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영화 스크린 현장

[영화 덕후의 놀이터①] 익스트림 무비를 아십니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4.08 12:46 조회 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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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무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데 있어 커뮤니티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는 데서 오는 쾌감, 공통된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재미다.

게임 덕후에겐 '루리웹', 카메라 덕후에겐 'SLR 클럽', 자동차 덕후에겐 '보배드림', 유머 덕후에겐 '오늘의 유머'라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영화 덕후는 어디에서 모일까. '익스트림 무비'(Extreme movie, 이하 '익무')에서 논다. 

'익스트림 무비'는 영화 덕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르 마니아들이 집결한 공간이다. 2007년부터 시작한 이 커뮤니티는 현재 수천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회원 수보다는 활성화 지수가 높은 커뮤니티로 영화 마니아와 영화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관람이 보편적 취미활동이 됐고, 너도나도 영화광을 자처하는 문화 사회에서 영화 커뮤니티의 힘은 무엇일까. 현재 국내 최대 영화 커뮤니티로 주목받고 있는 익스트림 무비를 통해 그 답을 찾아봤다.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김종철

◆ 개인 홈페이지에서 출발…No.1 영화 커뮤니티로 도약  

익스트림 무비의 시작은 김종철 편집장의 개인 홈페이지였다. 공포영화 전문가인 김종철 편집장은 1998년 '호러존'이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후 '호러 익스프레스'를 이름을 한차례 바꿨고, '익스트림 무비'라는 블로그 기반의 웹진으로 발전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커뮤니티로 도약한 것은 2007년부터다.

김종철 편집장은 "호러의 대중화를 위해 만든 사이트였지만, 특정 장르의 영화만 다루다 보니 활성화되지 않았다. 블로그가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씨네21' 출신의 평론가 및 기자들과 의기투합해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웹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독자들이 일방적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형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웹진 운영 중심의 블로그를 폐쇄하고 커뮤니티 형태의 독자적 사이트를 구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익스트림 무비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즐거운 영화 놀이터'다. 홈페이지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익무인', 사이트의 글을 읽고 쓰며, 각종 정보를 게재하는 행위를 '익무질'이라고 칭한다. 온종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 걱정을 하며, 대기업 영화관을 씹는다. 이 공간은 마니아를 한심하게 보는 사회의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영화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며 식견을 쌓을 수 있다. 그야말로 익스트림한 영화 세계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이 세계에는 질서와 규칙 그리고 예의가 존재한다. 김종철 편집장은 ▲ 반말 금지 ▲ 게시판, 댓글 수정 삭제 제한 ▲ 운영자 경고 무시시 제재 ▲ 홍보 성격의 게시글 자재 요망 ▲ 게시판 내 작업 금지 ▲ 섹시 사진 게재는 가능 섹드립은 불허 등 무려 16가지의 이용 매뉴얼을 정해 놓았다.

질서와 규칙은 건강한 커뮤니티 환경 조성을 위한 편집장의 오랜 고민에서 나온 결과다. 김종철 편집장은 "유명 커뮤니티들이 크고 작은 문제로 패망에 이르는 사례를 많이 봤다. 대형 사이트에서 문제가 생기면 작아 보이지만, 소형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온라인 내에서는 깔끔한 매너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소신을 전했다.

익무

◆ 정보의 바다·토론의 장…부지런한 영화광의 힘

익무는 정보의 바다인 동시에 토론의 장이다. 커뮤니티의 핵심적 기능과 역할을 하는 주도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익무인들이다. 90년대 성행했던 영화 사이트가 몰락한 것은 유저들의 지속적 관심을 얻지 못해서였다. 현재 유일무이하게 성장세에 있는 익무는 영화광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제대로 깔았다.

익무에는 하루 수백 건의 영화 관련 정보가 게재된다. 충무로와 할리우드 소식은 기본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인도, 호주 등 영화 산업이 구축된 모든 나라의 뉴스가 유통되고 소비된다.

영화 전문 커뮤니티답게 개봉 영화에 대한 신랄한 평가도 볼 수 있다. 대작이거나 화제작일수록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익무질이 집요하게 이어진다.

최근 익무를 휩쓸고 간 광풍은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에 대한 찬반양론이었다. 평단과 관객들이 융단폭격에 가까운 혹평을 내린 것과 달리 익무에서는 호평을 담은 리뷰글도 적잖이 만나볼 수 있다.

김종철 편집장은 "흥미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론 영화에 대한 평가가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것보다는 갈리는 것을 좋아한다. 각자의 의견에 대한 토론은 벌일 수 있지만 "넌 영화를 몰라"라는 식의 공격은 지양하길 바란다. 나는 재밌게 봤지만, 다른 사람을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는 게 영화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익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익무의 최대 장점이다. 비평이 힘을 잃고, 토론이 줄어든 시대에 공통된 이슈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흥미로운 풍경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놀이라는 것이다. 

익무질에 따른 유일한 혜택은 사이트 내 활동지수인 포인트다. 김종철 편집장은 "글이나 동영상을 게재하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 댓글도 포인트를 주지만 콘텐츠 게재에 비해 포인트가 낮다. 클릭만 하게 되면 포인트가 되레 깎인다. 하루에 여러 차례 접속을 한다하더라도 관찰만 하는 건 레벨을 올릴 수 없다. 이는 익무를 즐기게끔 유도를 하기 위함이다"라고 전했다.

현재 익무내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등급을 자랑하는 회원은 다크맨(김종철 편집장)으로 활동지수는 99다. 일반 유저는 98까지 올릴 수 있지만, 90까지 근접한 유저는 없다. 0에서 10까지 올라오기는 쉽지만, 50에서 51이 되려면 엄청난 활동을 필요로 한다는 게 운영진의 말이다.

익무

◆ 감독·배우·마케터도 찾아본다 

개봉 영화 시사회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종영 후 SNS에 접속하는 기자, 영화인, 마케터들의 모습이다. 아마도 '익스트림 무비'는 커뮤니티 중에서 가장 많은 영화 정보를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익스트림 무비는 홈페이지 외에도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익무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어떨까? 한 영화홍보사 관계자는 "국내에도 로튼 토마토와 같은 사이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고무적이다. 익무는 다소 장르 편향적인 면이 있어서 장르 영화나 마블이나 DC 등의 대작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을 때 매우 많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국외 직배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트"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다른 영화관계자는 "장르영화나 마니아 영화에 대해서는 평가가 관대한 편인데 대중적 코드의 상업영화에 대해서는 조금 잣대가 엄격한 편이다. 그러나 그만큼 영화를 보는 시각이 냉정하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지난해 데뷔한 한 영화감독은 "언론시사회 이후 기자들의 단평을 모은 게시글을 통해 처음 익무를 접하게 됐다. 이후 내 영화에 대한 회원들의 평가는 물론이고, 다른 개봉 영화에 대한 가감없는 비평을 접하며 사이트에 자주 접속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정보의 집결력이 놀라운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배급사와 홍보사들은 '익무'를 개봉 영화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개봉 영화에 대한 예비 평가 자리인 일반 시사회는 물론, 투자배급사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는 모니터 시사회에도 익무 회원들을 대거 초청한다.   

'익무'는 커뮤니티로 정체성을 확립한 상태지만, 초기 모델처럼 웹진과 커뮤니티를 결합한 폭넓은 그림도 그리고 있다. 김종철 편집장은 "웹진 부활에 대해서 운영진과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면서 "평론이 힘을 잃고, 매체력도 떨어지고 있지만 비평의 역할과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웹진 부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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