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영화 핫 리뷰

[리뷰] 영화 '유스', 탐미주의 거장의 위대한 아름다움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2.23 11:25 조회 1,230
기사 인쇄하기
유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 파울로 소렌티노는 탐미주의 거장이라 불릴 만하다. 한편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압도적인 미장센, 화려한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조화 등으로 미학 연출의 정점을 보여왔다.

2008년 영화 '일 디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소렌티노 감독은 2014년 발표한 '그레이트 뷰티'로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BAFTA) 외국어 영화상을 석권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작 '유스'(Youth)는 소렌티노 감독만의 연출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동시에 삶에 대한 한층 깊어진 성찰로 큰 울림을 선사한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과거와 미래, 열정과 안주 등의 대비를 탐미적인 영상과 음악에 녹아냈다.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는 휴가를 위해 스위스의 고급 호텔을 찾는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노장 감독인 '믹'도 젊은 스태프들과 호텔에 머물고 있다. 새 영화 각본 작업에 매진하는 믹과 달리 의욕을 잃은 프레드는 산책과 마사지, 건강 체크 등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이때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표곡 '심플 송'(Simple song)을 연주해 달라는 특별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프레드는 자신의 비서이자 딸인 레나에게 더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유스

소렌티노 감독은 영국 여왕으로부터 연주를 부탁받은 지휘가자가 연주 목록을 논의하다가 결국 무대에 서는 것을 거절했다는 실제 사건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은퇴를 앞둔 지휘자(마이클 케인)와 유작을 준비하는 영화감독(하비 케이틀), 슬럼프에 빠진 젊은 스타(폴 다노)와 전설이 된 여배우(제인 폰다), 결혼 생활이 위기에 빠진 지휘자의 딸(레이첼 와이즈)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다. 이들은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낸다. 이미 자신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뤘고, 부와 여유까지 갖춘 인물들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공허함과 쓸쓸함을 품고 있다.

권태에 빠진 프레드와 왕성한 창작욕을 자랑하는 믹은 스위스의 전원을 걸으며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현재의 헛헛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호텔에 머물고 있는 타인을 관찰하며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를 느낀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 없이 인물간의 대화로 2시간을 채운다. 인물의 시선은 곧 카메라이며, 머릿속은 영화적 판타지로 이어진다. 삶의 희로애락을 겪은 노신사의 달관과 관조의 시선이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더불어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유스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 로마를 눈부시게 담은 바 있는 소렌티노는 이번 영화에서는 스위스의 풍광을 롱시퀀스로 잡으며 영화의 주요 요소로 활용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한, 그러나 어찌 보면 쓸쓸함을 한껏 머금고 있는 그곳은 인물들의 삶과 닮았다. 

올해로 82세가 된 마이클 케인은 "요즘은 배우로서 유작으로도 남겨도 좋을 만한 각본을 선택한다"는 말로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전했다. 사연은 달라도 고민은 닿아있을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가 얼마나 행복해했을지는 품격 있는 연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비 케이틀 역시 인상적이다. 마치 소렌티노 감독이 자신의 미래를 투영한 듯 보이는 믹은 창작자의 행복과 고통, 숙명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특히 후반부 전설의 여배우 브렌다 모렐로 등장하는 제인 폰다와의 연기 장면은 현실인지 실제일지 모를 강렬함으로 큰 인상을 남긴다. 실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배우 제인 폰다는 단 7분의 연기로도 보는 이들에게 전율을 안긴다. 

유스

음악 영화로도 훌륭한 작품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부터 뉴 웨이브 음악가 데이비드 번, 실력파 인디 밴드 '선 킬 문'(Sun kil moon)의 리더 마크 코즐렉 등의 아름다운 음악이 영화를 수놓는다.

프레드의 대표곡으로 등장하는 '심플 송'은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작곡가 데이비드 랑이 만든 창작 곡이다. 한국의 성악가 조수미가 등장해 직접 노래하며 특별한 엔딩 신을 만들어냈다. 이 곡은 내년 1월 10일 열리는 제73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 제목인 '유스'(Youth)는 문자 그대로 '젊음'만을 뜻하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니고 마음의 상태이다"라는 사무엘 울만의 명언처럼 생물학적 젊음이 아닌 정신의 젊음까지 포함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프레디와 믹은 나이 들었으나 늙지 않은 노년의 청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명배우들이 선사한 위대한 아름다움이다. 상영시간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6년 1월 7일 개봉.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