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터널' 김성훈 감독, 끝까지 갔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8.22 09:27 조회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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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2002)을 통해 총기 소지법의 문제점을, '화씨 9.11'(2004)을 통해서는 부시 대통령의 각종 의혹과 무능함을 꼬집었다.

두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기록과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이 장르에서도 창작자의 시선은 중요하다. 마이클 무어는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유머와 위트를 선사하고, 그 안에 날카로운 비수까지 장착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이게 가능했다. 충무로에서도 가능할까? 그것도 상업영화 안에서 말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터널'(감독 김성훈, 제작 제작 어나더썬데이·하이스토리·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은 재난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재난은 풍자를 위한 현상일 뿐이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재난 상황을 통해 현실의 썩은 뿌리를 풍자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이야기한다. 이 메시지를 교조적으로 전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가르치려 하는 영화와 메시지를 주입하는 영화에 관심이 없고 마음을 쉽게 열려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대중 예술에서 풍자의 영역을 확장했다. 비로소 관객에게 재미와 공감까지 선사하는 결과로써 말이다.

터널에 갇힌 한 소시민의 생존기를 그린 '터널'은 고립과 구조라는 큰 이야기 틀 안에서 무능하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회 시스템에 풍자의 날을 세운다. 이 영화에 대한 곱지 않은 일부의 시선에는 감독의 의도가 너무나 직접적이라 불편하다는 것도 포함된다.

영화란 것은 개봉된 순간, 만든 이의 손을 떠난다. 감독의 의도는 중요치 않다. 관객에게 당도한 영화는 각자의 시각으로 평가되고 분석된다. 설령 '터널'에 '세월호 영화'란 굴레를 씌운다 해도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할 이유는 없다. 좋은 의도가 뛰어난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 의도는 재미 뒤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칫 의미의 영화에만 머무를 수 있었던 '터널'은 "상업영화의 최고 미덕은 재미"라는 가치까지 획득했다. 개봉 12일 동안 전국 500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관객에 의해 다른 시각과 해석으로 읽히기까지 하고 있다. 영화를 만든 김성훈 감독은 치열한 여름 극장가에서 재미와 가치 모두를 잡은 능력자가 됐다.

터널

◆ "영화와 소설, 달라야 했다"

Q. 소재원 작가가 영화 '터널'에 대한 극찬 평을 남겼다. 원작자에게 듣는 칭찬은 남다를 것 같다.

A. 그렇다면 난 원작 소설을 써주셔서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Q. 원작은 어떻게 접하게 된 건가?

A. '끝까지 간다'(2014) 개봉을 마치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었다. 한 후배가 참고로 이 작품을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시끄러운 카페에서 읽었는데도 펑펑 울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영화화할 생각은 없었다. 만드는 것도 감정적으로 힘들 것 같고, 완성된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Q. 생각을 바꾼 이유는 뭔가?

A.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을 긍정적이고 밝게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로빈슨 크루소'나 '캐스트 어웨이'처럼. 그럼 이 이야기를 관객들도 견디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소설과 영화는 터널 안과 밖 비중이나 인물의 성격, 엔딩 등에서 차이가 있다.

A. 원작은 안에 있는 사람보다는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더 집중했다. 특히 아내가 돌아다니면서 관공서와 부처에 "내 남편 살려내세요"라고 호소하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 과정에서 관공서나 윗사람들의 나태함과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원작은 엔딩도 비극적이다. 단순히 해피엔딩이냐 아니냐를 떠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소설과 다른 톤 앤 매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시나리오를 쓴 기간은?

A. 지난해 10월부터 쓰기 시작했고, 하정우 씨에게 보낸 시점이 2월경이었다. 배우랑 이야기를 나눈 후 시나리오를 좀 더 손봤다. 이야기가 빨리 풀린 계기는 탱이와 미나 캐릭터를 떠올리면서부터였다. 아, 그리고 환풍기도 중요한 매개였다.

