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굿바이 싱글' 김태곤, 진짜 코미디를 아는 감독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6.28 09:50 조회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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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곤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계에는 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않았는데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있어요. 김태곤 감독은 전자죠"

배우 김혜수는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곤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더불어 "현장에서 유연하고 노련하면서도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연출을 한다"고 부연했다. 

독립영화 '독'과 '1999, 면회'로 주목받았던 김태곤 감독이 오는 29일 '굿바이 싱글'로 상업영화 신고식을 치른다. '굿바이 싱글'은 대한민국 톱스타 고주연(김혜수)이 진정한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임신을 계획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김태곤 감독은 연출을 했던 '1999, 면회'(2012)와 각본을 쓴 '족구왕'(2014)을 통해 청춘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웃음과 감동으로 보여준 바 있다. 독립영화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상업영화로의 진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굿바이 싱글'은 톱스타의 임신 스캔들이라는 다소 과장된 설정에도 특유의 유머 감각과 신파를 덜어낸 담백한 감동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김혜수와 마동석의 새로운 매력과 김현수라는 예비 스타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둔 김태곤 감독을 만났다.

김태곤

◆ "무거운 주제지만 어렵게 풀고 싶지 않았다"

'굿바이 싱글'의 소재는 미혼모와 대안 가족으로 집약할 수 있다. 상업영화 그것도 코미디라는 장르 아래서 풀기에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일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김태곤 감독은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시종일관 발랄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신동선 작가가 쓴 각본은 김태곤 감독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1년 가까이 시나리오를 다듬은 김태곤 감독은 "원작은 이야기가 다소 무거웠다. 미혼모라는 소재를 상업영화 안에서 풀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어서 코미디적 요소를 부각하고자 했다. 또한, 여성적 시각이 짙었던 시나리오에 남성적인 터치가 가해지면서 균형적인 시선을 견지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주제의 현실성을 높이는 취재도 필요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보는 이들의 공감 지수를 높이는 작업이었다.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눈높이 조준이 선행돼야 했다.  

"문제의식이나 사회적 장치에 대한 이야기보다 중요했던 건 보편적인 시선에서 이야기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일반적으로 가진 편견에서 출발해 그것을 깨주는 것이 필요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사생대회 신의 경우도 주연의 입을 빌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가진 편견에 대해 지적해야 보는 이들도 뜨끔해하고 되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것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캐릭터도 구축도 중요했다. 김혜수, 마동석이라는 색깔 뚜렷한 배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영화의 성패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김태곤 감독은 두 배우가 가진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의외성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지성미와 카리스마의 대명사인 김혜수는 어리숙한 사고뭉치 톱스타로, 남성미로 무장한 마동석은 속정 깊고 따뜻한 스타일리스트로 만들었다.

"의외성이 주는 호기심이 있는 것 같다. 똑 부러지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배우 김혜수에게 망가지는 모습 속에서 인간미를 발현하는 주연의 캐릭터를 이입했다. 마동석하면 남성성이 부각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는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만으로도 새롭겠다 싶더라. 두 배우 모두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킨다는 파괴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변신들이 자칫 설정밖에 없는 캐릭터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실제감이 중요했다.

김태곤감독

◆ 피 한 방울 안 섞인, '진짜 가족'의 이야기

두 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지만, 상업영화는 처음이었다. 김태곤 감독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세분화된 작업 시스템이 편했다고 촬영장을 회상했다.

"영화 만드는 일 자체는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똑같다. 다만 상업영화가 좀 더 편한 지점이 있었다. 독립영화는 감독이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자인 동시에 프로듀서 역할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업영화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 영역의 일을 수행한다. 물론 흥행에 대한 부담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책임감이 큰 만큼 페이도 다르고.(웃음)

배우의 중량감도 전작과는 달랐다. 김혜수와 마동석이라는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존재감의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김태곤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상호 간 신뢰를 쌓는 게 중요했다. 신뢰가 쌓이면 그때부턴 믿고 가는 거니까. 난 촬영을 앞두고 마음 졸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시나리오에 다 있고, 난 준비를 다 했어'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감독이 편해야 배우도, 스태프도 편하다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서일까. '굿바이 싱글'의 촬영현장은 물 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갔다.

