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영화 핫 리뷰

[리뷰] '걷기왕', 심은경이 건네는 위로 '괜찮아 청춘이야'

김지혜 기자 작성 2016.10.17 10:30 조회 1,661
기사 인쇄하기
걷기왕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만의 살아가야 할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을 보면서 가수 이한철이 부른 '슈퍼스타'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미완결의 엔딩은 규격화된 해피엔딩을 꿈꾸는 우리에게 시원하게 한 방 날린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어나. 고지가 눈앞이야'라고 쪼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호기롭게 '결과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묻는다.

'걷기왕'은 2년 전 88만 원 세대에 따뜻한 위로를 건넨 '족구왕'(감독 우문기)과는 또 다른 방식의 위로다.  

고교생 만복(심은경)은 어릴 적 발견한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닌다.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데 강박을 가진 듯한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잘 걷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다"며 경보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육상부에 들어간 만복은 교육보다 연애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코치(허정도)와 오로지 1등만을 외치는 에이스 수지(박주희)를 만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걷기 시작했던 만복은 규칙을 적용해 걸어야만 하는 경보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좌충우돌하는 시행착오 속에서 실력을 키워가는 도중 전국 대회 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걷기왕

'걷기왕'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청춘 영화다. 머리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영화다. 거대한 철학과 깊이 있는 통찰 없이도 열린 마음으로만 마주한다면 90분 내내 생각 없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을 주인공을 꿈꾸고, 부모님은 늘 1등을 원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레이스는 상위권에 든 사람만을 인정한다. 자신만의 속도, 자기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 '위너'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승화 감독은 '만복'이라는 낙천주의 한 소녀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중요한 어떤 가치에 대해 말한다.

영화는 교조적인 시선으로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동화책을 보는 듯한 그래픽과 말풍선 효과 등을 통해 시종일관 발랄하고 아기자기하게 인물의 일상을 보여주고 그 캐릭터를 응원하게 한다.

만복의 삶은 시트콤이나 만화처럼 에피소드 중심으로 나열되지만, 진지할 땐 사뭇 진지하다. 특히 후반부 만복의 선택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대부분 관객은 애가 탈 것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하지 않느냐고. 이 영화는 하지 않을 권리와 자유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걷기왕

심은경은 데칼코마니 같은 캐릭터 만복을 맡아 열정과 행복이 뚝뚝 흘러나오는 연기를 펼친다. 이 영화를 찍으며 과거 같은 고민을 했던 자신을 떠올렸고, 그래서 힐링의 시간이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재능있는 배우가 작품 안에서 이렇게 신나게 연기하는 것을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또한, 이 영화에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신선한 얼굴들이 여럿 등장한다.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개성과 연기력을 확립해 온 김새벽, 박주희, 허정도가 상업영화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한다.

이들의 개성과 매력을 아는 관객들에겐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들을 몰랐던 관객에게는 호기심을 선사할 만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만복의 청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는 모 광고의 카피처럼 아무것도 안 할 자유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 또한 누군가의 의사이며, 선택이다.

불현듯 '너와 나의 과거는 어땠나'라고 생각해 볼 때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삶도, 멋지지 아니한가'라는 생각과 함께.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2분, 10월 19일 개봉.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