터널

Q. 말그대로 환풍기는 정수(하정우)와 미나(남지현), 탱이(犬)를 잇는 가교다. 정수는 그 좁은 공간을 꾸역꾸역 헤집고 나가 또 다른 생명을 발견한다. 오프닝을 열기도 하고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환풍기는 생명의 통로, 교감의 통로 같은 상징성을 띄는 것 같다.

A. 환풍기, 탱이, 미나를 떠올리고 나서 이야기의 반은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환풍기 시퀀스들을 찍고 나서 김태성 촬영 감독이 "감독님, 그거 아세요? 좁은 공간에 되게 집착하는 거. 혹시 트라우마 있으시냐?"고 묻더라. 생각해 보니 '끝까지 간다'때 시체 보관실 시퀀스도 협소한 공간이었다. 

◆ '터널'은 세월호 영화인가?

Q. 풍자의 뉘앙스가 굉장히 직접적이다. 실존 인물이 캐릭터와 겹쳐지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부각한 상황 설정들도 그렇다. 무엇보다 후반부 등장하는 시추 기계를 본다면 많은 사람이 다이빙 벨을 떠올릴 것 같다.

A. 맨 처음 하 배우에게 보냈던 시나리오에는 대경(오달수)이 정수를 구하기 위해 직접 들어가는 장면은 없었다. 클랙슨 소리를 듣고 구하는 설정이었다. 정우 씨가 그걸 읽더니 "대경이 정수를 위해 뭔가 더 직접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더라. 그래야 나중에 만났을 때 극적인 뭔가가 있을 거 같다면서. 그래서 그 신을 만들었다.

Q. 실제로 구조 작업에 그런 기계를 사용하는가? 

A. 미술 감독님이 캡슐 확인하러 와달라고 하면서 "놀라지 마세요"라더라. 창고 문 앞에서 그걸 보는데 나와 스태프들도 일순간 얼었다. '다이빙 벨'과 너무 흡사한 디자인인 거다. 알고 보니 해외에선 일반화된 구조 기계라더라. 칠레 광산 붕괴 사건을 다룬 영화 '33'에도 그런 장치가 나온다. 약 60cm의 지름에 원통 형태고, 유리로 된 디자인이다. 미술 감독이 그걸 참고해 디자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처음 봤을 때는 '야...이거 큰일이네'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냐. 됐어. 실제로도 쓰는 기계인데 피할 필요 없지' 싶더라. 또 대경이 "제설차 보내달라는데 왜 안 오세요?"라고 호통치는 대사는 바지선을 생각하더라. 그런데 이 모든 게 의도였다면 그런 걸 굳이 썼겠나?

Q. 장관 캐릭터도 시나리오상에는 성별이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에는 여자 장관이 나왔다. 이 역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A. 나는 원래 남자 장관을 등장시키려고 했다. 캐스팅 회의를 하는데 우리 영화의 주요 인물이 배두나 씨를 제외하고 대부분 남자다 보니 투자, 배급사 쪽에서는 여자 배우를 더 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여자 장관 어때요?"하더라. "재밌겠는데?"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누군가 "그럼 그분 되는데요?"하더라. 다들 잠깐 머뭇거리긴 했지만, 난 어차피 "누구? 나?"라는 장관의 대사를 귀엽게 그릴 거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Q. 김해숙 씨에게 장관 역을 제안했을 때 주저함이 없던가?

A. 김해숙 선생님과는 오래전 인연이 있다. 내가 처음 연출부로 참여했던 영화 '오 해피데이'(2003)에 출연하셨다. 나를 기억하고 계시더라. 그래서인지 캐스팅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특별 출연을 부탁하면서 "이 캐릭터를 귀엽게 그리고 싶다. 그렇게 연기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터널

Q. 캐릭터 설정에 관해 부담을 느끼시진 않았는지?

A. 그렇지 않았다. 그보단 이 캐릭터가 '나 악당이야' 부류의 인물로 그릴까 봐 우려하셨다. 그렇게 그린다면 정수를 그렇게 만든 상황들이 다 무너지는 게 되는 거다. 악당 한 명이 그를 버리고 잊히게 한 건 아니지 않은가. 절대 이 영화엔 보통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악인, 민폐남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염려하시지 말라고 했다.