굿바이싱글

"김혜수 씨는 워낙 많은 감독, 배우들과 작품을 해오신 분이다 보니 신인인 나로서는 '끌려가지는 않을까',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작업을 해보니 감독을 굉장히 신뢰하는 배우였다. 나의 판단이나 요구를 믿고 따라와 줬고 흡족하게 여겼다. 촬영 내내 톱니바퀴가 잘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마동석 씨는 대학 선배인 윤종빈 감독 때문에 친분이 있긴 했지만, 호흡을 맞춘 건 처음이었다. 주연의 캐릭터가 잘살려면 평구의 역할이 중요했다. 어찌 보면 평구가 관객의 시선을 대신해 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마동석 씨가 평구의 캐릭터를 잘 구축해 줬기 때문에 주연도 살고, 평구도 살았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해주셨다"

이 영화는 미혼모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가족을 이루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주연과 단지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조건부로 만났고, 정해진 기간만큼의 동거를 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유대감을 쌓아간다. 피가 섞인 가족도 애정으로 채워지기 힘든 세상에서 대안 가족의 긍정적 미래를 제시한다.

'굿바이 싱글'에게는 유독 '밥상 신'이 많다. 톱스타 주연이 자기 사람을 챙기는 방식은 손수 밥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이다. 영화를 닫는 마지막 시퀀스 역시 식사 장면이다. 김태곤 감독이 생각한 가족의 모습은 밥상 머리에 앉아 한 냄비에 숟가락을 집어넣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그런 풍경의 조화로움이 아니었을까.   

김태곤감독

◆ "웃음 속 페이소스"…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이유

김태곤 감독은 '굿바이 싱글'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코미디 영화를 질 낮게 보는 시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상업영화 데뷔작으로서 코미디 장르를 선택한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였다. 

하지만 김태곤 감독은 웃긴 영화를 만들되 우스운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확고한 연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가 쓰고 만들어 온 영화들은 대부분 코미디 장르의 영화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인간의 성장담이라는 것이다.

'1999, 면회'에서는 학창시절을 통과하고 성인이 된 세 친구의 1박 2일을 그렸고, '족구왕'에서는 군 제대 후 돌아온 대학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나가는 복학생의 고군분투기를 다뤘다. '굿바이 싱글'은 철부지 톱스타 주연이 중학생 미혼모 단지를 만나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다. 

이런 성장담에서 가벼운 웃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이면에 연민, 동정, 슬픔 등의 쌉싸름한 감정을 전달했다. 이른바 '페이소스'다. 김태곤 감독이 코미디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것도 이것과 닿아 있다. 

"특정 장르나 감독에 심취해서 영화를 시작한 게 아니라서 장르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가치를 더 크게 둔다. 그 외피가 공포, 스릴러, 멜로로 구분하는 것일 뿐 미학적인 부분에서는 강박감이 없다. 다만 유머라는 건 어떤 영화나 빠질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많이 나오거나 적게 나오는 것의 차이일 뿐. 그러나 코미디가 가장 어렵다.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련되게 유머를 사용하고,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도 즉각적으로 웃게 하는 것,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웃음 말이다" 

코미디 감각을 키우는 방법에 관해 묻자 그는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보는 거?"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어 "유머라는 감각은 어떠한 자리건 위치건 필요한 옵션 같다. 누군가와 술을 먹거나 밥을 먹을 때 항상 유쾌하길 바라지 진지한 분위기를 바라진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전달할 때도 필요하지만 유머러스하게 전하는 게 매우 훌륭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식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김태곤 감독이 이제 첫발을 뗐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구분 짓는 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엄연히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김태곤 감독은 첫 번째 관문을 안전하게 잘 넘었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김태곤 감독의 베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고, 베스트는 아직이다. 김태곤의 다음 작품을 주목한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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