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김지혜의 논픽션] '대호'의 비밀병기 '김대호 씨'를 소개합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2.16 11:38 조회 2,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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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 놈이 말이야. 촬영장에 선배들 다 나와 있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고, 카메라 돌아갈 때도 흰 포대기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질 않나. 게다가 언론시사회에도 안 왔길래 '거, 소속사가 어디요?' 했더만...캬아! 우리 김대호 씨가 연기를 참 잘하데~~"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 최민식이 후배 배우를 극찬하고 나섰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신예의 등장이란다. 몸값고 비싸고 싹수도 없지만, 선배를 씹어먹을 존재감으로 영화를 빛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칭찬했다.

최민식이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 제작 사나이 픽처스)의 타이틀롤을 신인 배우에게 양보했다. 그 배우의 이름은 김대호. 사람이 아니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로 불렸던 지리산 산군이다.  

김대호 씨는 몸무게 400kg, 길이 3m 80cm. 전 세계 호랑이 중 가장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영화에 투입된 제작비 중 5분의 1에 가까운 지분을 흡수한 귀하신 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호는 100% CG로 완성한 캐릭터다. CG 작업의 소스로 촬영한 호랑이는 부산의 '삼정 더 파크'라는 동물원에 있는 시베리안 호랑이였다.

'대호'의 박민정 프로듀서는 "CG팀이 비디오 카메라나 스틸카메라를 수시로 들고 가서 호랑이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나갔다. 콘티를 보며 필요한 동작이나 호랑이의 습성과 버릇 등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에 촬영팀과 실제 영화용 카메라를 들고 가서 바람에 날리는 털의 움직임, 안광의 모습, 빛에 닿은 느낌들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했다"고 전했다.

대호

더불어 "실제 어느 각에서 호랑이를 잡았을 때 가장 멋있게 보이는지, 어느 각이 가장 이상하게 보이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도 확보했다. 이미 CG팀이 동물원에 가서 찍은 데이터를 기준으로 '대호'를 디자인하고 있었고, 여러 번 소스 촬영을 통해 그 데이터를 구체화해 나갔다"고 덧붙였다.

대호의 CG 작업은 '올드보이', '설국열차', '베를린', '암살' 등에 참여한 '포스 크리에이티브 파티'가 맡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포스'는 호랑이 CG를 만들어 본 전례가 없었다. 박훈정 감독은 그 이유 때문에 이 업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박훈정 감독은 "제작진 중에서도 호랑이가 나오는 영화를 찍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도 어차피 처음인데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호랑이 CG를 만든 경험이 있는 업체는 그 소스를 활용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 CG팀의 실력이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팀과 일하고 싶었다. 그게 포스였다"고 부연했다.

대호는 영화 시작 후 한 시간 동안 제대로된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지리산을 집어삼킬 듯한 포효 소리 때문이다. 대호의 목소리는 미국의 동물원에서 녹음해 온 진짜다. 고요한 숨소리부터 달릴 때의 신음소리, 적과 마주할 때의 우렁찬 포효소리까지 다양한 소스로 녹음해 와 영화의 적시적소에 배치했다.   

대호

'대호'는 중반 이후 김대호와 천만덕의 드라마로 전개된다. 대립관계인 것처럼 보였던 두 캐릭터는 동반자이고 나아가 운명공동체다. 서로를 닮은 두 캐릭터는 조선의 마지막 혼과 얼로서 상징적 역할을 한다. 

특히 현존하는 최고의 명배우 최민식과 호흡을 맞춘 CG 캐릭터의 기술적 만듦새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영혼까지 느껴지는 애잔한 눈빛이었다. 영화 후반부, 천만덕과 대치하는 대호의 눈빛 연기는 영화가 끝나고도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다.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촬영 내내 답답함과 불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 캐릭터를 대신해 더미나 모션 액터와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김대호 씨의 위용과 연기를 확인하고, 비로소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깊은 만족감과 쾌감이었다. 

"언론 시사 때 김대호 씨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반가웠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지난 6개월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연기를 했는데 대호의 모습이 그 상상과 별로 다르지 않아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야, 이제 됐다. 됐어!"를 외쳤다"     

지리산 산군 김대호 씨는 오늘(16일) 전국 스크린에 풀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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