Q. 여자 장관이 처음 등장할 때 함께 나온 보좌관들의 타이 색깔도 빨강색, 파랑색, 녹색이더라.

A. 아, 그런가? 컬러풀하게 섞어 썼을 뿐이다. 그 말씀을 하시니 생각났는데 어떤 이들은 하배우의 조기축구 유니폼 컬러가 노란색인 것도 지적하더라.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게 터널 내부가 온통 회색톤이라 정수가 입는 옷이 원색 계통이었으면 했다. 촬영 감독이 조기 축구회에서 노란색 유니폼을 많이 입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마지막 촬영날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는데 "감독님 대범하십니다"라고 하더라. 편집실 내부가 뒤집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나 의도한 거 아냐"라고 했더니. "그럼 넌 더 확신범이야. 뿌리 깊이 박혀있는 거지"라고 하더라.

Q. 이런 오해(?)의 시선은 제작보고회부터 있었다. 그때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현실이 슬픈 것"이라는 우문현답을 남겼다. 

A. 오늘도 종일 "왜 그러셨냐. 어떤 의도셨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웃음) 제작발표회 때는 완성된 영화를 보기 전이기에 그런 질문들이 안 나올 줄 알았다. 그때 그런 대답을 한 건 영화를 보기 전에 선입견을 품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원작 핑계를 댔는데 따지고 보면 소설은 그 사건 전에 완성됐지만, 시나리오를 쓴건 그 사건 후다. 도망가는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한 생각을 말한 것이다.

물론 난 그 사건을 우리 영화에 의도적으로 대입하지 않았다. 재난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의도적으로 뭔가를 빼내고 넣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한 시대에 같은 경험을 했고, 그 충격 안에서 살고 있다. 굳이 연관성을 물으신다면 그 아픔의 자장 안에서 글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만드는 가상의 재난 영화라면 이런 현실과 무관하게 이야기를 쓸 수 있겠지만, 우리 영화는 평범한 세일즈맨에게 닥친 현실의 재난을 그린다. 연관을 짓든 안 짓든 우리는 그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게 아닐까 싶다. 설령 1:1 대입이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터널

◆ "하정우, 영화의 조명이었다"

Q. 유머의 톤과 강도 조절에 대한 고민이 많이 보인다. 

A. 일단 다양하게 해보자고 했는데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더라. 설계가 됐는데 그게 100%는 아니었다. 배우가 들어와서 수행하다 보면 톤 조절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 자칫 과할 수도 있으니. 그래서 그걸 조절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Q. 정수(하정우)의 캐릭터 구축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다.

A. 정수는 대경과의 전화 통화 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설마 나 하나 못 구하겠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안에서 물도 구했으니 건강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초반에야 그 공간이 언제 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어느 순간 오히려 나를 지켜줄수도 있는 공간이라는 마음으로 적응해 나간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처음엔 먹을 것을 찾고 안전은 신경 쓰다가 나중에는 위생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다. 그러한 인물이 밖에 상황에 의해 감정 변화를 일으키게 될 때 얼마나 짠한까 생각하면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만들어 갔다.

Q. '더 하정우 라이브'였다. 롱테이크 촬영 방식을 통해 배우가 좁은 공간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줬다.

A. 영화의 70% 가까운 분량을 홀로 책임졌다. 정서적으로는 거의 전체를 지배해야 했고. 촬영 전 하정우 씨와 오사카 3박 4일 여행을 간건 정말 축복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촬영이 어떻게 됐을까 싶더라. 그 사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시나리오의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뒤져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야말로 융단폭격식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상대가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내가 안 받아들이면 상대도 어색하고 나도 불편해질 수 있는데 융단으로 들어오니 선별 수용하기가 편했다. 자기와 다른 이야기를 듣는 게 쉬운 건 아닌데, 자기와 다른 말을 들어야 이 영화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반합처럼. 처음부터 완벽하게 같은 생각이었다면 오히려 이만큼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비슷한데 약간 다른, 그래서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현장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 풍부해진 현장이었다.

