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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이슨 본', '왜' 돌아왔냐고 묻는다면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7.28 14:11 조회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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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진 본 시리즈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 사상 가장 완벽한 3부작으로 꼽힌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스파이물의 상징 '007'의 전통성과 첩보 액션 '미션 임파서블'의 오락성을 능가하는 재미와 메시지 그리고 품격까지 갖춘 작품이다.   

특히 지난 2007년 개봉한 '본 얼티메이텀'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시리즈물에서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간혹 있어도 1, 2편을 능가하는 3편은 극히 드물다. 원작이 탄탄한 시리즈물도 감독과 배우가 이탈하거나 각본의 균형감을 잃으며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 시리즈는 달랐다.

제이슨 본의 심해 속 꿈틀거림과 모비(Moby)의 OST '익스트림 웨이즈'(Extreme ways)가 흐르는 '본 얼티메이텀'의 엔딩은 그야말로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본' 시리즈는 여기서 멈춰야 했다. 완벽한 트릴로지로서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니버셜 픽처스는 2012년 '본 레거시'를 내놓았다. 시리즈의 중추신경인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없고, 상징인 맷 데이먼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각본가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토니 길로이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지만 뛰어난 연출가는 아니었다. '본 레거시'는 시리즈의 '유산'(legacy)을 훼손시키고 말았다.

4편으로부터 4년 그리고 3편으로부터 9년 만에 돌아온 5편은 시리즈의 전통을 회복하겠다는 듯 '제이슨 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기억 나"라는 제이슨 본의 읊조림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3편까지의 지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제이슨 본

그로부터 12년,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기억을 되찾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본은 아테네에서 전직 CIA 요원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를 만나고 트레드스톤 작전에 자신의 아버지가 연관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부 정보가 해킹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CIA 국장 로버트 듀이(토미 리 존스)는 또 다른 감시 체계 프로그램인 '아이언 핸드'가 알려질까 두려워 본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사이버 팀장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본 시리즈가 여타 첩보 영화와 달랐던 것은 액션이 아닌 인물과 이야기에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제이슨 본은 국가에 의해 살인 병기로 키워졌지만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외로운 늑대였다. 관객은 불세출의 영웅에 열광한게 아니라 고뇌하는 한 인간에 감정을 이입했다. 

제이슨 본은 제임스 본드처럼 화려한 외모와 처세술로 사람을 사로잡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졌고, 본능적 감각으로 죽음의 위기를 탈출해 왔다. 액션 역시 캐릭터를 투영했다. 본능적인 생존 욕구와 처절한 목표 의식은 좁은 공간을 뛰고 구르며 맨손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게 만들었다.

'제이슨 본'은 9년간의 공백을 채우고 또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킬 재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동기의 축이 빈약하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과 CIA의 음모를 파헤친 3편까지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질문과 갈등을 반복한다.

게다가 CIA와 새로운 갈등을 구축하기 위해 꺼내든 뿌리(아버지)에 관한 서사가 흥미로웠느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점에서 전체 시리즈의 각본을 담당했던 토니 길로이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제이슨본

15년에 걸쳐 이어진 '본' 시리즈는 현대 사회 속 조직과 개인의 갈등을 통해 다양한 화두를 던져왔다. 이번 작품에서 흥미로운 건 '스노든 사건'을 투영했다는 점이다.

CIA는 거대 소셜 미디어 프로그램의 사용 정보를 통해 유저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려고 한다. 이는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이 NSA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폭로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에드워드 스노든 사태의 은유다. 컴퓨터와 모바일이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정보 전쟁 사회 속에서 빚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끔찍한 테러다.

기억을 잃고 국가와 조직에 의해 살인 무기로 살았던 제이슨 본의 태생적 트라우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위협받는 현대 사회의 위기 의식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제이슨 본'이 스노든 사태 이후의 사회상을 투영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다. 

영화는 스페인의 테네리페, 독일 베를린, 미국 라스베가스 등 5개 도시를 오간 다국적 로케이션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테네 시위 현장 속에서 펼치는 제이슨 본의 오토바이 액션은 3편의 워털루역 장면에 버금가는 스케일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제이슨 본의 맨손 액션은 둔탁하고 단조로워졌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세월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분명 나이는 들었지만, 그만큼 연륜도 쌓였다고 말하는 듯 상황에 맞춰 노련하게 적과 대항한다.

스펙터클한 액션은 영화 말미 정점을 찍는다. 핵심 갈등이 마무리됐다고 생각할 즈음 라스베가스가 들썩이는 빠르고 과격한 카체이싱 장면이 등장한다. 엑스트라 차량 150대, 스턴트 차량 50대를 투입해 물량공세의 장관을 만들어 냈다. 

'제이슨 본'은 전편과 비교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으로 본다면 수준급 이상의 액션 영화다. '플라이트 93', 두 편의 '본' 시리즈, '캡틴 필립스' 등을 만들며 액션 스릴러의 대가로 자리매김한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력은 여전하다. 특히 영화가 시작되면 단 순간도 긴장을 놓치 못하게 하는 특유의 '쪼는 맛'은 이번에도 만끽할 수 있다. 

한편으로 '제이슨 본'은 3편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전작은 앞으로도 시리즈의 발목을 잡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왜 돌아왔냐고 묻는다면, 아니 왜 또 돌아와야 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관객들이 제이슨 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7월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3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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