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연기 장인' 송강호의 진솔한 토로 "연기, 늘 어렵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9.05 16:27 조회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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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들은 '연기 대결'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상대역을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단어는 협업의 결과물인 극(劇)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송강호는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연기를 시시하게 만든다. 오직 자신만이 가진 연기 색깔과 아우라로 상대방의 에너지마저 잠식해 버린달까.

물론 이 말은 홀로 튄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명의 뛰어난 배우가 한 장면, 나아가 한 편의 영화를 격상시킨다는 압도적 존재감의 다른 표현이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공유는 "송강호 선배에게 주눅이 들기도 했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또 "촬영장에서 미친 사람처럼 대사 연습을 한다"고 부연했다. 동물적 본능과 현장 감각으로 연기할 것 같은 명배우도 실상은 '연습광'이었다. 

송강호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밀정'의 '이정출'이 내면의 갈등 때문에 끊임없이 고뇌했던 것처럼, 송강호는 치열하고 예민한 연기 DNA와 싸우며 매 작품 자신을 뛰어넘는 연기를 펼친다.

혹시나 '아직도 이 배우의 연기에 놀랄 무언가가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밀정'을 보라. 심연의 눈빛과 찰나의 비극을 담은 표정에서는 시대의 공기마저 읽힌다. 송강호를 넘어서는 또 다른 송강호에 감탄하고 경탄할 수밖에 없다. 

밀정

◆ 이정출과 황옥, 배우를 매료시킨 인물의 여백

영화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로 분했다. 이 인물은 '황옥'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재창조됐다. 故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했던 '변호인', 영조를 모델로 했던 사극 '사도'에 이어서 세 번 연속 실존 인물을 연기했다.

송강호는 "일부러 실존 인물을 연기한 건 아니다. 실제냐 허구냐를 나눠서 '이건 좋고, 저건 싫어' 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선택할 때 이야기 자체의 매력과 새로움을 본다. '밀정'은 이야기 자체가 워낙 소중하고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에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출이 모델로 삼은 황옥은 친일파와 항일투사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배우에게도 적잖은 부담일 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인물이 완전히 다르게 그려질 수도 있다. 송강호는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밀정

"(역사적 평가가) 명확했다면 더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황옥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그분의 행적도 불분명하기에 연기하는 데 있어서는 좀 더 자유로웠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한 역사적 판결이 난 사람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내가 연기한 이정출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의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었던 것 같다"

'밀정'은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후 8년 만에 의기투합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에 출연한 것이 인연이 돼 무려 20년간 동료애를 이어오고 있는 사이기도 하다.

"김지운 감독은 훨씬 스타일리시해졌다. 영화라는 게 감독의 능력 안에서 펼쳐지는 종합 예술인데 그런 쪽으로는 가히 최고 등급의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내공이 더 쌓였더라. 더불어 장르의 변주, 스타일의 변주도 능수능란해졌다. 이번 작품은 연출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절제하면서 훨씬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송강호

◆ 송강호가 말하는 '밀정'의 개연성

김지운 감독은 '밀정'에 대해 "'콜드 느와르'를 표방했지만 만들면서 본의 아니게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강호는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아픈 역사다. '밀정'은 독립투사들의 삶을 다룬 영화이고, 그분들의 헌신과 고통을 보다 보면 자연 발생적으로 경외감과 숭고함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가 뜨거워지지 않았나 싶다"고 부연했다.

이정출의 마음의 변화가 곧 '밀정'의 온도계다. 극단의 경계에 선 이 인물의 갈등과 선택은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송강호는 이정출의 선택은 결국 '마음의 빚'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영화를 본 일부 기자들이 이정출의 선택에 대해 개연성 부족을 지적했다. 물론 이 인물은 술 한잔 얻어먹고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아마 좀 더 큰 세계를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영화는 이정출의 전사를 걷어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일제 앞잡이가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정출은 과거 임시정부에서 일한 전력이 있고 조선 사람이다. 정채산(이병헌)의 뜨거운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친구였던 김장옥(박희순)이 자결했을 때 흔들렸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들이 잠재돼 있었기 때문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좀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차분하게 보다 보면 깊이 있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밀정

송강호의 말대로 '밀정'은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는 영화다. 서사의 빈틈은 송강호의 깊이 있는 감정연기로 채워진다.

영화에는 이정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다수의 장면이 존재한다. 특히 두 번의 눈물신은 송강호의 열연으로 완성된 명장면이다. 송강호는 그중 두 번째 눈물신에 애착을 드러냈다.

"연계순(한지민)의 손을 보고 그렇게 오열하는 건 쉽지 않다. 둘은 어떤 관계의 성립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게 우리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랄까. 아픈 시대를 살았던 고통은 독립투사든, 누구든 같다고 본다. 연계순의 존재는 우리 민족의 상징 같았다. 이정출은 그 작은 손도 잡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을 것이다. 개인적 고통에서 나아가 그 시대의 아픔을 드러낸 장면이라고 본다. '밀정'은 그런 것들이 심정적으로 층층이 쌓인 영화다"

송강호에게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이정출의 미래를 추측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황옥이라는 인물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정출도 아마 알게 모르게 독립운동을 했을 것 같다. 물론 쫓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암암리에 독립을 위해 싸웠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송강호

◆ "연기, 늘 어렵다"

송강호는 늘 자신만의 색깔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연기가 즉흥적 감각으로 발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력의 산물이다. 

'사도'를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은 하이라이트 감정신을 앞두고 전날 밤 옆방까지 들릴 정도로 맹렬하게 연기 연습을 하는 것을 봤다는 일화를 전한 바 있다. '밀정'에서 호흡을 맞췄던 공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서 신들린 것처럼 대사 연습을 하는 선배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막연하게 송강호 선배는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본능에 의해 움직일 것 같고 럭비공 같은 이미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엄청난데 거기에 집요한 노력까지 기울이시더라고요. 현장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대사를 외우셨어요. 음절 하나하나의 디테일까지도 반복 연습하면서 익혔고, 그것을 통해 캐릭터와 연기를 찾아가는 모습이었어요. 덕분에 저도 좋은 자극을 받았어요"(공유) 

이미 연기 장인의 궤도에 오른 송강호는 현장에서도, 현장 밖에서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불안함을 이겨내기 위함일까 아니면 자신감의 재확인일까. 

"연기에 대한 두려움은 늘 있다. 배우에겐 기술적인 역량도 필요하지만 자신감이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그런 건 가만히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력해야 한다. 배우는 늘 작품 안에 들어가려고 애를 써야 한다. 연습은 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에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연습은 카메라 앞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카메라 앞에서는 연습처럼 하려고 한다. 그런데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다. 그래서 연습하고 연습하는 것 같다"

매 작품 자신을 뛰어넘는 연기를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송강호는 끝까지 겸손했다.

"그걸 찾아가는 게 배우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 진심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 그 마음과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ebada@sbs.co.kr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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