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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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인간과 역사 사이의 선택들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8.23 16:01 조회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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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허진호 감독이 '덕혜옹주'의 시나리오를 100고까지 고쳐 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소문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긴 시간과 많은 고민을 거쳤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허진호 감독은 시나리오에 들인 시간이 4년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쓴 영화라고 했다.

왜 굳이 이런 힘든 선택을 했느냐고 묻자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한 한 장면 때문이라고 했다. 덕혜옹주의 귀국일, 공항에 마중 나와 울던 궁녀들의 모습과 오락가락하는 기억 속에서도 궁녀들을 알아본 덕혜옹주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한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허진호 감독은 역사 왜곡과 황실 미화라는 아슬아슬한 벽을 4년간 넘나들었다.

2016년,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들 대다수는 조선 시대 그것도 가장 치욕스러운 시기로 꼽히는 고종 왕조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황실은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겼고, 백성들은 일제의 수탈과 횡포에 아우성 쳐야 했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헬조선'을 외치고 있지만, 그 시절은 문자 그대로 '지옥 조선'이었다.

울타리 없는 망국의 설움이야 신분 고하를 막론하는 것일 테지만, 아래로부터의 고통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던 조선의 황실 그리고 마지막 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보는 것에 대한 반감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영화는 픽션이 더해졌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님에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은 실재와 혼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덕혜옹주'는 전국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통해 멜로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허진호 감독의 내공있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이뤄낸 결과다. 

물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수면 아래 있던 역사 왜곡 논란도 점화되는 분위기다. 허진호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했던 고민과 내렸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덕혜옹주

Q. 왜 덕혜옹주여야만 했나?

A. 덕혜옹주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를 봤다. 어린 시절엔 조선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더라. 부모와 황실과 민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굉장히 똑똑했다더라. 그러나 아버지(고종)가 독살되고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고, 어머니를 잃었고 독립 후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이혼까지 당하게 됐다.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가 귀국하는 날 공항의 모습을 재현했는데 궁녀들이 눈물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눈가에 물이 고일 정도로 슬프더라. 

Q. 영화화하는 데 난관이 많았을 것 같다.

A. 다큐를 7~8년 전에 봤고 영화화를 생각한 건 3~4년 전쯤이다. 다들 반대했다. 시대극이라 예산도 많이 들뿐더러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사이에 소설 '덕혜옹주'(권비영 作)가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중과 접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영화화 작업에 착수했다. 시나리오 작업만 약 4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내 작품 중 가장 오래 썼다. 워낙 어려운 이야기였다. 극화된 이야기라 해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Q. 영화 제작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 부문을 우려했을 것 같다. 시대극에서 픽션은 역사 왜곡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있다.

A. 실제의 일만으로 영화를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다. 선을 지키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나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은 촬영을 시작하고 편집하면서도 이어졌다. 배우들과도 그 부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덕혜옹주

Q. 원작 소설은 덕혜(손예진)와 소 다케유키(김재욱)의 결혼 생활 비중이 크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대폭 축소했다. 그 이유는?

A. 현실적인 문제로는 일본에서 찍어야 했고, 일본 배우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 평전을 보면 덕혜옹주를 향한 소 다케유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두 사람은 행복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봤다. 덕혜는 원수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과 행복해질 수 없었던 것 같다. 덕혜와 다케유키의 결혼생활은 좀 더 촬영했지만 많은 부문 덜어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집중하기보다는 많은 사건을 다루면서 영화적인 느낌을 가져가는 게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망명 작전에 힘을 실었고, 김장한의 역할도 더 커질 수 있었다. 

Q. '덕혜옹주'의 인물과 인물의 병합, 실재와 허구의 병합이 두드러진다. 김장한은 김을한과 김장한을 병합해 만들어 낸 새로운 인물이고, 영화의 핵심 사건인 영친왕 망명 작전은 허구의 이야기인데 또 거기에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사건이라는 실재 사건이 더해져 있다.

A. 자료조사를 꼼꼼하게 했다. 시기적으로 맞게 쓰이지 않더라도 사건을 취합하고, 그것을 픽션화시킬 수 있는 방식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조사를 한다 해도 머릿속으로 시대를 그려내는 건 어렵더라. 망명 작전이라는 사건을 만들면 장한의 역할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영친왕이 결혼할 당시에 폭탄테러가 있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 그를 상해로 망명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영친왕의 존재가 상징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건들은 시기가 다르다. 덕혜옹주야 늘 귀국에 대한 염원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기에 망명 작전과 부딪히게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Q. 망명 작전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만큼 영친왕 묘사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실재 기록과 상당 부분 다른 선택을 했는데?

