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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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천상륙작전', 리암 니슨도 못 막은 한국 전쟁물의 퇴보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7.22 10:19 조회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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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의 짧지만 강렬한 이 외침은 60~70년대 반공교육의 기조였다. 그러나 21세기, 남과 북, 선과 악 이분법을 내세운 반공영화를 만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에 관한 이야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된다.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 속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성공확률이 지극히 낮은 이 작전은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돼야 한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운 첩보부대 대휘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국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임무에 나선다.

영화는 막전(幕前)에 집중한다. 실제 작전의 숨은 공신인 해군 첩보부대와 켈로부대의 비화와 활약상을 조명한다. 첩보전 형식으로 방향을 잡고 초반부터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장학수는 전면에 등장한다. 소련에서 유학까지 한 공산주의자였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새롭게 거듭난다. 북한군 인천 방어 사령관 림계진은 장학수와 대립각을 세우며 시종일관 분노를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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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남과 북, 선과 악을 대변한다. 림계진은 공산주의의 당위를 설파하고, 이정재는 트라우마인 가족사를 밝히며 공산주의의 모순을 말한다. 마치 교과서에 묘사된 상황극 대사 같다. 

170억이라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이 영화는 특히 캐스팅에 힘을 실었다. 이정재, 이범수, 정준호, 진세연 등이 출연하지만 역시나 관객의 관심은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일 것이다. 리암 니슨이 전세를 바꾼 영웅 맥아더로 출연한다.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연기파 배우, '테이큰' 시리즈를 통해 액션 스타로 거듭난 할리우드 명배우다.

리암 리슨은 전, 중, 후반부를 걸쳐 약 20여 분 등장한다. 분량보다 큰 문제는 존재감이다. 의미심장한 오프닝으로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월미도을 바라보며 명언집에서나 볼 법한 대사들을 읊는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인물임은 틀림없지만, 미국과 한국에서의 평가가 사뭇 나뉜다. 리암 리슨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맥아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고, 인물에 대해 깊이 있게 다가가고자 했다.그러나 평면적이고 납작한 묘사 때문에 맥아더의 지략과 고뇌 등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캐스팅에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 무색하게 빼어난 배우를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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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리암 니슨이 출연하는 장면은 세트 위주이며, 야외 장면은 CG 처리한 듯 따로 논다. 이정재와는 단 한 신을 촬영했을 뿐 두 번째 장면은 합성으로 완성돼 조악함을 드러낸다.

6.25의 전세를 바꾼 작전으로 알려진 인천상륙작전 역시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낳는 등 그 자체로 다양한 영화적 논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는 70년대 전쟁물에서 볼법한 반공 메시지, 애국심 강조, 맥아더 찬양에 그치고 만다. 즉, 이 영화에는 카메라는 있지만, 작가적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물로서의 스펙터클 역시 부각되지 않는다. 세트에서 촬영된 시가전이 그나마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라 볼 수 있는데 주인공의 총알을 피해다니는 비현실적 설정과 주변 인물의 희생과 죽음에 대한 과도한 감상적 접근이 오히려 영화를 한발 떨어져 보게 만든다.

뜬금없는 카메오들의 등장과 활약도 있다. 박성웅, 김선아, 추성훈, 심은하의 두 딸 등이다. 이들은 캐릭터에 맞춰 등장한다기보다는 이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인다. 앞뒤 맥락 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추성훈이 대표적인 예다.

실화나 실존인물은 창작이나 가공으로 획득할 수 없는 그만의 힘이 있다. 접근이나 묘사에 있어 무게감과 책임감도 따른다. 'X-Ray' 작전과 켈로부대의 비화를 조명하고자 한 의도는 좋았다. 진실을 알리고, 역사의 뒤안길을 조명하는 데 있어 영화보다 효과적인 매체는 없을 것이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대한 창작자의 진심이나 어떤 태도가 느껴지려면 충분히 고민했어야 했다. 자칫 얄팍한 상술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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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영화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천상륙작전'은 광복 71주년, 6.25 정전 63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영화. '가문의 영광' 3부작과 '아이리스' 시리즈를 만든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내 머릿속의 지우개', '포화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성수기용 대작치고는 단기간에 기획과 제작이 이뤄진 편이다. 지난해 11월 촬영에 들어갔고 지난 3월 촬영을 마쳤다. KBS와 기업은행은 영화의 공동 제공자로 나섰다. 그러다 보니 경쟁 배급사들은 "나라가 밀어주는 영화가 될 것"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앞뒤 맥락의 부조화와 평면적 캐릭터 등은 1차적으로 각본의 허술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간중간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에 대해 제작진은 "역사적 기록과 증언에 바탕을 둔 묘사"라고 했지만, 보는 이가 코미디로 받아들인다면 화법과 연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장년층, 특히 6.25 전쟁의 직, 간접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이 뭉클해할 만한 요소들이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온도 차, 감정 이입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상업영화의 주 관객층은 10~20대다. 젊은 관객이 붐을 형성해야 중장년층도 움직이기 마련이다. 대놓고 반공, 애국심를 내세운 이 작품이 주요 관객층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숨겨진 역사 조명과 호국영령을 기린다는 의미 있는 출발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평화와 안보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 예술인 영화에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쟁물의 클리셰밖에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 전쟁 영화의 명백한 퇴보다.

제작사는 이미 영화의 시퀄인 '서울수복'의 제작을 공표했다. 한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 직후 북한군으로부터 서울을 탈환한 사건을 그릴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7월 27일,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1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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