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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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논픽션] 허진호 감독이 밝힌 "라면 먹고 갈래요?" 비화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8.31 09:28 조회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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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누구나 인생 멜로로 꼽는 사랑 영화 한 편이 있을 것이다. 그 범위를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영화로 한정 짓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이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를 거론할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허진호 감독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로 데뷔해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1990년대 후반 충무로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첫 작품이 죽음을 앞둔 한 남자에게 다가온 사랑을 통해 삶을 사유하는 휴먼 드라마였다면 두 번째 영화인 '봄날은 간다'(2001)는 두 남녀의 연애와 이별의 순간을 다룬 진짜 멜로 영화였다.

허진호 감독의 멜로 영화에는 극적인 순간이 많지 않다.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의 섬세한 순간들을 그리며 피고 지는 인간의 감정을 묘사한다. 이는 보는 이에게 보편적 감정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놀라운 시간이 된다. 

그동안 '봄날의 간다'의 명대사는 차갑게 돌아서는 은수(이영애)에게 던진 상우(유지태)의 한 마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로 회자됐다.

그러나 최근 방송을 통해 뜻밖의 대사가 주목받았다. 바로 "라면 먹을래요?"다. 은수가 서울로 올라가려는 상우에게 용기를 내 던진 말이다. 이 말이 계기가 돼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관계가 급진전한다.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은 이 대사가 최근 'SNL 코리아'에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신호의 의미로 쓰인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보게 됐다. 그런 뜻으로 쓴 대사는 아닌데 재밌더라"고 웃음 지었다.

더불어 그 대사가 촬영 당일 만들어진 대사였다는 비화를 전했다. 허진호 감독은 "나는 현장에서 대사를 잘 바꾸는 편이고, 배우의 애드리브도 좋아한다. 원래 그 대사는 "커피 마실래요?"였다. 그런데 뭔가 심심한 것 같아 당일 현장에서 '라면'으로 바꿨다"라고 전했다.

자신의 영화 중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봄날은 간다'를 꼽기도 했다. 허진호 감독은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는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인 '봄날은 간다'은 일본으로부터 제작비의 40%를 지원(한국, 일본, 홍콩 합작영화 형태로 제작)받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컷씩만 찍을 정도로 매우 여유있게 촬영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배우들과의 호흡도 기억에 남는다고 부연했다. 허진호 감독은 "남자 관점의 멜로다 보니 여배우의 리드가 매우 중요했는데 이영애 씨가 그 역할을 잘해줬다. 그리고 유지태 씨 역시 좋은 연기로 남자의 연애 심리를 잘 그려냈다"고 말했다. 

여전히 배우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최근 이영애 씨와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또 유지태 씨의 '굿와이프'를 보고 연기가 너무 좋아 전화를 걸어 "너 멋지더라"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허진호감독

최근 개봉한 '덕혜옹주'가 전국 500만을 넘으며 허진호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그간의 작품이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에 비해 흥행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번 성공은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에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음 작품이 더 고민된다"고 차기작 선택의 어려움을 밝혔다.

"멜로 영화를 다시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멜로는 어려운 장르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의 굴곡과 변화를 보여주고 느끼기에 좋지 않나. 그러나 TV에서 많이 다루는 이야기가 아닌 새롭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또 멜로 영화의 대중적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지난 2009년 '호우시절'을 저예산으로 만들었음에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멜로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허진호 감독은 "최근 영화 '최악의 하루'를 봤는데 너무 좋더라. 김종관 감독은 어쩜 그렇게 대사를 맛깔나게 잘 쓰는지...또 엔딩의 감성도 너무 좋았다. 그 영화를 보고 나니 나도 멜로 영화가 하고 싶더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허진호 감독의 멜로 귀환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ebada@sbs.co.kr

<사진 = '봄날은 간다' 스틸컷,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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