A. 영친왕은 일본으로부터 대우를 잘 받았다. 그런데도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을 보면 적잖은 내적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독립 후 귀국을 거절했는데 아내 때문이라고 하더라. 해방 이후에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다가 아들의 MIT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나라나 국민보단 개인의 행복을 더 중시한 인물인 것은 맞다.

덕혜옹주

Q. '덕혜옹주'는 주연, 조연, 아역할 것 없이 캐스팅이 훌륭했다고 본다. 특히 타이틀롤 손예진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외출' 이후 11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20대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성장했던가?

A. 손예진 씨는 20대 때도 굉장히 똑똑했다. 그때도 자기 의견이 있는 영리한 배우였다. 생각해 보면 '외출'을 촬영했을 때 그녀가 23살이었다. 그 나이에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잘해냈다. 이번에 보니 연기에 힘이 느껴지더라. 그걸 보면서 내가 "신기 있다"고 했더니 마냥 웃더라. 20대 때보다 지금은 연기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Q. 김장한 캐릭터가 감독의 눈이라고 생각한다. 박해일의 시선과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진솔한 힘이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배우를 통해 덕혜옹주의 삶을 안내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A.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정말 어려운 역할이다.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캐릭터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현장에서도 좋았지만 편집본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감정의 디테일들이 세세하게 보이더라. 정말 좋은 배우와 작업을 했다.   

Q. 김장한은 덕혜옹주의 귀국운동을 주도했던 김을한 기자의 동생이다. 실제 덕혜옹주와 혼담이 오간 바 있다고 들었다. 영화는 두 인물을 병합해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A. 그렇다. 제3의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인물의 전사를 합치고 극화했다.

Q. 김장한과 박정희 대통령과 대면하는 장면은 극 전체에서 튄다.

A.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있었던 일이고...덕혜옹주를 귀국시키기 위한 장한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혜옹주

Q. 박정희 대통령에게 "저는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김장한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A. 김장한은 신문기자지만, 정치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장한이 어떤 생각을 하는 인물인지를 보여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상황은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온갖 수를 다 써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원래 그 대사와 함께 90도로 인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편집했다. 그래서 장한이 더 강단 있는 인물이 되기는 한 것 같다.(웃음)

Q. 감정을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연출은 좋았던 것 같다. 

A. 따지고 보면 내 영화 중 가장 신파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애초에 절제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영화를 가져간 태도에 있어서 과장이나 강요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에서 오는 진정성 같은 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덕혜와 장한의 관객을 연정 정도로 풀어낸 것도 적정선을 잘 지킨 것 같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교감이나 신뢰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멜로가 아닌데 멜로처럼 보는 이를 두근거리게 하는 건 그간의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님만의 내공이 아닐까 싶더라. 

A. 사실 내가 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 이야기보다는 사람들 간에 생기는 감정의 변화들을 흥미로워했던 것 같다. 사랑했다 증오하고, 행복했다 슬퍼지기도 하는 그런 감정의 변화들 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이야기더라. 그게 나만의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덕혜옹주도 재회의 서사가 아닌가 싶다. 덕혜와 고국의 재회로 볼 수도 있고 덕혜와 장한의 재회로 볼 수도 있다. 

허진호감독

Q.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도, 역사를 그대로 옮기기도 어려운 인물을 왜 굳이 영화화하려고 했나. 창작에 있어 너무 많은 제약과 고민거리를 안고 가야 했는데?

A.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물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 이순신 장군이나 유관순 열사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덕혜옹주라는 비극적인 인물을 통해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덕혜라는 인물을 다시 조명하자거나 의미 부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알다시피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은 아니지 않나. 그녀의 삶을 통해 시대의 비극과 아픔을 나눠보고자 했다. 더불어 비극의 소용돌이 안에 있어 한 인간에 대한 접근을 해보고 싶었다. 

Q. 그런 점에서 "나는 조선의 힘이자 희망이 되지 못한 옹주였습니다"라는 회환 담긴 내레이션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로 다가오더라. 

A. 소설에서 가져온 대사다. 덕혜옹주를 영화로 만들면서 이 인물을 어떻게 그릴까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잘못하면 이 인물을 미화한다고 볼 수도 있고, 또 이 인물을 재조명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엔딩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래서 그 내레이션이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한편으론 그렇게 힘들게 고국에 돌아왔지만 덕혜옹주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에 대한 생각도 들더라.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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