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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배우 권재희의 고백 “저는 사형수의 딸입니다”

강경윤 기자 작성 2016.05.25 08:48 조회 1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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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희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배우 권재희의 붉어진 눈시울은 종종 눈물로 가득 찼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법은 없었다. 슬픔이 복받칠 땐 그녀는 더 세게 눈에 힘을 주었다. 편안한 분위기로 시작된 인터뷰였지만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비 오기 직전 내리깔린 안개보다 무거웠다. 권재희가 살아온 인생은 이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무거웠을 테다.

1980~90년대 배우로, MC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연예계 생활을 정리했던 권재희는 지난해 SBS '어머님은 내 며느리'에 이어 MBC 아침드라마 '좋은 사람'에 연속 출연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엄마도 자신만의 인생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조언을 듣고, 그녀는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3학기 째 전공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을 '엄마'로, 절반을 '배우'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최근의 삶은 두 이름의 평형이 잘 맞춰진 나날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40년 넘게 입을 굳게 다물었던 권재희는 공개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꺼냈다. 민주열사 권재혁. 역적이란 오명을 쓰고 1969년 서대문 형무소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존재. 거대한 산처럼 컸고, 가을하늘처럼 높고 평온했던 아버지는, 그녀가 7살 되던 해 사형 통지서 한 장을 남기고 가족 곁을 떠났다. 그리고 45년 만인 2014년, 권재혁 씨는 재심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아버지가 무죄판결을 받던 날, 대법원장이 '무죄'를 선고하자 오빠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는 정치적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형 제도를 폐지하라.'며 소리를 질렀어요. 두 팔을 청경 손에 잡힌 채 퇴장당했죠. 화장실로 달려가서 한 칸엔 언니, 한 칸에는 제가 들어가서 울었어요. 그건, 엉엉 소리가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어요. '나는 자유시민이다', '역적의 딸이 아니다' 소리를 쳤어요. 그동안 너무나 하고 싶던 말이었어요.”

권재희

어디서부터 그녀에게 얘기를 들어야 할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저희 아버지는 인자하셨고 잘생기셨어요. 저랑 화단에서 꽃을 가꿨고, 통닭을 구워서 함께 먹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커피를 내려서 설탕을 넣어 드시던 모습도 기억해요. 육사 교수셨기 때문에 저희 집으로 제자들이 많이 찾아왔거든요. 항상 집에서도 한복을 입고 위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으셨었어요. 저희에게는 멋진 아버지, 어머니에겐 그렇게 자상할 수 없는 최고의 남편이셨대요.”

권재희의 입가에는 7살 소녀 같은 미소가 퍼졌다. 그녀의 설명대로 권재혁 씨는 3.1 운동을 이끄는 등 항일운동 및 독립운동을 한 선친들의 삶을 빼닮아 애국심이 남다른 경제학자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권재혁 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에서 석사를, 오리건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귀국해 강단에 섰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이른바 남조선해방혁명당 사건의 우두머리로 지목됐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968년 수감됐다. 이듬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그해 11월 사형이 집행됐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중앙정보부가 권 씨 등을 최장 53일간 불법 구금하고 구타 등의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가족끼리 사과를 먹고 있는데 전보가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통지서였어요. 어머니랑 오빠, 언니는 오열했고 저는 손에 쥔 사과를 보면서 '지금 이걸 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슬픔의 깊이를 인식하지 못했어요. 아버지 무덤가 위를 제가 막 뛰어다니니까 주위 어른들이 '저걸 어떻게 하면 좋냐'고 읊조리던 것도 기억나요. 저에겐 이런 게 다 평생의 트라우마예요.”

권재희

이런 비통한 가정사를 가졌지만 권재희의 아픔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녀가 굳게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보다 비할 수 없는 굴곡을 겪은 어머니는 늘 자녀들에게 '나서지 말고 몸조심하라'고 당부를 했고 또 했다. 스무 살, 권재희가 미스롯데에 지원해 연예인이 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역적이라던 오명으로 옭아매던 그 당시의 연좌제 때문이었다.

“오빠가 해외유학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연좌제 대상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공무원, 선생님 등 평범한 직업은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거죠. 중학교 시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어요. 미스롯데는 그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배우가 된 뒤에는 오전에는 대학을 다녔고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연극 무대에 섰어요. 이후에는 공연 연습을 했고요. 치열하게 살았죠.”

학생운동으로 사회가 들썩이던 격변의 시절. 또래 친구들은 인기 탤런트가 된 그녀를 보고 '팔자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시대의식에 공감도 못하는 금수저' 정도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데뷔한 이후 수많은 드라마, 연극, 영화에서 주인공을 꿰찼으며 당시 톱스타들만 맡는다는 '화요일에 만나요', '대학가요제' 등 굵직한 프로그램의 여성 MC로 잘 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에겐 숨길 수 없는 아픔과 상처가 깊어졌다. 권재희는 당시 이름을 날리던 개그맨 이하원의 구애를 받아 부부가 됐고, 이후 외아들을 낳은 뒤 엄마의 자리에 충실하기 위해서 얼마간 연예계를 떠났다.

“해외 공연을 가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고 했는데 아이가 '사랑하면 같이 있어야지'라고 하는 거예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연예계 생활을 중단했어요. 아이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엄마로 지냈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성장한 아들이 특전사로 전역했거든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그녀는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권재희의 아들은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 듀크대에서 공공 정책을 전공하고 있다. “아들에게 가장 아쉬웠던 점이 '청년으로서 사회에 정당하게 분노를 할 줄 아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요. 아들이 점점 자신만의 소신을 갖고 사회 문제에도 열정과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엄마로서는 그런 부분이 참 다행이에요.”

아들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새로운 꿈도 꾸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전공하는 것도 그 이유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서 치유와 극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배우의 삶을 살고 있고, 또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난해부터 보육원과 청소년 쉼터에서 아이들과 교육 연극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되찾는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제 꿈이 있다면 예쁜 소파를 놓고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상담할 수 있는 놀이방을 만드는 거예요. 그 밑에 소극장이 있다면 더 완벽한 놀이터가 되겠죠?”

보통 사람들은 가늠하기 힘든 상처를 극복한 권재희 씨에게서 삶에 대한, 또 나라에 대한 강렬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녀에게 한 가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인터뷰 때문에 가정사가 알려질 경우, 혹시라도 올지도 모를 불이익이 걱정되진 않나요?' 그녀는 대답 대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권재희

“세월호의 엄마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에 간 적이 있어요. 밥을 시켜서 먹자고 했는데 아이들의 엄마들이 차마 밥을 넘기지 못했어요. 목이 막혀서 밥을 넘길 수가 없대요.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시간이 흐르면 나처럼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도 올 거야. 웃을 만큼 근력이 생기지 않으면 거대한 바위를 칠 수도 없어'라고요.(권재희의 눈시울은 또다시 붉어졌다.) 전 그 마음을 알아요. 그들의 상처를 알 수 있어요.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어요. 45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빠에 대해서도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담은 영화도 준비되고 있어요. 필요하다면 저도 출연할 거예요. 제가 그동안 배우로 살아와서 참 다행이죠. 마치 어떤 거대한 운명처럼요.”

kyak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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