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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동주', 시와 영화로 쓴 두 청춘의 자화상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2.04 14:09 조회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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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는 20세기 초 시집의 첫 장처럼 세로로 쓴 오프닝 크레딧으로 문을 연다. 크레딧에 이어지는 흑백의 영상에 두 청년의 모습이 멀찌감치 잡힌다.

조용한 데다 수줍음 가득한 청년 동주(강하늘)는 시인을 꿈꾸는 문학도다. 몽규(박정민)는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는 청년 열사다. 두 사람은 친척이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이들의 꿈을 불투명한 외침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시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두 사람은 빼앗긴 조국의 언저리(용정)에서 청년기를 보낸다.

윤동주,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일 것이다. 대표작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은 교과서에도 수록돼 널리 사랑받았다. 길지 않은 창작기에 인간의 삶과 자아를 사색하고, 일제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시에 담았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의 간추린 28년이다.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 제작(주)루스이소니도스)는 인간 윤동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 영화다. 그의 삶과 꿈, 영혼과 정신을 지배했던 모든 것을 그가 써내려간 시, 그와 함께했던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담아냈다.

영화 동주

그리고 한 인물을 더 조명한다. 영화가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다시피 한 송몽규라는 독립운동가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힌 한 열사의 뜨거운 삶도 윤동주 못지않은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는 영화의 핵심이다. 송몽규는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으나 시인 윤동주가 완성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동갑내기로 태어나 동시기에 세상을 등졌던 두 청년은 삶 내내 경쟁하며 의지했다.

송몽규는 윤동주에겐 넘어야 할 산이자, 열등감과 질투의 주체였다. 영화는 엘리트 천재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윤동주의 이런 그늘도 포착한다. 그도 우리와 같은 나약한 인간이었다고 말하듯 말이다. 

'동주'는 문학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윤동주라는 인물의 삶의 여백을 고인이 남긴 시를 통해 풍성하게 채워내고 있다. 사건의 인과관계 아래 스며든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들은 강하늘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그 시구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때로는 아리다. 분명 영화를 보고 있으나, 시를 읽고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 동주

'동주'는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시인이지만, 영화에서 단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윤동주의 삶을 영상화시켰다. 시대의 비극을 기반한 작품이지만, 시대의 아픔보다 더 크게 와닿는 것은 두 청년의 꿈과 정신이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어떠한 시대에서 누구와 같이 시대를 이겨내며 이 땅에 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영화로 담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의 힘은 문학적인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각본을 쓴 신연식 감독은 영화 '러시안 소설'(2013)을 통해 문학을 영화에 주입하는 놀라운 마법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문학적 허구 세계를 보다 유려하게 펼쳤다.

두 청춘 배우의 얼굴과 연기도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영화 '파수꾼'(2011)을 통해 주목받았던 박정민은 비로소 자신의 20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났다. 나라의 독립과 사상을 부르짖은 송몽규의 영혼을 그만의 연기로 보여준다. 

타이틀롤을 맡은 강하늘은 정적인 데다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지는 문학도를 형상화했다. 완성형의 연기라고는 볼 수 없지만, 미완의 청춘 그대로의 모습이다. 특히 엔딩신의 묵직함과 여운은 강하늘의 눈빛과 목소리로 만들어 낸 명장면이다.

영화의 가제는 '시인'이었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살아서는 시인이 되지 못했던 어떤 청년의 꿈과 고뇌에 관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동주'는 불안하되 불온하지 않았던 두 청춘의 자화상이다. 흑백의 영상 아래, 윤동주와 송몽규의 뜨거웠던 삶이 아름답게 스며들었다. 그의 시처럼. 상영시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월 18일.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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