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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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데몰리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6.30 15:48 조회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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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느 젊은 부부의 외출 길, 아내는 잔소리하고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무심하다. 활력 없는 대화가 이어지던 찰나 끔찍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다. 장례식 다음 날에도 태연하게 회사에 출근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낸다. 동료들은 수군거린다.

데이비스의 삶에 균열이 일어나는 발단은 사소하다. 아내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 날 밤, 초콜릿 자판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보낸다. 수취인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상황의 불합리함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느 날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이 편지를 읽었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대부분 사고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변화는 역시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상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엉망진창인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확실성에서 찾은 확실한 사실이다.

데몰리션

'데몰리션'(감독 장 마크 발레)은 자신을 파괴(Demolition)하고 재건(Rebuilding)해 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데이비스는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일종의 불치병인 고독와 허무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외면화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누군가 보기엔 풍요롭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삶, 스스로도 그렇다고 여기며 살았다. 데이비스의 편지는 진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상실과 상처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삶이 통째로 흔들릴 때 비로소 자신을 바로 보게 될 수도 있고, 잃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삶의 통찰이 있다고 위로한다. 

데이비스가 교감을 나누는 캐런과 크리스 역시 치유와 소통이 필요한 이들이다. 데이비스와 캐런은 연애 스파크가 아닌 소통과 교감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영화는 남과 여의 성적 관점에서 두 사람을 그리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두 사람의 소통을 그린다. 

또 캐런의 아들 크리스 역시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에 직면한 데이비스와 공통 분모를 갖는다. 세 사람은 다른 상황에 처했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들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중반까지 데이비스와 캐런의 편지를 통한 교감을 보여준다. 중반에 이르면 캐런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까지 관계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잔잔한 분위기로 인간의 고독을 이야기하던 영화는 파괴 행위에 집중하는 데이비스와 크리스의 모습을 통해 불안 상황을 탈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다. 데이비스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유리의 성과 같은 자신의 집을 깨부수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부서져야 비로소 새롭게 세워진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데몰리션

장 마크 발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4)과 '와일드'(2015)로 할리우드 일급 감독 대열에 올라섰다. 특히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감독이란 인물에 대한 좋은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관객을 향한 좋은 전달자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제이크 질렌할은 흥미로운 배우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블록버스터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 '조디악, '프리즈너스', '나이트 크롤러', '사우스 포' 등 다양한 작품을 선택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데몰리션'에서도 감정을 내면으로 침전시키거나 밖으로 분출하는 등 인물의 불안한 감정 변화를 유연하게 연기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마치 누군가의 장난과 같은 엉뚱한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면 크레딧 위로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이 흐른다. 무려 '안부의 말'(Warmest regards)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다. 개봉 7월 13일, 상영시간 100분, 청소년 관람불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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