Q. 작품을 하기 전 배우에 대한 생각과 하고 나서의 생각이 좀 다르던가?

A. 흔히 하정우를 절제된 연기의 대가, 영화적 연기의 대가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 배우를 선택한 건 아이와 같은 인물을 터널 안에 앉혀놓고 싶었다. 그 어두운 공간에 천진난만하고 개구쟁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아이처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보는 이도 위안이 될 것 같았다. 극 중에서 정수가 대경과 통화하면서 "클락션 소리 방금 두 번 들었어요"하는 대사를 할 때 보면 입이 아이 같다. 본능인지 후천적인지는 잘 모르겠는데..아마 본능같다. 절제된 연기는 후천적인것 같고, 표정이나 제스추어는 본능같다. 한국 사람, 아시아 배우들은 제스추어가 약한 편인데 하정우는 우리나라 배우 중 최고다. 사실 '의뢰인'을 보고 놀랐다. 야구공을 던지면서 연기하는 신이 있는데 '어우, 저렇게 실제적인 움직임을 하면서 연기가 자연스러운 배우가 있을까?'싶었다. 촬영하면서도 끊임없이 놀랐다.

Q. 연기적으로 가장 놀랐던 장면을 꼽자면?

A. 세현이 라디오를 통해 어떤 선언을 하지 않나. 그때 터널 안 정수를 묘사할 때 감탄했다. 세현의 대사가 끝났을 때 "살아있는데, 나 아직 살아있는데"라고 읊조리고 핸드폰 배터리를 깨물고 끼워 넣는 등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후레쉬를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을 건데 주유소에소 본 노인네처럼 늙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감정 표현은 뭘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 신은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라는 감독의 디렉팅이 불가능한 장면이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정수가 "나 살아있는데"라고 말하기 전까지 마가 꽤 뜨는데 그때 배우의 연기에 현장이 숙연해졌다. 모니터로 그 연기를 확인하면서 '하정우가 연기 잘하고, 멋스러운 줄은 알았지만...이렇게 잘했어?'싶었다. 감독으로서도 쾌감을 느낀 장면이었다.

김성훈감독

◆ 김성훈이 '터널'로 하고 싶었던 말

Q. 영화의 제작비가 80억 남짓이다. 4대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 중 가장 적은 예산이다. 그런데 영화가 작아보이지 않는다. 만듦새 부분에선 실감 나는 CG의 몫도 크다고 본다. 특히 영화 초반의 터널 붕괴 CG는 수준급이더라.

A. CG팀을 많이 괴롭혔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도 엊그제까지 CG를 만졌다. 작업을 다 끝낸 CG팀이 눈물을 그렁이더라. 나는 화려한 CG보다는 정말 실제 같은 CG를 원했다. 그게 젤 어렵다는데 CG팀을 괴롭게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CG에만 기댈 수 없었다. 그래서 돌 떨어지는 거, 환풍기 떨어지는 것도 따로 조형물을 만들어서 찍고 합성시키는 형태로 CG티가 안 나게 했다. '어벤져스' 같은 영화라면 상관없지만, 우리 영화는 티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하정우와 배두나를 헬기에 태웠다.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두 배우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특히 하배우는 바이킹도 못 타는 사람인데 헬기를 직접 타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Q.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정수의 구조날 세상의 온갖 빛이 쏟아져내린 것 같은 터널 밖 풍경이었다. 기다리던 귀한 손님은 맞을 축제의 장처럼 보였더라.

A. 크리스마스 이브 날, 모두가 눈이 오기를 어마어마하게 바라지 않나. 정수를 구조하는 날도 그런 날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Q. 그렇다면 구조 날 내린 눈은 축제의 의미라고 볼 수 있겠다.

A. 그렇다. 시나리오상에도 눈 신으로 썼다. 왜 크리스마스에 내리면 '축복의 눈'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구조가 실패로 돌아가고 쌓여가는 눈은 '고통의 눈'이 된다. 터널 안은 점점 시커멓게 변하고, 밖은 더 하얘지는 대비를 원했다.

