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영화번역의 신세계] '데드풀' 황석희 번역가가 말하는 '좋은 번역'이란? (인터뷰②)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3.04 09:46 조회 4,751
기사 인쇄하기
데드풀 번역가 황석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황석희 영화번역가는 트위터에 자신을 '자막 깎는 동네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의 밑천은 영어를 바탕으로 하는 '세상의 모든 영화', 작업실은 '일산 우리 집'이다.

2013년 '웜바디스'부터 본격적인 영화 번역을 시작한 그는 '월플라워', '레드2', '나우유씨미', 와일드', '노예12년', '아메리칸 허슬', '프란시스 하', '아메리칸 셰프', '인사이드 르윈', '폭스캐처', '맥베스', '시카리오', '캐롤', '사울의 아들', '스포트라이트', '데드풀' 등을 작업했다.

최근 2년 사이 그가 맡은 영화 중엔 유독 수작이 많았다.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수놓았던 영화들이 그의 손을 거쳐 국내 관객들과 만났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스포트라이트'와 '사울의 아들'은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첫 히어로 무비인 '데드풀'은 국내 박스오피스를 장기집권하며 현재까지 290만 관객을 모았다. 이처럼 작품성과 오락성이 돋보이는 영화를 넘나들고, 장르와 형식이 광범위한 작품을 왔다 갔다 하는 폭넓은 작품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황석희 번역가는 2008년부터 번역 후기를 기록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 번역하는 남자'라는 이름의 블로그에는 본인이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보람, 고충을 전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몇몇 글에선 "대사가 너무 많아 배우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쓴 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대사가 있었다"와 귀여운(?) 투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투정의 끝엔 "연출자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번역가가 자의적인 해석을 들이미는 건 오만하고 위험하다",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가는 충실한 전달자다"와 같은 전문 번역가로서의 철학과 소신이 담겨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미국 버라이어티쇼 번역부터 시작해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로 이어진 황석희 번역가의 10년 여정을 통해 영상 번역의 세계를 좀 더 들여다봤다.

데드풀 번역가 황석희

Q. 영상 번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대학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했다. 동기 대부분 임용고시를 준비했는데 공부에 오래 매달릴 자신도 없고, 교사라는 직업이 잘 맞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즈음 책(소설)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학년 때부터 각종 서류와 계약서 등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영상 번역을 하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 버라이어티쇼를 비디오 테이프로 받아서 번역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후 내셔널지오그래피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번역을 1년 반 정도 했고, 미국 드라마 번역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Q. '밴드 오브 브라더스', '24', '왕좌의 게임', '뉴스룸', '더 퍼시픽' , '로앤오더' 등 인기 미드를 번역했다. 드라마를 하다가 영화 번역으로 방향을 튼 이유가 궁금하다.

A. 아마도 많은 영상번역가가 영화 번역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대단한 부나 명성이 쌓이는 건 아니지만, 내가 번역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큰 의미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영화로 넘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업계에 자리 잡고 계신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Q. 진입이 어려웠기 때문에 첫 영화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것 같다.

A. 에이미 아담스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선샤인 크리닝'(2009년)이라는 작품이었다. 소규모 개봉 영화였지만 운이 좋아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 이후 4년간 기회가 없었다.

웜바디스

Q. 그렇다면 4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주어진 두 번째 영화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A. 두 번째 영화는 '웜바디스'였는데 첫 작품을 했던 곳에서 수입했었다. 그런데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 회사 실무자가 '뉴스룸' 등 미드 번역을 한 내 필모그래피를 보고 부사장에게 추천했다더라. '웜바디스'가 당시 예상외의 흥행을 하면서 번역에 대한 호평이 꽤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영화 번역을 하고 있다.

Q. 케이블 번역과 개봉 영화 번역의 차이점을 꼽자면?

A. 케이블과 개봉관 번역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하면 케이블보다 조금 더 자유로운 표현 사용이 가능한 것, 번역가의 번역을 더 존중해 주는 분위기 이렇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케이블의 경우 번역회사에서 감수하면서 번역을 임의로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Q. 기자도 기사 보도 전 데스킹의 과정을 거친다. 영화 번역도 그런 과정이 있을 것 같다. 검수 단계에서 수입사나 직배사는 어느 정도 관여하나?

