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영화 핫 리뷰

[리뷰] '곡성'이 던진 복잡다단한 미끼…나홍진의 괴작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5.04 11:23 조회 2,078
기사 인쇄하기
곡성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 제작 사이드 미러,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이 나홍진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필모그래피 중 가장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이 영화는 걸작이라는 표현보다는 괴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무려 6년 만이다. '추격자'(2007), '황해'(2010)를 통해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확고히 만들어 낸 나홍진 감독이 또 한 편의 어마어마한 작품을 완성했다. 이번엔 '곡성'이라는 복잡다단한 미끼를 관객에게 던진다.

곡성이라는 실제 지명을 사용한 만큼 공간적 배경으로서 곡성(谷城)이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더불어 감독이 제목에 담은 의미는 지명 그 자체를 넘어 '상을 당한 이들이 내는 곡소리'(哭聲)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제목이 함축하는 의미는 영화를 보고 나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며 시작한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누가복음 24장 37~39절)

곡성

곡성의 한 마을,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 의문의 연쇄 사건들이 벌어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천우희)을 만나면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확신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파하고 다급해진 종구는 외지인을 직접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급기야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여 굿을 한다.

나홍진 감독의 대표작 '추격자'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영화였다면, '곡성'은 초반과 중·후반의 완급 조절을 통해 긴장감을 쌓아간다. 외지인을 향한 토착민의 의심, 그를 둘러싼 소문의 확산,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현상과 사건들이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2시간 36분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곡성'은 의외로 초반 1시간 동안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마을의 공기와 외지인의 음산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종구조차도 이 시간 안에서는 관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다단한 영화다. 소문과 진실, 단죄와 원죄의 테마 아래 초자연적인 현상과 메타포를 동원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마을 그리고 범위를 좁혀 한 가족에 일어난 뜻밖의 재앙은 원인을 알 수 없고, 불행을 마주한 당사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이다. 

곡성

이 과정에서 종구는 영험한 기운으로라도 딸의 불행을 막고자 안간힘을 쓴다. 주변에 도사리는 불가사의한 공포와 덮치기 직전의 악에 맞써 무당(샤머니즘), 부제(기독교)와 함께 악에 대항한다.

퇴마의 사명을 띠고 마을에 당도한 무당 일광은 종구에게 "절대 현혹되지 마소"라는 말로 초자연적 현상과 그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에 대해 경고한다.

이 말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중반 이후, 앞선 사건들의 실타래가 풀어지면서 보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추리와 해석을 해나가게 된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주길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아마도 개봉 이후 관객의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나홍진 감독은 "불행은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무관한 이유로도 피해자를 찾아가더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유로 피해를 당했는지 원인을 찾다 보니 영화가 다루는 범주가 현실에 국한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곡성'은 혼재된 세계관이 사방으로 뻗쳐 있는 영화다. 이야기의 앞뒤 논리, 인물의 행동의 개연성을 따지다 보면 허점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인생에서 일어난 불행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감독의 말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논리적인 방어벽을 쳐주는 감이 없잖다. 그러나 그럴듯한 거짓말이 되어야 할 영화라는 예술에서 논리적 비약이 이야기의 약점이 된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곡성

나홍진 감독은 이야기의 빈틈을 장르적 문법으로 보완한다. 그는 독창적인 스토리 텔러인 동시에 뛰어난 연출자이기도 하다. 신을 조련하고 무드를 조성하는 데 있어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홍경표 촬영 감독은 곡성을 원경 혹은 부감으로 잡는 컷과 마을 공간 곳곳을 깊숙이 침투하는 듯한 컷의 대비를 통해 공간에 대한 이질감과 신비감을 더했다. 홍경표 감독은 공간이 영화의 중요 축을 담당해 왔던 나홍진 감독의 특징을 제대로 간파한 것은 물론, 보다 확고한 철학으로 곡성이라는 세계를 넓고 깊게 확장했다. 

더불어 악마적 재능의 감독을 빛내는 배우들도 영화의 파괴력을 높인다. 곽도원은 평범한 경찰에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영화의 핵심인물을 풍부한 감정으로 보여준다. 영화 시작 후 1시간 30여분이 지난 후에나 등장하는 황정민은 광기 어린 무당 연기로 중반 이후 영화의 전환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쿠니무라 준은 국내 영화에 출연한 외국인 배우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천우희 역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으로 상징적 역할을 해냈다.

곡성

영화는 후반 한 시간 내내 휘몰아친다. 샤머니즘과 엑소시즘, 적그리스도 세계관이 병합된 듯한 극단적 클라이맥스는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이다. 

특히 오프닝에 제시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결말로 보여지는 엔딩은 충격적이다. 이를 통해 나홍진 감독이 가진 어떤 세계관에 대한 공포와 경외감이 들 정도다. 이 영화의 기괴함은 근래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극단의 어떤 지점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 시나리오의 서두에 "불분명한 것엔 의혹이 따르고 그것의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고 적어놨다. 이 영화를 포괄하기에는 두루뭉술한 이 글귀는 인생의 예측 불가함, 인간의 무기력함을 아우르는 말 같기도 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56분, 개봉 5월 12일.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