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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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덕혜옹주', '암살'과 달랐지만 의미 있는 어떤 시선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8.09 15:39 조회 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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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를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원작이 된 동명 소설(권비영 作)은 베스트셀러였고, 연극으로도 오른 성공한 콘텐츠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루기엔 매력적이지 않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소재라고 여겼다. 

또한 영화가 사실과 허구가 가미된 팩션 사극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가공의 수위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덕혜옹주'는 고종의 외동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손예진)의 삶을 그린 영화다. 짧았던 유년시절의 행복과 인생 전체를 지배했던 불행의 그림자를 담담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지난해 흥행한 '암살'과 동시대를 다룬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 인물의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명확히 다른 것은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온도다. 

'암살'의 메시지는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안옥윤(전지현)의 대사로 정리할 수 있다. 안옥윤을 위시한 독립 운동가들의 암살 작전은 보는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비록 이들의 투쟁이 동시대에 '광복'으로 귀결되진 않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이들이 주는 감동은 명확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선사하는 승리의 서사는 뭉클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나는 조선의 힘이자 희망이 되지 못한 옹주였습니다"라는 이덕혜(손예진)의 회한 섞인 읊조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종의 고명딸로 태어났지만, 일찍 아버지를 잃었고, 나라를 떠나야 했다. 일본 땅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딸도 먼저 하늘로 보냈다. 그리고 끝내 미쳐버렸다. 이 사실들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발생한 극적인 힘이 상당하다. 무기력한 나라와 비운의 역사가 만들어낸 한 인간의 굴곡진 삶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신파가 됐다. 

이 이야기에서 투쟁의 뜨거움과 쟁취의 쾌감은 얻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해 패배의 서사다. 영화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간 한 여인의 인생과 그녀를 조국으로 귀환시키고자 한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채워져 있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재회의 서사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가 떠나온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이며, 덕혜와 장한, 덕혜와 복순이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가장 신파적인 장면은 공항 신이다. 무려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덕혜옹주는 백발의 노모가 됐고, 기억을 잃었다. 옹주를 마중나온 더 늙은 상궁들은 "애기씨"를 외치며 오열하기 시작한다. 

적당한 거리 두기와 감정의 절제로 인물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유지하던 허진호 감독은 이 장면에서만큼은 감정을 아까지 않았다. 그것은 이 장면이 신문에도 기록된 사실일뿐더러 허진호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했던 결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덕혜옹주

'덕혜옹주'의 서사는 역사 왜곡은 차치하더라도 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덕혜옹주가 조선 말 상징적 아이콘이었던 것은 맞지만, 조선의 독립에 기여한 바가 없다. 더욱이 왕족들은 일본에 끌려다니며 우리 민족은 내버려뒀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는 그 점에 대해서 다소 모호한 시선으로 일관하는 면도 없잖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우리가 '덕혜옹주'의 삶을 조명해야 할까. 또한, 일제 강점기 조선 왕실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 허진호 감독은 이덕혜를 망국의 옹주에서 나아가 상처받고 버림받은 인간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가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 같은 위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이 영화의 출발은 덕혜옹주의 재발견이나 의미부여가 아니다. 이야기에서 오는 비극성, 시대의 트라우마가 주는 슬픔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행복을 꿈꿀 수 없었던 시절에 대한 통한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분고하를 막론한 동시대 모두의 아픔으로써 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가치와 의미의 잣대를 댄다면 그것에 대한 답은 명쾌하지 않다. 이 점은 '덕혜옹주'를 선택하는 데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서도 이 역경의 드라마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는 어렵다. 관객들은 감독의 시선을 통해 이덕혜라는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토닥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가 남긴 비극의 힘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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