의도대로 눈 신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눈이 원하는 날짜에 내린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행여 하루는 오고 하루는 안 오면 안 온 날은 CG로 작업해야 하는데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눈 신을 지우고 감정으로만 가자고 했는데 촬영 전날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원래 이틀 분량 촬영이었는데, 하루 안에 다 찍는 시도를 했다. 어마어마한 축복이었다. 이번 영화는 비 오는 날 비 신 찍고, 눈 오는 날 눈 신을 찍었다. 날씨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터널

Q. 부감으로 잡아낸 장면들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A. 신의 관점이라고 해야 할까. 위에서 내려보면 인간의 노력이 하찮게 보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부감은 감정을 강조하거나 주입하는 게 아니다 보니 극 온도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Q. 터널 안 조명도 극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1차 구조 때 정수는 온갖 조명을 다 켜고 구조를 기다렸지만, 그 이후 터널은 점점 어두워진다.  

A. 사실 조명 하정우라 써야 해야 할 정도다. 터널 내부 조명은 대부분 정수가 손수 켜는 자동차 라이트, 실내등, 손전등 위주로 사용했다. 

Q. 영화에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두 곡이 중요한 장면에 등장한다. 안지영 씨가 부른 노래 '비행기'(원곡: 거북이)는 상당히 튄다.

A. 믹싱 기사님도 처음 듣고 '허걱' 했다더라. 뜬금없어서...(웃음) 클래식과 전혀 다른 풍의 노래가 나왔으면 했다. 정수가 클래식 라디오만 듣는다는 걸 아는 아내가 '이등병의 편지'나 '보고 싶다' 같은 노래를 신청할 것 같지 않고, 밝은 댄스풍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할 것 같았다. 정수는 그 밝은 노래를 들으면서 슬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행기'의 쿵짝쿵짝하는 멜로디가 다소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짠하게도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밝은데 슬픈, 미묘한 느낌이랄까.

Q.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선택한 데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 스탈린 시대에 활동하던 작곡가다. 나라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던 쇼스타코비치가 자신만을 위해 만든 음악이라는 의미가 있는 곡이다.  

A. 특별한 의도는 없다. 개인적인 음악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쇼스타코비치가 자랑하려고 만든 곡이라고 하더라. 악보가 어려워서 연주도 잘 안 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이라더라. 정수가 터널 안에서 얼마나 라디오를 많이 들었으면 이런 음악도 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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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경의 마지막 외침은 무기력했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일갈처럼 여겨졌다. 굉장히 직접적이고 세다.

A. 나는 그렇게 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라는 대사도 있지 않았나. 정수는 밖의 과정을 못 봤지만, 안에서 기다리면서 똑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단순히 그 대상이 정치계, 언론계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그 무언가를 향한 외침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하다. 농담으로 (오)달수 선배에게 "세무 조사받으시겠어요?" 했더니 "감독님이 시키셨잖아요?"하고 웃으시더라. 대한민국 사회가 그 정도 농담을 받아들일 여유는 있다고 생각한다.

Q. 생각해 보면 '터널'처럼 '끝까지 간다'에도 딸에게 줄 케이크를 사러가는 남자 주인공 설정이 나온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감독 자신의 마음처럼 여겨진다.

A. '끝까지 간다'에서는 결국 케이크를 못 사줬다. 이번에는?(웃음) 물론 딸에게 케이크를 사주고 싶어서 등장시킨 건 아니고 거기에 좀 뭔가 있나 보다. 결국 그 케이크가 정수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가.

Q.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영화의 방향과 메시지 그리고 연출 스타일에 대해 이견을 내지는 않았나? 감독님처럼 쇼박스 역시 용기 있는 결단으로 보인다.

A. 더 영화를 재밌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만 있었지 "이건 위험하다", "저건 민감할 것 같다" 같은 말은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Q. 그래서인지 감독님이 하고 싶은 건 다 하신 것 같다.

A. 아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큰일 난다.(웃음)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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