A.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을 허용하느냐는 회사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직배사보다는 국내 수입사와 일을 많이 했다. 로컬 회사들은 시를 쓰는 것처럼 응축해서 번역하는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체로 작가의 스타일을 인정해 주는 편이다. 직배사의 경우 난 '20세기 폭스코리아'하고만 일을 했는데 폭스는 문장 안에서 뜻이 다 전달되길 원하는 편이다. 최근에 작업한 '데드풀'의 경우 너무 의역하거나 한국화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서 편하게 했다. 결과물에도 별말이 없어서 오히려 스스로 '이게 극장에 나가도 되나' 염려했었다.

Q. '밴드 오브 브라더스'(전쟁), '시카리오'(범죄), '스포트라이트'(언론) 등 전문 분야를 다룬 작품을 많이 번역했다. 생소한 분야를 그린 영화를 작업할 경우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A. 번역가도 열심히 공부해야 있어 보이는 자막을 쓸 수 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영화를 작업할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관련 지식을 공부해 가면서 한다. 일례로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 할 때 지인 중에 박격포 부대에 근무하는 육군 중사가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긴 했지만 포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련 분야의 용어나 지식을 상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최근에 작업을 마친 '스포트라이트'의 경우 기자 2분, 변호사 1분를 달달 볶아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또 '사울의 아들'의 경우 헝가리어, 독어, 유디쉬까지 3개 국어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유대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다행히 지인 중에 10개 국어를 하는 언어학 박사분이 있다. 역시 큰 도움을 받았다. 

Q. 그렇게 해서 쌓인 전문지식이나 상식이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A. 작업이 끝나면 머리 속이 백지가 된다는 게 문제다. 정형돈 씨가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 '사기꾼 증후군'(모두가 인정하는 성공을 거뒀어도 혹시라도 실패해서 자신의 결점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진정한 내가 아닌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증상)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크게 공감했다. 나도 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바닥이 들어날까봐 늘 두려워한다. 그래서 인풋에 신경을 쓴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고, 문화에 대한 소양도 키우려고 하고, SNS를 통한 소통도 열심히 한다.

스포트라이트

Q. 지난해 작업한 '맥베스'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자체가 원작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 작품이라 문어체 대사를 번역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희곡도 세 가지 번역본으로 읽고 작업했다고 들었다.

A. 문학 원작의 영화인 경우,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자는 주의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경우고, '캐롤' 역시 패트리샤 하이 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이라는 원작이 있다. 작가만의 문체나 색깔을 내 언어로 덮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결정적인 대사를 번역할 때는 최대한 작가의 언어를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어떤 뉘앙스의 표현을 썼을 텐데 그걸 멋대로 예쁘게 포장하는 건 아니다 싶어서다.

Q. 번역을 하는 데 있어 '이런 건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정해둔 원칙같은 게 있다면?

A. 나는 인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쓰려고 하는 편이지만 '덤 애스'(Dumbass), '이디엇'(Idiot) 같은 욕을 해도 '병신'으로 번역하진 않는다. 그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이기 때문이다. 그 단어가 아니라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 젠더,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를 다루는 영화를 작업할 때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거나 실례가 되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Q.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표작으로 내놓기 손색없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꼽자면?

A. 없다. 두 번, 세 번 봐도 늘 아쉽다. 이미 개봉을 한 작품의 경우 정말 마음에 안 들 땐 블루레이 출시사에 전화해서 "다시 좀 주세요. 제가 공짜로 봐드릴게요"라고 하면서 수정하기도 한다. '월플라워'가 그렇게 해서 블루레이가 나왔고, 곧 나올 '시카리오'도 손을 봤다. 관객 입장에서는 훅 지나갈 대사도 "아, 좀 더 예쁘게, 매끄럽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시카리오

Q. '예쁜 자막?' 그건 어떤 의미인가?

A. 극장 자막은 가독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좀 헐렁하게 하는 편이다. 반대로 티비는 사전 수준으로 엄청나게 지킨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예쁘다.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다 보면 글자간 간격이 넓어지고 전체적인 자막 길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영화 자막은 두 줄 이상 넘어가면 안 된다' 같은 철칙이 있었는데 요즘 관객은 자막이 길어도 빨리 읽는다. 그럼에도 자막을 좀 더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으로 만들기 위해서 번역에서도 신경을 쓴다. 

