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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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논픽션] 디카프리오가 오스카에 5번 거절당한다 한들

김지혜 기자 작성 2015.12.29 10:23 조회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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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아마도 한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 여부에 가장 관심이 많은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한국 관객보다 언론이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기사마다 '오스카가 외면한 배우'라는 기구한 타이틀로 디카프리오의 수난사를 강조하고, '이번에는 받아야만 한다'는 바람을 아낌없이 투영한다.

디카프리오는 데뷔 이래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 부문에 총 4번 노미네이트 됐다. 1993년 '길버트 그레이프'(감독 라세 할스트롬)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첫 지명됐고, 2004년 '에비에이터'(감독 마틴 스콜세지),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감독 에드워드 즈윅), 2013년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감독 마틴 스콜세지)로 세 차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내년 2월에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로 5번째 오스카 트로피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번 거절당한 것이 이렇게 이슈화될 일일까. 디카프리오의 수상에 대한 관심은 다소 호들갑스럽게 보인다. 아카데미 시상식 87년사를 돌이켜볼 때 4수는 '고작'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만큼 역대급 고배의 주인공들이 많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명배우 피터 오툴은 무려 8번이나 남우주연상에 도전했으나 눈을 감을 때까지 오스카를 품에 안지 못했다.

폴 뉴먼은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 '컬러 오브 머니'로 8수 끝에 남우주연상 트로피에 키스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 알 파치노는 어떤가. 그 무수한 영화에서 대단한 열연을 펼치고도 7번째 도전 끝에야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에게 영광을 안긴 작품이 힘을 빼고 연기한 '여인의 향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대중들은 왜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이렇게까지 염원하고 있는 것일까. 디카프리오는 90년대 후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할리우드 최고 스타가 됐다. 당시 한국에서도 국내 스타에 견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레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행보였다. 디카프리오는 꽃미남 스타에 머물길 거부하고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한 도전과 노력을 마다치 않았다.

디카프리오의 명배우 성장기는 팬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비록 그 사이 꽃에 비유되던 외모는 빛을 잃었고,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후덕한 아저씨가 됐지만 말이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약 10여 년간 디카프리오의 안목(작품)과 성적(흥행)을 매겨보면 그는 평균 90점을 넘어서는 배우일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인연('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맺었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5편('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영화를 함께했으며, 총 세 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하지만 상이란 건 성과 누적의 결과물이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단 한 편의 작품으로 경쟁한다. 그래서 평생 90점 이상의 연기만을 보여준 배우도 단 한 번 100점짜리 연기를 한 배우를 이기지 못한다. 물론 아카데미 위원들이 육체를 혹사하거나 모사에 가까운 빙의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경향 탓도 있다. 

좀 더 냉정하게 이야기해 보자.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도전사에 있어 땅을 치고 아깝다 할 만한 결과가 있었는지.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에 따른 결과로서 오스카를 가져갔던 경쟁자 제이미 폭스('레이'), 포레스트 휘태거('라스트 킹'), 매튜 매커너히('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는 디카프리오보다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만약 지난 세 번의 기회에서 디카프리오가 수상을 했더라면 그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아카데미가 시상식의 이슈와 흥행 때문이라도 상을 주지 않고 레오를 영원히 고통받게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떨까. 매번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고, 뜻밖의 변신을 하고, 숙련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된다면 상이란 건 품에 안지 않아도 배우의 성장과 발전에 좋은 촉매제가 된다.  

디카프리오는 공개적으로 오스카 트로피에 욕심을 드러낸 적 없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꾸준히 연기를 하고, 제작을 하며, 환경 운동에도 앞장선다.

팬들에게는 90년대를 풍미했던 꽃미남 스타가 불혹에 접어들어 매해 가장 뛰어난 연기를 하는 배우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디카프리오는 반드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을 것이다. 다만 그 언젠가가 내년일지 내후년일지는 알 수 없다. 그건 투표권을 쥐고 있는 아카데미 위원들만 알 일이다. 수상 여부보다 행복한 건 그의 재밌는 영화와 흥미로운 연기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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