첩'의 연이은 실패 때문인가.

A.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지만 얻은 것도 많다. 무엇보다 관객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영화라는 게 한 번 보는데 만 원이지만, 친구랑 같이 오고 팝콘에 콜라까지 사 먹고, 끝나고 밥 먹는 걸 포함하면 4~5만원, 3~4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여가활동이다. 예전에는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한 댓글을 보면서 '야...이렇게까지 (악플을)써야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나라도 재미없으면 화날 것 같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세 번째 작품만큼은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고 대중도 만족스러워 할 영화를 만들자'는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만들었다. 캐스팅도 주연부터, 조·단역까지 신경 써서 했고, 스태프도 충무로 최고의 실력자들로 꾸렸다.

Q. 그런 자격지심이 절치부심의 힘이 됐을 것 같다.

A. 그렇다. 자격지심이 창작의 원동력이다. 대학 졸업 후 준비하던 영화가 계속 엎어지면서 40살에서야 데뷔했다. 결과적으로 1,2번째 영화가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자격지심이 들더라. '빨리 좋은 작품을 보여줘야 해', '난 여기서 끝이 아냐' 이런 컴플렉스가 '내부자들'에 심혈을 기울이게끔 했다. 영화에서 김대명이 조승우에게 "아무 데서나 자격지심 보이지 마. 추하니까' 하는 대사도 예전 내 모습을 떠올리며 쓴 거다.

Q. 아내도 언론업계 종사자라고 들었다.

A. 관련 분야에 있었다. 퍼스트룩이라는 잡지사에서 편집장을 했는데 지금은 관두고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우민호

Q. 시나리오를 쓸 때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지?

A. 충무로에 정설이 있다. '감독이 좋은 작품을 하려면 와이프가 똑똑해야 한다'고.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이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내다. '간첩'이 흥행에 실패하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와이프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화를 내더라.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분위기가 싸늘해지길래 "앞으로 우리 둘 다 분발합시다"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아내는 내 작품에 대해 늘 가감없이 이야기해 준다. '내부자들'을 만들 때에도 칭찬과 비판을 두루해줬다. 고맙다. 

Q. '내부자들'을 보고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 같다.

A. 예전에는 어디 가서 남편이 영화감독이라는 이야기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더니 이젠 "내 남편 '내부자들' 만든 감독이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차기작도 쇼박스와 한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을 계획하고 있나?

A.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건 없다. 구강 액션('내부자들'에 대한 감독식 표현)만 하다 보니 진짜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해보고 싶다. 세고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도 관심이 있다. 얼마전 '미션 임파서블:로그네이션'를 봤는데 여주인공(레베카 퍼거슨)이 아주 멋지더라. (충무로의 여배우들이 출연하려고 줄을 설 것 같다고 하자) 그런가. 그럼 나야 좋지. 

ebada@sbs.co.kr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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