Q. 그렇다면 '좋은 번역'이라는 건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A. 연출자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해서 대사와 장면의 의미를 온전히,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Q. 번역 후기와 영화 이야기를 남기는 블로그(http://subtitler.net)를 운영하고 있다. 개봉영화 번역 후기를 올리면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더라. 

A. 묵묵히 일하는 게 프로지만 때론 "저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했습니다"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무엇보다 관객들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번역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즐겁다. 때때로 지적도 하고 욕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소통 창구를 열어놓은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합리적 비판은 늘 환영하고 수용하려고 한다.

Q. 블로그를 통해 영화번역가 지망생에게 많은 연락이 온다고 들었다. 어떤 조언들을 해주나?

A. 고등학생이나 대학에 갓 들어간 학생들이 연락을 많이 해오는 편이다. 내가 대단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 섣불리 하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전 학벌도 변변찮고, 유학 갈 돈도 없고, 인맥도 없어요"라고 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작기는 하다고 현실적으로 말해준다. 나도 국내파에 인맥도 없었지만 하나씩 뚫어나갔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 영화번역가의 삶도 삶이지만 프리랜서의 삶을 감수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프리랜서로 산다는 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기회를 운이라고도 하는데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것도 실력이다. 그 기회를 잡고자 하는 뻔뻔함도 필요하다. 더불어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끈기도 중요하다.

데드풀 번역가 황석희

Q. 영문 번역을 잘하기 위한 비결이 있다면 팁을 좀 알려달라.

A.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잘하지 못해서 번역을 잘하는 비결을 말씀드릴 자격은 안 된다. 대신 도움이 되는 것들은 말씀드릴 수 있다. 읽기와 쓰기, 간단히 말해서 이 둘이다. 무조건 인풋이 많아야 하고 그걸 자기 글로 풀어낼 줄 아는 문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국어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또 나의 경우 이 일을 하고 있는 번역가들의 자막을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고 분석하고 연구한다. 가장 좋은 교보재기 때문이다.

Q. 아내(케이블 드라마 번역)도 같은 일을 한다고 들었다. 두 분 다 집에서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평일 사무실 풍경이 궁금하다.

A. 작은 집이지만, 방이 3개다. 하나는 나의 작업실 또 다른 하나는 아내의 작업실이다. 일할 땐 각자의 방에서 따로 하고 대화는 인터넷 메신저로만 나눈다. 일하다가 피곤하면 "여보, 우리 커피 한잔 할까?"하면 거실에 모이는 식이다. 아내이기 전에 신뢰하는 업계 동료라 일에 관한한 서로 가장 먼저 상의하고, 가장 많은 의견을 교환한다.

Q. 이 직업에 대한 다양한 명칭이 있다. 어떻게 부르는 게 맞을까?

A. 개봉 영화를 번역하기 전에는 "내 직업을 뭐라 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도 했었다. 업계에 있는 우리끼리는 통칭해서 '영상 번역 작가'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서브타이틀러'(Subtitler) 혹은 '필름 트랜스레이터'(Film Translator)라고도 한다. 나의 경우 해외에는 '서브타이틀러'라고 하고 국내에서는 '영화번역가'라고 소개한다.

인터뷰를 마친 황석희 번역가는 "난 영화 뒤에 숨어 있어야 할 사람인데 이렇게 전면으로 나서서 인터뷰를 하는 게 조금 민망하다"고 말했다.

"'데드풀'에서 웨이드가 암으로 쓰러지기 전에 "인생은 괴로움의 연속이고, 행복은 짧은 광고 같다"는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사다. 번역가라는 직업은 언급이 안 되는 게 일반적이고, 욕을 먹는 게 다반사다. 잠시 관객들의 호평을 만끽했지만 들뜨지 않고, 금방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다시 영화 뒤에서 일을 해야지"

이날 그가 건넨 명함은 한 폭의 스크린처럼 흑백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 등장하는 크레딧처럼 하단에 '세상을 번역하다' 영화번역작가 황석희라고 쓰여 있었다. 직접 디자인 했다는 그 명함은 번역가 자신을 가장 명확하게 알리는 자기소개서 같았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